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한 홍명보 감독이 2013 동아시안컵 대회에 출전할 선수 명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던진 한 마디다.
한국 축구를 발전시키고 온갖 구설로 인해 땅에 떨어진 대표팀의 위신을 바로 세우겠다는 홍명보 감독은 아주 작은 부분에서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대표팀이 소집된 17일 오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 홍명보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 전원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NFC에 입소했다. 과거에는 직접 승용차를 몰고 정문을 지나 숙소 건물까지 이동했지만 이날은 달랐다. 모두가 정문부터 걸어들어갔다.
복장도 달랐다. 예전에는 편안한 차림으로 NFC를 찾았지만 홍명보 감독은 전원에게 정장을 차려입고 오도록 지시했다.
선수들은 평소 정장을 자주 입지 않는다. 운동선수답게 패션 모델을 연상케 할 정도로 멋진 차림이었지만 표정은 하나같이 어색함으로 가득 했다. 옷입는 스타일이나 양복을 구하는 과정도 각양각색이었다.
정장이 많지 않은 정성룡과 이명주는 여름 양복이 없어 겨울 양복을 착용하고 왔다. 더운 날씨에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서동현은 결혼식과 자녀의 돌 잔치 때 입었던 양복을 다시 꺼내입었다. 김동섭은 백화점에서 급하게 한 벌을 마련했다. 홍정호는 넥타이가 없어 박종우에게 하나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경찰축구단 소속의 염기훈은 경찰 정복이 아닌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밖에 나가서 입을 수 있는 정복이 따로 없다는 게 이유다.
이처럼 모두가 각기 다른 옷과 사연을 갖고 파주 NFC에 입장했지만 마음가짐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정성룡은 "평소에는 본관까지 차를 타고 갔는데 오늘은 정말 신선했다. 정문에서 걸어들어오는데 마치 카펫을 걷는 느낌이 들었다. 대표팀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50m 정도의 짧은 거리지만 몇백미터를 걸은 것 같았다. 짧은 시간동안 대표팀에 애착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종우는 양복을 차려입는 순간부터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다.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조금 불편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는 과정이 남달랐고 자부심도 느껴졌다"고 밝혔다.
이처럼 홍명보 감독이 제안한 '정문 워킹'은 선수들로 하여금 태극마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의 의도가 제대로 통한 것이다.
정성룡의 표현대로 NFC 정문과 본관을 잇는 아스팔트 도로는 회색 빛깔의 카펫과 다름 없었다. 레드카펫을 걷는 배우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자부심을 느끼듯이 이날 선수들은 그 길을 걸으며 막중한 책임감을 마음 속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