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드라마로도 방영된 ‘뿌리깊은 나무’는 한글창제를 둘러싼 세종과 사대부들의 암투를 배경으로 한다. 민초들도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들려는 세종과 이를 막으려는 사대부들간의 힘겨루기의 이면에는 ‘권력’이 있다.
사대부들은 그들만이 쓰고 배울 수 있는 어려운 한자를 통해 정보와 권력을 독점해왔고, 이를 혁파하려는 세종과의 싸움은 치열할 수 밖에 없었다.
왕을 지키는 무사인만큼 ‘조선제일검’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겨루어 당해낼 무사가 없는 고수의 경지에 있다. 드라마에서 그가 사용하는 검은 삼국지의 관운장이 휘둘렀던 ‘청룡언월도’인데, 실제 왕의 경호원들은 ‘별운검’을 사용했다.
임금이 다른 곳으로 행차할 때 믿는 사람을 골라 임명했다. 무휼처럼 평생따라 다니는 별운검은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이다.
▲별운검에 얽힌 사화-단종복위 사건
1455년 10월. 세조가 조카 단종을 내쫒고 즉위한지 2년만에 명나라에서 기다리던 책명사들이 도착했다. 명나라가 왕으로 인정하는 사신을 보냈으니, 세조는 이제 명실상부한 조선의 임금이 되는 것이다.
사신들은 더 이상 없을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세조는 이들을 위해 창덕궁 광연전에서 연회를 베풀기로 했다.
왕이 움직이는 만큼 별운검이 지명됐다.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과 사육신의 한사람이 된 유응부였다.
세종과 문종의 총애를 받았던 집현전 학사들은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를 차지한 세조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성삼문,박팽년,하위지,유성원등은 무관인 유응부,성승등과 함께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시키려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온 것이다. 연회가 무르익어 감시가 소흘해진 틈을 타, 별운검으로 지명된 성승과 유응부는 세조의 목을 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 희대의 음모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세조의 책사 한명회 때문에 암초에 부딪치고 말았다. 거사 당일 느닷없이 별운검의 지명이 취소된 것이다.
장소가 협소하고 세자도 불참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성승과 유응부등은 세조 암살을 강행하지고 주장했지만, 성상문과 박팽년등이 다음 기회를 노리자며 물러서지 않아 결국 거사는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리고 사건에 가담했던 김질과 그의 장인 정창손이 거사계획을 세조에게 털어놓는 바람에 주동자들과 연루자 70여명이 모두 붙잡히고 말았다.
사정전 앞뜰에는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고, 단말마의 비명이 궁궐의 담을 타고 넘었다.
세조의 친국이 열린 것이다.
세조는 붙잡힌 집현전 학사들을 달래기도하고 고문도 했지만, 이들의 의지는 꺽을 수 없었다. 성삼문과 박팽년은 세조를 ‘나으리’라 칭하며 세조를 자극했다. 결국 사육신을 포함해 70여명의 연루자들이 처형됐고, 살아남은 가족들은 모두 노비로 전락했다.
그러나 사정전은 원래 임금이 정사를 돌보던 집무실이다. 근정전이 국가의 공식행사를 치르는 의전용 공간이라면, 실제 신하들과 국사는 논의하는 곳은 사정전이다. 역시 정도전의 글솜씨로 지어진 사정전(思政殿)이라는 이름은 생각하고 정치를 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집현전 학사들을 유난히 아꼈던 세조의 아버지 세종은 성상문,박팽년등과 함께 사정전에서 경연(經筵)을 펼치고 국사를 논했다. 그리고 세종의 아들 세조는 아비가 그토록 아끼던 집현전 학사들에게 나으리라는 조롱을 받으며, 같은 장소를 피비린내나는 고문의 형장으로 만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