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노컷뉴스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등이 속한 한국항공진흥협회는 지난 5월 31일 열린 국토교통부 장관 초청 항공 CEO 간담회에서 공항 내에서 집회와 시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항공법 개정안을 건의하려했다.
항공진흥협회가 작성한 '국토교통부 장관 초청 항공운송업계 CEO간담회 건의과제' 문건에는 공항내 집회·시위 금지를 위한 법안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항공법 106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항공법 106조 2에서는 영업행위, 공항시설 무단 점유 행위, 상품과 서비스 구매 강요 행위 등 주로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돼 있다. 이에 불응할 경우 제지하거나 퇴거 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여기에도 응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런데 이 항공법 106조의 2에 영리를 추구하는 행위와는 다른 성격인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는 법 조항을 신설하려 했던 것이다.
또 행정처분적 성격인 과태료는 실효성이 없다며 상습 위반자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의 대상인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공항내 집회뿐 아니라 공항외 집회에 대한 개정도 언급 돼 있다.
문건에 따르면 '공항 내'와 별도로 '공항 밖'에서 이뤄지는 옥외 시위에 대해서는 경찰청에 이미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을 요청한 상태라고 적시돼 있다.
최근에는 인천공항공사가 잔디 보호를 위해 청사 잔디밭 입구에 시멘트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가 잔디밭에서 열리는 각종 집회를 막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비난이 잇따르면서 바리케이드가 일부 철거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 비정규직 집회 막으려는 '꼼수'?…비정규직 87%25 오명 덮기만 '급급'
인천공항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 6,800여 명 가운데 87%가 하청 업체로부터 고용된 간접고용노동자, 즉 비정규직 노동자다. 공항 이용객들이 공항에서 만나는 직원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인천공항공사 등 한국항공진흥협회가 작성한 '최근 3년동안 집회 시위 현황'에 따르면 13건 가운데 10건이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조에서 한 것이다.
또 지난해 10월과 올해 5월 비정규직 노동자 1800여명은 인천공항공사 여객 터미널 안과 밖에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인천공항에서 이뤄지는 집회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인천공항 민영화 반대 운동 등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인천공항공사가 특정 단체의 집회를 막기 위한 법률 개정을 추진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신철 공공서비스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정책기획국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인천공항 민영화 등 예민한 문제에 대한 국민여론을 아예 차단하려는 조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라며 "공항 이미지 훼손은 중요하게 여기면서 최악의 고용구조는 부끄러운 일이 아닌지 묻고 싶다"고 반발했다.
또 헌법에서 정한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사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헌법상 집회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매우 강하게 보호하는 기본권이다"라며 "공항이라는 곳이, 집회를 제한한 국회나 청와대와 같은 의미를 둘 수 있는 곳도 아니기 때문에 과한 처사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이미경 의원은 "헌법상 집회시위의 자유를 업계 편의를 위해 제한하자는 것으로 명백히 위헌적 발상이다"며 "국토부 최종 건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공기업이 위헌적 발상을 정부에 건의하려 했다는 행태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인천공항공사, 우리나라 찾는 외국인에게는 '얼굴'과 같은 곳
인천공항공사는 개정안을 낸 이유에 대해 인천국제공항이 국가관문으로서 갖는 상징성 등을 생각할 때 시위로 인한 국가 이미지 훼손과 외교적 마찰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개정안 건의 요청을 한 것이 아니라 논의를 나누고 의견 표명을 한 수준이다"라며 "공항 내에서 집회가 이뤄질 경우 공항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