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3월 초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경복궁 건청궁에는 고종황제를 비롯해 각국의 외교관까지 많은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진공상태의 유리관안에 있던 필라멘트에서 작은 불빛이 깜빡이나 싶더니, 이제껏 본적이 없던 휘황한 불빛이 뿜어져 나왔다. 탄성이 터져나오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두려워 어두운 곳을 찾아 숨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이 켜지는 순간이다. 향원정의 물을 끌어다 발전을 해서 전기를 공급했다.
증기기관을 이용한 화력발전 설비여서, 기계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고, 증기 터빈을 돌린 더운물을 다시 향원정으로 흘려보내는 바람에 향원정에 사는 물고기들이 죽어 떠오르기도 했다.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자 사람들은 불길한 징조라고 했고, 물고기를 끓인다는 뜻으로 ‘증어(蒸魚)’라고 부르기도 했다. 당시 설비는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한지 불과 8년만에 설치한 것으로, 아시아 최고의 설비였다.
건청궁을 비롯해 민비의 처소에도 전등을 밝혔다. 그러나 발전기 성능이 완전하지 못해 자주 전기가 끊어지는데다 비용까지 많이들어, 사람들은 ‘건달불’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고종은 덕수궁에도 발전설비를 설치하라는 어명을 내렸는데, 1900년 봄 전기공사가 마무리됐다. 전기설비가 완공되던날, 덕수궁에 손님을 불러 잔치를 열었는데, 잔치가 시작될 무렵 전등이 꺼져버리는 바람에 잔치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덕수궁의 전기발전 설비는 후에도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얼마나 덜덜거렸던지, 덕수궁의 전기불은 ‘덜덜불’이라고 불렸고, 정동 골목은 ‘덜덜골목’이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127년이 지난 지금, 건청궁과 덕수궁을 밝혔던 백열전구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됐다. 내년부터 전기가 많이 소모되는 백열전구의 생산과 수입이 전면 중단되기 때문이다.
북송의 성리학자 주돈이(周敦頤)는 연꽃을 노래했다.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진흙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기지만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지만 밖은 곧으며, 줄기가 넝쿨지지 않으면서 가지치지도 않고, 향은 멀수록 더욱 맑아진다’
향원정(香遠亭)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향기가 멀리까지(香遠).. 향원정에는 그래서인지 지금도 연꽃이 흐드러진다.
향원정은 원래 건청궁과 연결된 다리가 있었다. 다리의 이름은 취향교(醉香橋). 향기에 취해 다리를 건넌다는 뜻이니 정자의 이름과도 잘 어울린다.
그리고 백년 뒤 우리나라에는 김연아라는 불세출의 천재가 나타나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로 썼다.
그러나 향원정에는 가슴아픈 역사가 숨어있다. 1895년 건청궁에 난입한 일본 낭인들은 명성왕후를 무참히 살해하고,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옥호루 옆의 녹산에서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흔적을 향원정의 연못에 뿌렸다. 연꽃의 향기가 멀리가는 것은 왕후의 넋이 이곳 저곳을 떠돌기 때문일까.
<참조> 서울의 누정 (2012.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