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속이고 환경주권을 송두리째 포기한 것이다.
◈ 시범 적용이라고 하더니…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6년, 반환을 앞둔 부산 하야리아 기지 오염 조사 문제를 놓고 한미 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한미 간에 2003년 체결된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절차 부속서 A' (미군 반환/공여지 환경조사와 오염치유 협의를 위한 절차 합의서 : TAB A)에 따라 2006년 1월부터 오염 조사가 실시됐으나, 시료 채취가 75%가량 진행된 상태에서 미군이 출입을 거부하면서 조사가 중단됐다.
국내법인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른 토양정밀조사가 실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군이 기지 내 출입을 차단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한미 양국은 반환기지 오염 조사 방식에 대한 협상을 다시 시작했으며, 1년 만인 2009년 3월 미군이 요구한 JEAP(공동환경평가절차서)에 의한 위해성평가 방식에 전격 합의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환경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현 반환예정 미군기지 7개소에 적용 후 이를 토대로 필요시 보완 및 여타 반환기지에의 계속 적용 여부 등 검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합의에 따라 부산 하야리아 기지를 비롯한 7개 기지에 대해 위해성평가가 실시됐으며, 다음해인 2010년 1월 14일 외교통상부·환경부·국방부는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한·미 양측은 상기 JEAP 시범 적용의 결과를 기반으로 보완 필요 여부 및 향후 기지 반환·공여에 계속 적용해 나가는 문제 등을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특히 오염 범위와 치유 주체 등을 놓고 논란이 계속돼 온 부산 하야리아 기지에 대해서는 "'여타 기지 반환에 있어 선례를 구성하지 않는 방식'으로 현 상태에서 반환키로 한·미간 합의하였다"고 덧붙였다.
◈ 굴종적 환경주권 포기 … 대국민 설명도 없어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 해 10월 8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42차 SCM(한미연례안보회의)에서 앞으로 반환될 용산기지 등 모든 기지에 대해 JEAP을 적용하기로 미국과 합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제42차 SCM 공동성명 11항에 "양 장관(김태영, 로버트 게이츠)은 사업상의 제반 도전요인을 최소화해 나가면서 용산기지이전계획(YRP)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 사업의 신속한 완료를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하였다. 양 장관은 공동환경평가절차(JEAP)가 기지 반환을 위한 양자간 협력을 촉진시키는데 유용하다는 것에 동의하였다. The Secretary and the Minister pledged to minimize challenges and to strive for rapid completion of the Yongsan Relocation Plan (YRP) and Land Partnership Plan (LPP). The two also concurred that the Joint Environmental Assessment Procedure (JEAP) is useful in facilitating bilateral cooperation for camp returns."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한미 양국 국방장관은 2011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43차 SCM과 2012년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제44차 SCM 때도 이를 거듭 재확인했다.
그러면서도 이명박 정부는 이 같은 합의에 이르게 된 과정과 구체적인 협상 내용 등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단 한 차례로 설명하지 않았다.
오염 정화비용으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국가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국민적 의견 수렴이나 국회 동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SCM 공동성명에 슬그머니 끼워 넣는 식의 '꼼수'로 국민을 속인 것이다.
녹색법률센터 배영근 변호사는 “국민을 속이고 감추는 외교는 외교가 아니라 '사기'"라며 "수천억원의 정화비용을 떠안게 될지도 모르는 내용을 합의해 놓고도 전혀 알리지 않은 것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행위요, ‘국익을 포기한 굴욕외교’요, ‘잘못된 합의’라는 것을 정부 스스로 자인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JEAP 적용 … 미군에는 '면죄부' 한국이 '덤터기'
지난 2010년 1월 14일 외교통상부·환경부·국방부는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부산 소재 하야리아 기지의 경우, 미 측의 자체 조치 등이 있었으며, 극히 일부 지점의 위해성 여부에 대해 한·미 간 협의를 진행하였는 바, 미 측의 자체 조치 등에 따라 해당 면적이 전체 규모에 비해 매우 작은 0.26%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뒤 부산시민공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토양정밀조사를 다시 실시한 결과, 기지 전체 면적(53만 4,932㎡)의 17.96%(9만 5,877㎡)가 오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초 3억 원이면 충분하다던 오염 정화비용도 48배인 143억 원이 들어갔다.
결국 시범 적용한 위해성평가를 통해 오염원인자인 미군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막대한 정화비용은 한국 정부가 '덤터기' 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때문에 2016년 반환된 뒤 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인 서울 용산기지도 부산 하야리아 기지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돼 왔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이명박 정부가 이 같은 국민적 우려를 외면한 채 국민의 눈을 속이고 미국이 요구해온 '위해성평가'를 앞으로 반환될 미군기지에도 그대로 적용하겠다고 해마다 미국에 '다짐'을 해 온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다음해인 2001년 SOFA(한미 주둔군지위협정)에 규정된 '원상회복 의무 면제' 조항과 관련해, "(주한미군에게) 공여 시설과 구역을 오염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거나, 환경오염을 방치한 상태로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며 "미군 당국의 기지 사용 및 관리는 공공안전에 부합되어야 하고, 미군의 구성원 등은 대한민국의 법령을 존중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판시했다. (2001. 11. 29. 2000헌마462 전원재판부)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굴종적 '꼼수'에 의해 용산기지 또한 하야리아 기지의 전철을 밟게 될 운명에 놓이게 됐다.
한미 SCM 공동성명에 환경주권을 포기하고 미군에 면죄부를 주는 내용이 포함되게 된 경위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환경주권을 되찾기 위한 한미 간 새로운 협상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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