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군사훈련 캠프에서 젊은 생명들이 희생되었다. 사고가 난 충남에서는 교육청이 각 학교의 징계학생 150 여명을 해병 캠프에 입소시키기로 하고 학생 모집을 했다는 사실도 알려져 논란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학생들을 군사훈련 캠프로 보내게 된 것일까?
◈ 지구촌 학생군사훈련 캠프 열람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인 1923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학생들에게 병식교련을 실시했다. 이 병식교련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 때인 1969년 고교 필수과목 ‘교련’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대학은 교련과 ‘병영집체훈련’이 필수가 됐다.
공산국가인 중국은 국방부와 교육부 주관으로 중고등학교 신입생들을 하계 군사캠프에 보낸다. 9박 10일의 일정이다. 북한은 14살이면 아예 아이들을 징집대상자로 분류한다. 예비검사를 거쳐 17살~18살에 대부분 입대한다. 신검 통과 기준이 148센티미터 키에 43킬로그램만 넘기면 되는 처참한 현실.
정규 교과과목이 아닌 학생병영캠프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초반에 폭력과 절도, 마약 등 범법 행위를 저지른 학생들을 군사훈련 캠프로 보내 교정.교화를 시도했다. 각 주 정부들은 학생 범죄를 줄이는 획기적인 방안이 될 거라며 경쟁적으로 주 방위군이 운영하는 병영캠프를 세웠다.
미국의 불량학생 군사훈련 캠프 붐은 IMF 직후 한국으로 건너 와 해병대 캠프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해병대 훈련캠프라는 이름을 민간에서 함부로 쓰는 것에 제동이 걸리자 해병 아카데미 등 다른 이름으로 상호를 변경해 사업을 계속해 오고 있고, 복합민간군사기업이라고 상호를 변경한 곳도 있다.
미국의 병영캠프 교정과정은 주 정부 후원으로 17개월간 운영된다. 17개월 중 첫 5개월은 훈련캠프에 입소해 훈련과 학과공부를 병행하고 이후 집으로 돌아가 개인 멘토의 상담과 함께 입시 공부나 취업 준비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다고 붐이 일었으나 막대한 투자에도 병영캠프가 다른 교정 방식에 비해 재범을 줄이는데 월등한 효과는 없는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
우리 사회를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자기한계를 넘어서는 혹독한 군사훈련과 외부로부터 격리된 집단 수용생활이 인간을 절제와 협동심, 인내심, 자기성찰로 이끄는 효과가 뛰어나다면 남성 대부분이 군복무를 한 우리나라는 품격 있는 신사로 가득 찼어야한다.
미국의 군사문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군사 문화가 나라를 위해 전장에서 피 흘리고 숨져간 장병들에 대한 경의와 존경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국가로서의 역사가 짧은 만큼 국가가 국민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걸 보여주려고 애쓴다. 또 국민은 군이 조국과 국민을 위해 숭고한 헌신을 했음을 되새기며 국가통합을 이루어 간다.
미국 대통령이 전투기 편대를 이끌고 외계에서 온 적과 싸우는 헐리웃 영화 ‘인디펜던트 데이’나 일등병 하나 구하는데 국가의 명예를 거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그런 맥락이다.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지구촌을 헤집으며 비난을 듣지만 국내에서는 군사문화가 국민통합과 국격에 중요한 요소로 대접받는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군사문화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군사문화가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듯 여긴다. 우리 군의 문화가 당당히 ‘군 문화’라 불리우며 자리 잡지 못하고, ‘군사문화의 잔재’라는 소리를 듣는 현실은 왜일까? 우리 군의 멋지고 당당한 모습이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와 존경을 받고, 그것을 우리의 군사문화라 부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 뿌리가 프로이센 제국과 사무라이?
우리 군의 민주적 기반은 군이 외세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이끈 프랑스, 터어키, 미국 등과 비교한다면 열악하다. 친일파 논란, 이승만 독재정권 하에서의 부정부패, 쿠데타, 군부독재로 이어지는 과거의 경험은 국민의 신뢰와 존경으로부터 군을 떼어놓았다.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일제 식민지배와 이어진다.
우리가 군사문화를 답습한 일본은 19세기 중반까지는 프랑스 스타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1871년 보불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프랑스를 꺾고 독일제국으로 커나가자 일본군 내 유럽 유학파들은 프로이센 스타일로 군 체계를 바꾸게 된다. 프로이센 스타일은 군대의 정신전력과 일체감을 극도로 강화해 전투력을 뽑아내는 방식이다. 나치 역시 프로이센 방식의 군사문화를 도입한 뒤 군과 국민에게 전파해 파시즘을 구축했다.
소련도 프로이센 스타일의 군사문화를 받아들인 나라이다. 적백내전 이후에 백군출신들이 군에 유입돼 공산당 통치와 맞물리면서 계급에 따른 복종과 희생을 군 정신전력의 중요한 요소로 삼았다.
일본은 프로이센 스타일의 정신무장을 강조하는 군사문화에 일본 전통의 사무라이 문화를 접목시키며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종교성까지 곁들인 독특한 군사문화를 선보였다.
상관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죠우칸메이레이, 일본 왕을 살아있는 신으로 간주해 천황이라 칭하고 ‘천황의 군대는 신의 군대이니 후퇴. 항복. 포로가 있을 수 없다’는 옥쇄항전, 반자이 돌격, 카미카제 자살공격 등 인간의 존엄이 함몰된 군사문화와 전투방식이 생겨난 것이다. 이는 서구에 열세인 산업기술과 군사력을 집단 최면과 광신적인 술수로 보완하려는 의도였다.
“군대에서 하라면 해”, “군대에서 안 되는 게 어딨어” ..... 현실적으로 부조리하고 적절치 않은 것을 무조건 해내라는 소위 ‘군대식’은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독일군도 서독 연방군은 전투와 임무수행에 직접 관련되지 않은 경우에는 사병도 정당한 개인의 권리 요구를 하도록 해 민주주의와 군대의 문화를 접목 시켜놓고 있다.
군 역시 민주사회의 한 부분으로서 건강하고 조화롭게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프로이센과 나치의 전통을 이어받고 소련 편이던 동독군은 군부 내 비리 부패 등으로 심하게 병들어 있었다. 일본도 자위대가 엄연히 군인 아닌 민간인 신분임에도 1990년대까지 구타와 왕따 문제로 사회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군사문화라고 해서 어디나 같은 건 아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살펴본 대로 우리 군은 건강하고 당당한 군사문화와 국군 이미지의 구축을 위해 국민과의 어우러짐도 강화하고 문민 통제의 시스템도 확실히 세워 나가야 한다. 이런 마당에 군 내부가 아닌 거리에서 군복 입은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것이나, 군복 입은 무리에겐 행정관청과 경찰도 적당히 넘어가는 특권적인 풍토는 군을 국민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
우리 국군은 군과 군사 문화가 시민민주주의와의 대척점에 놓여있지 않고 국민을 존중하고 국민으로부터 존경받기에 마땅함을 증명해 내야 한다. 왜 아직도 이 나라에 프로이센과 사무라이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