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기업 500여 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 절반 이상이 통상임금 패소시 지급해야 할 임금차액을 “감당하기 어렵다(37.9%),전혀 감당할 수 없다(18.2%) ”고 답했다.
또한 임금차액을 부담하게 될 경우 경영상태를 묻는 질문에 기업의 53.2%가 “매우 심각한 경영위기에 놓이거나(20.6%) 경영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32.6%)”이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3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지금까지 이같은 통상임금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기업이 패소하면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 과거 3년치 임금차액과 소송제기 후 발생한 임금차액을 일시에 지급해야 한다.
대한상의는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을 한꺼번에 부담해야 하는데 상당수 기업이 이를 감당할 재정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대법원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토록 한 판결을 변경하지 않을 경우 결국 많은 기업을 도산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통상임금 상여금 포함 판례 굳어지면 기업경쟁력 저하 우려
#1. 종업원 54명이 일하는 정수기필터 생산업체 A사.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폐업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 인건비가 25% 인상되는 것은 물론 4대 보험료, 퇴직금 등도 오르게 돼 현재 매출로는 감당할 수 없다.
#2. 종업원 404명의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B사.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 과거 3년간 임금차액 64.7억 원을 일시에 부담해야 한다. 앞으로 인건비가 18.7% 오르는데 올해 당장 지난해 경상이익의 2.4배에 달하는 액수인 25.3억 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될 경우 기업들은 이처럼 인건비가 급격하게 오를 것을 우려했다.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될 경우 인건비 상승폭에 대해 ‘10~19%’로 답한 기업이 34.1%로 가장 많았고 평균적으로는 인건비의 15.6%가 인상된다고 예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는 “통상임금 문제로 인한 부담은 소송에서 패소해 임금차액을 일시적으로 지급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상승된 임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 대법원의 판례가 굳어질 경우 국내기업의 경쟁력이 현저히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의는 “이번 조사 결과 상여금을 지급하고 있는 기업이 87.4%,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실시하는 기업이 89.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지금까지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을 지급하는 기준금액인 통상임금에서 제외되어온 상여금이 새로 포함될 경우 통상임금 문제가 대부분의 기업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통상임금문제 국회와 정부, 대법원이 해법을 내놓아야
통상임금 산정범위의 확대는 중장기적으로 오히려 근로자의 소득감소와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기업의 대처방안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기업이 ‘임금체계 개편’(61.3%)을 첫 손에 꼽았고 이어 ‘당분간 임금동결’(25.9%), ‘고용감축·신규채용 중단’(22.5%), ‘연장‧야간‧휴일근로 축소’(21.9%)를 꼽았다.
바람직한 통상임금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기존 노사합의를 존중하는 쪽으로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45.5%)는 응답과 ‘정부의 행정지침을 법령에 명시해야 한다’(39.5%)는 답변이 많았다.
이번 조사에서 기업의 78.1%가 ‘노사합의나 근로자 동의를 통해 임금인상률을 정하고 이에 맞춰 기본급·수당을 조정한다’고 답했다.
대한상의는 “노조와 근로자도 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 것에 동의해 놓고 이제 와서 체불임금이라며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노사간 신의에 반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박종갑 대한상의 상무는 “만일 통상임금 산정범위가 확대된다면 기업은 막대한 비용부담으로 투자와 고용창출 활동이 위축되는 것은 물론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생존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상무는 “통상임금 문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을 경우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시장 선진화도 어려워 질 것”이라며 “국회와 정부, 대법원이 지금까지 산업현장 관행과 노사합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해법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