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전문가들 "예단한다고 사고원인 바뀌지 않아", "신중해야" 언급
NTSB가 이례적으로 조종사의 대화 내용과 비행 고도 궤적을 공개한데 이어 조종사의 훈련미숙을 지적하는 발표를 했다.
미국 언론들도 편향적인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사고 발생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조종사 과실'을 기정사실화 하거나 기체결함 가능성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축소 보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오늘 [Why 뉴스]에서는 "미국 NTSB 왜 조종사 과실 설 계속 흘리나?"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NTSB가 조종사 과실 설을 계속 흘린다는 얘기냐?
= 그렇다. NTSB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종사의 과실에 무게를 둘만한 사안들만 잇따라 공식 브리핑에서 밝히고 있다.
NTSB는 사고 만 하루 만인 지난 7일 처음 기자회견을 열어 조종사들이 관제탑과 교신한 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내놓으면서 "1.5초 전에 재상승을 시도했고 착륙 적합 속도 137노트에 미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NTSB가 "조사는 한참 멀었고 기장의 과실로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단서를 붙였지만 기장의 과실 쪽으로 무게가 쏠렸다.
NTSB는 10일 브리핑에서도 조종사 훈련 미숙을 지적했다. NTSB 측은 “조종간을 잡은 조종사는 비행시간이 9,700시간에 이르는 베테랑이지만 사고가 난 보잉777 기종은 43시간만 조종해 봤다”고 밝혀 조종사의 경험 부족을 부각시켰다. NTSB는 또 교관 비행을 한 이정민 기장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교관 기장으로는 처음 왔다고 발표했다.
NTSB는 또 조종사들의 대화 내용과 비행 고도 궤적도 공개했다.
NTSB는 11일 발표에서도 조종사 과실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NTSB 데버라 허스먼 위원장은 "비행 자료 기록장치(FDR)분석을 통해 확인해야 할 사항"이라면서도 "설사 오토 스로틀이 고장 났다고 해도 (점검하지 않은) 조종사에게 최종적인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허스먼 위원장은 12일(한국시간)에는 "사고 여객기 조종사들이 '오토 스로틀 기능을 정상 속도에 맞춰 놨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함에따라 블랙박스 자료를 다시 확인한 결과 오토 스로틀 기능과 자동 항법 기능엔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NTSB의 이런 발표들은 항공기 사고가 조종사들의 과실에 무게를 두는 것이어서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가 의도적으로 이런 발표를 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 항공기 사고원인이 이렇게 빨리 밝혀지는 거냐?
= 그렇지는 않다. 항공기 사고 원인은 복합적인 원인이 얽혀있거나 사고원인에 따라 책임이 따르는 문제여서 쉽게 밝혀지지 않는다.
1997년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때에는 사고원인을 밝히는데 2년이 걸렸다.
NTSB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NTSB는 사고 다음날인 7일 첫 기자회견을 한데 이어 매일 브리핑을 하면서 사고와 관련된 소식들을 공개하고 있다.
그래서 사고원인이 빨리 밝혀질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 사고원인이 밝혀지기 까지는 빨라도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번 아시아나 항공기의 사고원인은 '조종사의 과실'이냐 아니면 '항공기의 결함'이냐 또는 '공항 관제센타의 잘못'이냐 등 크게 3가지 정도로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무엇 때문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항공 사고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어서 신중한 조사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마치 100% 조종사 과실인 듯한 보도가 잇달아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 그렇다면 NTSB가 왜 성급하게 조종사의 과실 설을 흘리는 것이냐?
= NTSB가 조종사의 과실로 몰아가려 하기 때문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NTSB는 브리핑을 하면서 '예단해서는 안 된다'거나 '조사는 한참 멀었다'거나 '기장의 과실로 단정하기 이르다'는 전제조건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NTSB가 공개하는 자료들이 주로 조종사의 과실이나 과실이 있을 것으로 의심할 만한 내용들이어서 그런 의문을 떨쳐버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NTSB와 공동 조사에 참여한 국토부 관계자는 "사고 상황을 초 단위로 공개하는 NTSB의 모습은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라며 "조사 속도도 너무나 빨라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라고 말했다.
항공 전문가들은 "NTSB가 괌 추락사고 때 2년 넘게 걸려 발표한 수준의 정보를 일주일도 안 돼 쏟아내고 있다"며 "항공기 사고는 복잡해 비행 자료 기록장치(FDR), 조종실 음성 녹음장치(CVR) 등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하는데 조각조각 발표하면 아무리 그 자체가 객관적 자료라고 하더라도 잘못된 예단을 주기 쉽다"고 말했다.
이는 NTSB가 예단을 갖고 사고원인을 조사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이는 대목이다.
국내 항공 전문가들은 NTSB의 이 같은 이례적 행보를 두고 자국 항공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사고 원인을 조종사의 과실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과실 책임에 따라 피해를 배상해야 하는 주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하기도 한다.
아시아나 항공이 보험에 가입돼 있어서 보험사가 사망자와 부상자, 기체 파손에 대해 보상을 하지만 항공기 기체결함이나 공항시설의 문제로 드러난다면 보험사들이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사나 공항관리책임이 있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도 있다. 사망자 유가족이나 부상자들도 항공기 제조회사나 미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도 있다.
