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단체들이 경찰 과잉진압의 중심인물로 계속 지목해왔던 서울경찰청 기동단장이 결국 직위 해제됐다.
경찰청은 지난달 15일 여의도 농민대회에 참석했던 농민 전용철씨가 숨지고 홍덕표씨가 중상을 입는 등의 책임을 물어 당시 현장 지휘관에 대한 직위 해제 방침을 밝혔다. 이와관련해 경찰은 시위진압 과정에서 진압 대원들이 방패로 시위대를 타격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시인했다.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특히 하반신 마비와 혼수상태를 오가고 있는 홍덕표씨의 경우 이마에 난 상처 등으로 미뤄 진압경찰에 폭행을 당한 것이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했다.
고(故) 전용철씨의 경우도 확실한 조사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경찰이 가격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민대회가 열린 지 한달만에, 그리고 전용철씨가 숨진 지 21일만에야 과잉진압과 폭행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처음에 경찰은 전씨가 집에서 넘어져 뇌출혈로 숨진 것이라며 농민대회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해오다가 지난달 28일에야 집회 해산 과정에서 불상사가 일어났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 발 물러났다.
그렇지만 경찰이 전씨를 가격했다는 직접적인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더 조사를 해봐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던 경찰이 과잉진압 사실을 인정하고 현장 지휘관 직위 해제와 경찰 지휘부에 대한 추가문책 가능성을 전격적으로 밝힌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농민 뿐 아니라 전·의경도 수십여명이 중경상을 입고 아직도 입원중인 상황에서 경찰 지휘부가 선뜻 과잉진압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발표가 있기까지 과정을 보면 아쉬운 점도 많다. 먼저 자발적인 결정이 아니라 떠밀려서 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하루 전 경찰청 외부 자문기구인 인권수호위원회는 "질서 유지를 넘어서는 과도한 물리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며 책임자에 대한 문책을 강하게 권고했다. 특히 같은 날 청와대측이 경찰 고위관계자를 불러 경찰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강하게 질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인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 발표는 중상을 입은 홍덕표씨의 상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와중에 나왔다. 게다가 경찰 입장에서는 농민단체는 물론 다른 시민·사회단체들까지 경찰 비난에 가세하고 나선 것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힘겨운 검찰과의 수사권 확보 싸움에서 경찰의 입지가 더 좁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등장하면서 진압 선두에 나선 전·의경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시위 양상이 과격해지고 있는 것도 분명 문제이다. 시위 참가자들의 성숙한 자세가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불법 폭력진압을 여론에 떠밀려 뒤늦게 인정하는 식의 구태를 벗지 못한다면 과격시위와 폭력진압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란 요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