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퍼시픽 림' 할리우드로 간 에반게리온

거대 로봇과 우주 괴수의 혈전…"일본 애니에 너무 빚진거 아냐?

'트랜스포머'와 '퍼시픽 림'을 기존의 액션히어로물과 비교했을 때 전자가 슈퍼맨이라면 후자는 배트맨이라고 할 수 있다.

변신로봇을 주인공을 한 트랜스포머가 밝고 경쾌한 분위기라면 거대로봇과 우주괴수간의 대결을 그린 퍼시픽 림은 시종일관 어둡고 비장하다.

트랜스포머가 슈퍼맨처럼 우주의 다른 행성에서 온 초인적 존재라면 퍼시픽 림의 거대로봇은 인간이 과학기술을 총동원해 만든 전투병기다.

퍼시픽 림의 거대로봇은 또한 대단히 사실적이다. 인간이 탑승해 파워를 공급해야 그 육중한 몸을 둔중하게 움직인다. 마치 영화처럼 날렵하게 움직이고 빠르게 변신하는 트랜스포머와 확실히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퍼시픽림은 로봇이나 괴수영화에 열광하는 관객이라면 완전히 매료될 수밖에 없는 영화다.


특히 후반부를 장식하는 굵은 빗줄기와 검푸른 바다를 무대로 거대로봇과 거대괴수가 뒤엉켜 싸우는 장면은 엄청난 스펙터클을 연출한다.
 
이 영화는 그동안 할리우드SF액션이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로봇을 선보인다. 비록 '마징가Z'나 '건담' '에반게리온' 등 일본로봇물을 익히 봐온 사람이라면 파일럿이 직접 탑승해 조종하는 이런 로봇의 형태가 매우 친숙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애니메이션 장르에 머물렀다면 할리우드는 거대자본과 기술을 총동원해 그것을 현실로 구현시켰다. 왠지 씁쓸한 대목이나 현실은 그렇다.

로봇을 탈 수 있다는 것은 특히 남성 관객들의 어릴적 로망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트랜스포머도 자동차일 때는 인간이 탈수 있기에 더욱 매력적인 것처럼.
 
퍼시픽림은 무더위를 날릴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로 오락성은 흠잡을 데 없다. 다만 일본 애니메이션에 너무 많이 빚진거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사건이 발생하는 곳도 일본 근해다. 2025년 일본 태평양 연안의 심해에 커다란 균열이 일어나면서 지구와 우주를 연결하는 '브리치'가 생겨난다.

그곳을 통해 일본어로 괴수를 뜻하는 카이주가 지구를 공격하고, 각국은 그들에 맞서 지구연합군인 '범태평양 연합방어군'을 결성한다. 이들은 초대형 로봇 예거(독일어로 사냥꾼)를 만들어 카이주에 대항한다.

할리우드는 그동안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왔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과 그의 작품 '천공의 성 라퓨타'를 연상시켰다.

퍼시픽림은 '에반게리온' 등을 떠올리게 한다. 지구를 습격해온 정체모를 외계괴수는 마치 에반게리온에서 인류를 위협하던 사도와 겹쳐진다.

미국이 만든 로봇에 탑승하게 되는 여주인공 미카는 에반게리온의 여주인공 레이와 아스카를 합쳐놓은 것 같다. 외모는 레이인데, 그녀의 개인사는 아스카의 아픔과 유사하다.

파일럿이 전투병기와 정신적으로 연결되고, 그것의 일치율이 높아야 전투력이 상승한다는 것도 에반게리온에서 나온 개념이다.

괴수의 습격에 중국 러시아 호주 일본의 예거가 하나둘씩 파괴되고 결국 지구를 구하는 마지막 로봇이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한다는 점도 석연치않다.

원자력 핵의 위험성이 축소돼 있고 그런 부분에 대한 전 세계적인 문제제기가 있는 가운데 핵이 인류를 구할 것이라는 상상은 다소 위험해 보인다.

1억 8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했고, 멕시코 출신의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2세 관람가, 1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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