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머릿속에 가시 괴물을 상상하느라 바빴던 거지요.
"그런데 말이야, 정말로 가시괴물이 있을까?"
두리가 심각한 얼굴로 미미와 보보에게 물었어요.
"큰머리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모든 어른들이 가시괴물이 있다고 하잖아."
"그래, 맞아. 정말로 있으니까 이렇게 그림책에도 나오고 그러지."
하지만 두리 생각은 달랐어요. 뭔가 의심스러운 생각이 든 거죠.
"하지만 밤나무 숲속 마을에서 가시 괴물을 직접 본 어른들은 없잖아. 안 그래?"
"그거야……."
그러고 보니 가시 괴물을 직접 본 다람쥐는 아무도 없었어요.
모두 옛날옛날 누구누구에게 들었다고만 할 뿐이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밤늦게 돌아다니거나, 어른들 말씀을 잘 안 듣거나, 욕심 부리거나 하는 꼬마 다람쥐가 있다면, 가시 괴물이 나타나서 잡아간다고 했잖아. 하지만 여태까지 밤나무 숲속 마을에서 잡혀 간 큰꼬리 다람쥐는 아무도 없어."
"그거야 밤늦게 돌아다니거나, 어른들 말씀 잘 안 듣거나, 욕심 부리거나 하는 꼬마 다람쥐가 없으니까 그렇겠지. 나는 정말 한 번도 그런 적 없거든."
미미가 자신 만만하게 말했어요.
"모르는 소리 마. 난 아주 늦게까지 잠 안자고 이불 속에서 그림책 읽은 적 되게 많아. 하지만 가시괴물의 가시 끝도 본적 없다고."
두리의 말을 듣고 보보도 비밀 얘기를 하는 것처럼 조용하게 말했어요.
"나도 엄마 심부름하기 싫어서 아픈 척, 자는 척, 의자인 척, 바위인 척 한적 되게 많아. 하지만 나도 가시괴물 발톱 끝도 본적 없어."
"맞아. 게다가 보보는 먹을 것 욕심도 엄청 많잖아. 혼자만 몰래 맛있는 거 먹다가 들킨 적도 많고."
이젠 미미까지 거들고 나섰어요. 생각하면 할수록 두리 말대로 정말 이상했어요.
"어쩌면 말이야, 가시 괴물은 없는데 어른들이 그냥 지어낸 것일 수도 있어."
"설마!"
꼬마 다람쥐들의 머릿속은 골치가 지끈지끈 아플 정도로 뒤죽박죽이 되었어요.
가시괴물이 정말 있기는 있는 걸까요?
― 「가시괴물의 비밀」 중에서
내가 아는 어린이 가운에 '앵란'이라는 친구가 있거든. 물론 '앵란'이라는 이름은 진짜 이름이 아니라 그냥 지어낸 이름이야.
앵란이와 친구들에게도 아주 멋진 비밀기지가 있었지. 미미, 보보, 두리처럼. 마을 공터 구석에 조그만 나무집. 바로 거기가 앵란이와 친구들의 비밀기지야.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어. 나무집은 원래 커다란 자물쇠로 꼭꼭 잠겨 있었는데 어느 날 자물쇠가 사라졌지. 보아하니 비밀기지로 삼기에 딱인데, 감히 아무도 그 문을 열어보질 못했어. 그동안 나무집에 대한 무서운 소문이 자자했거든.
나무집에 시체가 쌓여 있다는 둥, 문을 열면 팔뚝만한 쥐가 우르르 튀어 나올 거라는 둥, 마귀할멈이 문틈 사이로 아이들을 엿보고 있다는 둥, 밤마다 귀신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둥.
마을 어린이들 모두가 두려워하고, 모두가 궁금해 하고, 모두가 탐냈지만 선뜻 나무집 문을 열려고 하는 이는 없었어. 그저 아쉬운 눈으로 끔뻑끔뻑 바라만 볼 뿐이었지.
그런데 드디어 앵란이와 친구들이 용기를 낸 거야. 운동화 끈 단단히 매고, 두 눈 꼭 감고, 어금니를 앙다물고, 나무집 문을 활짝 열어젖힌 거지. 어찌됐겠어? 먼지만 소복이 쌓여있고 쥐꼬리 하나도 없는, 놀기 딱 좋은 방이 눈앞에 펼쳐졌지 뭐.
그때부터 나무집은 온 동네 어린이들의 비밀기지가 된 거야.
용기가 필요해.
무언가 간절할 땐 더더욱.
강정연 올림
강정연: 200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누렁이, 자살하다」가 뽑혀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2005년 한국 안데르센 그림자상, 제18회 계몽아동문학상, 2007년 황금도깨비상 등 많은 상을 받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단과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주목받고 있다.
※원문은 한국도서관협회 문학나눔의 행복한 문학편지 (http://letter.for-munhak.or.kr)에서 볼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