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운 경력의 국정원 6급 직원 이모씨는 지난해 3월 초등학교 후배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담은 첩보였다.
이씨는 평소 광고 수주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던 다른 후배를 위해 이 첩보를 활용하기로 하고 삼성의 한 임원과 접촉했다.
이씨는 자신을 '국정원 조사과장'으로 소개하고 "6개월 동안 삼성 비자금을 조사해 증거를 확보했다. 내 목숨을 걸고 하는 거다"라며 첩보가 담긴 문건을 보여줬다.
그는 "사장에게 보고하고 연락을 달라"거나 "아는 후배가 사정이 어려워 도와주고 싶다"며 첩보 제공의 대가를 우회적으로 요구했다.
내부에 보고하거나 검찰·경찰에 이첩하지 않고 첩보를 넘기는 조건으로 후배를 삼성과 연결해줄 작정이었다.
그는 '첩보를 자체 처리하겠다'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임원은 끝내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대신 국정원의 감찰이 들어왔다.
국정원은 이씨가 삼성을 협박, 대가를 요구하며 첩보를 사적으로 활용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고 지난해 6월 이씨를 파면했다. 삼성 임원을 만난 자리에서 신분을 노출한 일도 징계사유에 포함됐다.
이씨는 파면 처분이 지나치다며 소송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함상훈 부장판사)는 이씨가 국정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첩보를 이용해 개인적 이익을 얻고자 한 행위는 정보요원으로서 기본적이고 중대한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행위로 국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며 "징계가 명백히 부당하거나 타당성을 잃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