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지막 4중주' 안에 그 답이 있다.
인생은 복잡한 갈등과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조차 인생의 한 악장이고 우리는 매일매일 새로운 악장을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현악4중주단 푸가는 결성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들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푸가 내에서 멘토 역할을 하던 첼리스트 피터가 파킨슨병 초기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네 명의 단원들은 충격과 혼란에 휩싸인다.
오랜 시간 동안 스승과 제자, 부부, 옛 연인, 친구 등 개인적으로도 가까운 관계로 지내던 네 사람은 이를 계기로 숨기고 억눌러 온 감정들을 쏟아내기 시작하고, 삶과 음악에 있어서 일생일대의 기로에 서게 된다.
자신의 병 탓에 푸가가 와해될 것을 염려하던 피터는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를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난이도 높기로 유명한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을 연주하자고 단원들에게 제안한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은 음악인들에게 최고의 음악이자 숙제로 꼽힌다. 40분이 넘는 동안 쉬지 않고 연주해야 하는 까닭에 악기들 사이 서로 음정이 어긋나는 것도 감수해야만 한다.
영화 마지막 4중주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야론 질버만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실내악을 즐겨 듣던 클래식 애호가인데,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에 대한 오마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가장 친밀한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과 오해, 화해 속에서 숨가쁘게 돌아가는 인생을 이 음악에 담아낸 것이다.
질버만 감독은 "어릴 때 친구로부터 받은 카세트 테잎의 B면에 현악4중주곡이 녹음돼 있었는데, 이 곡에 매료돼 지금까지 30여년 동안 실내악을 늘 곁에 두고 있다"며 "들을 때마다 새로운 감흥을 느끼게 하는 이들 곡 중 베토벤의 현악4중주곡들은 매우 특별하다"고 전했다.
전설적인 이스라엘 여자 수영 선수들이 80세가 돼 다시 수영을 하려고 모이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워터마크'로 이미 연출력을 인정받은 질버만 감독은 배우들에게 수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악기 연주 트레이닝을 받도록 해 실제 연주를 방불케 하는 사실적이고 정교한 연기를 뽑아냈다.
아카데미가 선택한 필립 시모어 호프먼, 크리스토퍼 월켄, 캐서린 키너 등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요소다.
영화 속 제1바이올린 주자 다니엘 역을 맡은 마크 이바니어는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주연 배우들은 질버만 감독의 전작인 다큐멘터리를 본 뒤 그가 영화를 제대로 찍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했다"며 "마지막 4중주의 시나리오 역시 우리의 인생을 그대로 담아낸 듯 매우 정교하게 짜여진 훌륭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4중주의 배경은 뉴욕으로, 촬영 당시 이례적인 혹한과 폭설이 덮쳤다. 영화를 만드는 데는 악조건이었지만 클래식에 어울리는 운치 있는 겨울 풍광들을 담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 질버만 감독의 전언이다.
주인공들이 미술품을 감상하며 예술과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미술관 프릭 컬렉션, 푸가의 결성 25주년 기념 공연 장면을 촬영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내 그레이스 레이니 로저스 오디토리움 등 뉴욕의 명소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 마지막 4중주는 25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