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직접 지시는 없었겠지만 검찰이 이날 전 전 대통령 집에 들어간 것은 박 대통령의 의지가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가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와 관련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전두환추징법'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입장을 명백하게 밝힐 것을 요구한다"고 압박하자 발끈한 바 있다.
"과거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가 해결 못하고 이제서야 새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 하고 있다. 새정부가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것은 난센스적인 일"이라며 "과거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추징금 환수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박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의지와 검찰의 압수수색은 청와대가 즐겨 사용하는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화하는' 개혁의 일환일 수도 있지만 박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의 '악연'이 가미되면서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끼던 육사 11기로 1976년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발탁되면서 3년 뒤 12.12 쿠테타의 첫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박 대통령은 10.26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9일장을 치른 뒤 청와대를 나왔고, 쿠테타에 성공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청와대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청와대 금고에서 발견했다며 6억 원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이 6억 원은 박 대통령의 대선 가도에서 상당한 부담이 됐다. 지난 대선 당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TV토론에서 "6억 원은 당시 은마아파트 30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며 압박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당시 아버지도 그렇게 흉탄에 돌아가시고 나서 어린 동생들과 살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아무 문제 없으니까 배려차원에서 해주겠다고 할 때,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받은 것"이라며 "그러나 저는 자식도 없고 아무 가족도 없는 상황에서 나중에 그것은 다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박 대통령에게 6억 원을 주기는 했지만 정통성이 없었던 5공화국 정권은 전 정권인 박정희 정권과 선을 그어야 했다. 이러다보니 6년 동안 아버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식도 공개적으로 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도 자서전에서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세상 인심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도 있는 것이었다. 18년간 한 나라를 이끌어온 대통령으로서 사후에 정치적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권력에 줄을 서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거짓과 추측, 비난 일색으로 매도되고 왜곡된다면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탄식했다.
악연이라고 해서 아예 연을 끊고 살 수는 없다. 특히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상황에서는 내키지 않아도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난 33년간 박 대통령이 전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은 몇 차례 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