1997년 괌 대한항공기 추락사고 때 공항의 과실이 드러나 대한항공과 합의를 하지 않은
유가족들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이 제기돼 대한 항공의 보상금보다 훨씬 많은 보상금을 받아 내기도 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NTSB가 서둘러서 조종사의 과실쪽에 무게를 두는 발표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세계 최대 조종사노조단체인 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도 9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이번 사고 직후 NTSB가 부분적인 데이터를 잘못된 방식으로 공개했으며, 이런 불완전하고 맥락에서 벗어나는 정보는 수많은 억측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인하대 유창경 교수는 "사고원인을 섣불리 예단해서는 안 된다"면서 "사고원인을 몰아간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사실에 의해서 확정될 것"이라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그렇지만 미국 언론들도 사고원인을 조종사의 과실로 몰아가고 있는데?
= 그렇다. NTSB의 발표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미국 언론들이 편향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사고 발생 초기부터 '조종사 과실'을 기정사실화 하는가 하면 기체결함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축소 보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 언론은 지난 7일(한국시간 8일) 이번 사고를 조사하고 있는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첫 브리핑에서 '사고 여객기가 너무 느린 속도로 활주로에 접근하다가 충돌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히자 '조종사 과실'을 사고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9일 "블랙박스 자료와 조종사들이 시계착륙을 하고 있던 점으로 미뤄 조종사가 실수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다음날 보도에서도 "조종사는 베테랑 조종사지만 거대한 보잉777 기종을 조종하는 데는 초보(novice)"라는 내용을 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뉴욕타임스 역시 '아시아나 214편 기장의 보잉777 경험 부족'이라는 기사를 통해 조종사 과실로 사고 원인을 꼽았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착륙하는 비행기들에게 고도를 알려주는 '글라이드 슬로프'가 고장 나 있었던 점 등 공항 제반 사항에 대해서는 별로 문제 삼지 않고 있다.
CNN도 비슷한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 CNN기자는 "사고 여객기 이강국 기장은 보잉777기를 43시간, 9차례밖에 비행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멘트를 했고 조사당국이 기체 결함에 따른 사고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다며 조종사 과실 가능성을 높게 본다고도 언급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10일 "항공기가 방파제와 충돌하기 7초전부터 보조 인력을 포함, 세 명의 조종사들이 비정상적인 속도에 대해 아무런 얘기를 나누지 않는 것이 의문"이라고 보도했다. WSJ은 조종석 보이스레코더에 마지막 7초간 녹음된 대화가 없는 것과 관련, “중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조종사간에 문제를 언급하거나 소리치지 않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전직 아시아나 조종사의 견해를 소개했다.
▶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의 문화가 사고원인이라고 거론하고 나섰다는데?
= 미국 언론들이 사고원인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고 있다.
조종사 과실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보도를 하는 것도 모자라 일부 매체에서는 한국 문화까지 사고 원인으로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999년 대한항공 화물기 8509편 추락 사고를 소개하는 별도의 기사를 통해 '한국의 수직적인 문화가 긴급 상황에서도 조종사들 간의 의견개진을 힘들게 만들어 사고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경제전문방송인 CNBC는 9일(현지시간) "조사관들이 한국 문화라는 믿기 힘든 단서를 연구함으로써 아시아나 사고기 조종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고 보도했다.
CNBC는 토머스 코칸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한국의 문화적 특성이 소통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코칸 교수는 "한국 문화에는 연장자에 대한 존경과 권위주의라는 두 가지 특성이 있다"면서 "이 두 가지 요인이 결합하면 의사소통은 일방적이 되고 상향식 의사 전달은 많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 결국 우리 정부가 NTSB의 조사 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는데?
= 국토교통부는 미국 연방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조사 태도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국토부 최정호 항공정책실장은 11일 브리핑에서 "조종사의 진술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사고 원인 조사에 바람직한지 모르겠다"면서 "조종사 진술을 즉시 공개하는 NTSB의 발표는 오해와 추측을 야기 시킨다"고 비판했다.
최 실장의 문제제기는 NTSB 데버러 허스먼 위원장의 브리핑 방식에 대한 정부의 강한 불만을 나타낸 것이어서 주목된다. 정부는 NTSB가 사고 원인을 조종사 과실 쪽으로 서둘러 몰아가고 있다고 보고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실장은 "한·미 합동조사단이 조종사를 면담한 것은 사실이나 조사 내용은 블랙박스 데이터 등과 비교해 팩트라고 판단될 때 공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실장은 아울러 착륙 이후 비상 대피까지 90초가 걸렸다는 허스먼 위원장의 발표와 관련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은 적절하고 신속하게 자기 직무에 충실하게 승객 대피 업무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허스먼 위원장은 항공기 사고시 90초 이내에 승객을 대피시켜야하는데, 이번 사고의 경우 대피 지시까지 90초가 넘게 걸렸다고 지적했었다. 최 실장은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승무원이 신속하게 자기 직무를 수행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종석의 위치를 놓고 NTSB 허스먼 위원장은 "사고 당시 책임 기장이 교관 기장이었는데 책임 기장석인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자리에 앉았다"며 "좀 더 조사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최 실장은 "관숙(慣熟) 비행 중인 기장이 왼쪽 기장석에 앉는 것이 당연하다"며 "비행 교본에도 나와 있는 내용으로 허스먼 위원장이 어떤 의도로 그런 발언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고 조사를 둘러싸고 한미 양국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 실장은 "(우리)정부를 믿어 달라"며 "사고 조사는 퍼즐을 맞추는 작업으로 현재 조각 하나 하나를 두고 이 조각이 쓸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해 나가고 있다"면서 "사고 조사가
1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