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개혁안을 마련한다 해도 특유의 비밀주의 속에 권한을 더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8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번 기회에 국정원도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며 "국정원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국정원 개혁에 대한 의지를 밝힌 것은 늦은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그동안 댓글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와 정치권 논란 등을 거치면서 국정원 개혁에 공감하는 여론이 높았음에도 박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국정원에 스스로 개혁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한 것은 여러 모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박 대통령의 언급 이후 개혁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관련해 문제가 되는 것은 댓글 사건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권영세 주중대사가 대선전 회의록을 공개하고 선거에 이용할 수 있음을 내비친 사실이 민주당의 폭로로 드러난 게 더 심각할 수 있다.
김무성 당시 총괄선대본부장이 선거유세에서 한 NLL관련 발언은 정상회담 회의록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정원이 갖고 있던 회의록이 사전에 새누리당에 유출됐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부분이다.
국정원이 정치라는 고질적인 외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간에 제기된 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과 철저한 반성, 새로 태어나겠다는 각오가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국정원은 과거 정부와 선을 그으려는 모습은 보이고 있지만, 대선 당시 댓글 사건 등에 대해서는 첩보활동의 일환이었다며 변명으로 일관할 뿐 진정한 반성과 새출발의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참여연대도 논평에서 "박 대통령이 직속 비밀정보기관의 국기문란 사건에 대해 파악하지도 못하고, 대책도 없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원의 개혁안을 마련할 적임자인지도 심각한 의문이다. '국정원의 명예'라는 황당한 이유 때문에 '자의적으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해 혼란을 가중시킨 당사자다.
남 원장이 국정원장에 취임한 지도 100일이 넘었지만 이명박 정부 당시의 고위직을 대폭 물갈이 했다는 소식만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을 뿐 이 기간동안 어떤 개혁을 했는지는 일체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인적쇄신은 개혁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필요충분조건에서는 모자란다. 과거 정권에서 잘나가던 인사들을 청산하는 것은 자기사람 심기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개혁안을 마련한다 해도 특유의 비밀주의 때문에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으면서 국민들은 국정원 개혁을 체감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혁안이 오히려 국정원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 개혁을 언급하면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사이버테러 대응'이 포함돼 있어, 이참에 사이버안보 분야의 권한 확대를 꾀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