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 노모는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온 막내아들과 함께 대학가에 원룸을 차렸다.
그러나 현재 방 14개 중 8개가 텅텅 비어있다. 그나마도 방이 안 나가 월세를 반으로 낮춰받고 있다. 은행 대출금 원금은커녕 이자도 못 갚을 지경에 처했다.
노모는 틈만 나면 농약병을 들었다. “이럴 바엔 확 죽어 버리겠다”고 역정을 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할머니를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막내아들은 술만 마셔댔다. 술만 취하면 홧김에 주변 경찰서를 찾아가서 따지고 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느냐?” 술에 취에 난동을 부리다가 정신병원에서 몇 달을 보내기도 했다.
‘홍성의 자랑’인 청운대학교 일부 학과가 올 3월 인천으로 옮겨간 뒤부터 벌어진 모자의 '비극'이다. 학생과 교직원을 포함해 약 2000여명이 홍성을 떠났다.
◈지역 경제 반 토막, 그리고 홍성군민들의 눈물
특히 술집과 노래방 등 유흥시설이 직격탄을 맞았다. 청운대 앞에서 PC방을 운영하는 한 50대 남성은 “손님이 40% 이상 줄었다. 다 인천으로 가버리니 장사가 될 리가 있나”라며 하소연했다. 굳게 문이 닫힌 가게에는 ‘임대문의’라는 네 글자가 붙어있었다.
주 소비층이었던 청운대 학생과 교직원 2000여명의 유출은 인구 9만이 채 안 되는 홍성 경제에 큰 타격이었다. 돈이 돌지 않자 악순환은 계속됐다.
홍성 읍내의 최대 번화가인 ‘명동 거리’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문구점을 운영하는 50대 남성은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우리 가게는 타격이 굉장히 크다”며 “이전에는 11시까지 문을 열어놓으라고 학생들이 부탁할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9시 반이면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통학비와 주거비, 생활비를 부담스러워 하는 홍성 군민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청운대에 재학 중인 아들을 둔 50대 남성은 “아들이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지역의 대학으로 진학했다. 그런데 제대로 된 동의 절차와 통보도 없이 갑자기 학교가 이전했다”며 “인천에서의 생활비를 감당하기가 힘들 것 같아 휴학계를 냈다. 이대로 졸업을 시켜야 할지도 의문이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떠나가는 대학, 헤어지지 못하는 주민
이들은 현재 교육과학기술부를 상대로 ‘청운대 이전 취소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인구 300만의 인천이 자신들만 살려고 편법으로 홍성을 초토화 시켰다”며 교육부가 인천시에 특혜를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충청남도 금산군에 위치한 중부대학교도 내년 고양캠퍼스 개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자 일부 금산 군민들이 이전 반대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들도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지방대의 수도권 이전은) 있어서는 안된다”고 짤라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국토균형발전’ 한 목소리,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18일 지역발전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고 '지역희망(HOPE) 프로젝트' 안을 내놓았다. 지자체가 중심이 돼 교육·복지·문화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지역행복생활권’을 도입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지방대 특성화 분야 학생에 대한 전액 장학금 지원, 지방 이전 공공기관에 지방대생 채용 우대 등을 담은 '지방대학 육성법(가칭)'을 발표할 예정이다.
박수현 공주시의원은 17일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의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반환된 미군기지로 옮겨갈 수 있는 대학을 ‘수도권 내 대학’으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헌법정신인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지방대학의 수도권 이전은 정책적으로 규제해야한다는 게 개정안의 취지다.
지방대학이 자생할 수 있는 토대를 정부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 이수연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인구 분포가 기형적으로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며 “이것을 조정해 나가는 방향으로 대학 정책이 움직여야지, 오히려 인구 수에 따라 대학을 재편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방대의 잇따른 수도권 진출로 지방 교육의 공동화가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수도권 대학과의 역차별 논란을 최소화하면서도 지방대의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지방대 육성책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