1939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김 실장은 1960년 고시사법과에 합격한 뒤 이듬해 해군.해병대 법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법무부 인권과장과 특수1과장, 그리고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을 거친 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 한다.
하지만 지난 1992년 14대 대선을 사흘 앞두고 터진 '초원복집' 사건으로 김 실장은 고위공직자의 선거개입, 그리고 지역감정 조장의 오명을 얻게 된다.
초원복집 사건은 부산의 기관장 8명이 부산 초원복집에서 김 실장 주재 조찬 모임을 갖고 대선 전략을 논의한 내용이 폭로된 사건이다.
이 자리에는 부산시장, 부산지검장, 부산경찰청장, 안기부 부산지부장, 지역 기무부대장과 부산시 교육감, 부산상공회의소 회장.부회장 등 선거관련 기관장이 총집결했다.
선거중립을 지켜야 할 공직자들이 모여 김영삼 당시 민자당후보의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야당 후보들에 대한 비방을 퍼트리자고 모의한 것.
이때 나온 대화 가운데 "우리가 남이가", "(김대중이 되면) 부산.경남 사람들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는 말은 지역감정 조장의 대명사가 되며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 뒤 공직에서 물러난 김 실장은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현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며 화려하게 정치권에 데뷔한다.
이어 16대, 17대 국회의원에 내리 당선되는 동안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특보단장, 여의도연구소 소장 등 요직을 거쳤다.
김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과도 남다른 인연을 과시하고 있다. 김 실장은 학창시절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정수장학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았고 이후 장학생 모임인 상청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박 전 대통령 말년에는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고 이번에는 비서실장으로 임명됨으로서 '부녀 대통령'을 모두 보필하게 됐다.
특히, 김 실장은 대선 전부터 박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으로 유명했던 '7인회'의 멤버이기도 하다.
김 실장을 비롯해 강창희 국회의장, 김용환.최병렬.김용갑 전 의원,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등이 7인회 멤버다.
하지만 초원복집 사건의 당사자이자 7인회 멤버라는 이같은 김 실장의 이력때문에 그의 비서실장 임명을 놓고 앞으로 야권과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이 가중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으로 유례없는 국정원 국정조사까지 벌이고 있는 와중에 과거 대선개입 사건의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김 실장의 임명을 놓고 야당은 벌써부터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지역조장성 발언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했던 유명한 초원복집 사건을 주도했던 인물"이라며 "과거에 많은 공작정치를 한 사람으로서 엄중한 정국상황에서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