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없는 10대, 성적에 눈먼 어른들 탓"

'명왕성' 신수원 감독 인터뷰

명왕성 신수원 감독(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요즘 사회면을 장식하는 청소년범죄를 보다 보면 자식 키울 일이 막막하다. 아이들이 저지른 범죄라고 하기에는 상식을 뛰어넘고, 너무나 대담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이렇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영화 '명왕성'은 10년간 교사로 지냈던 신수원 감독(46)이 살인사건과 인질극이라는 극단적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 10대 문제를 들여다보는 영화다.

특히 입시위주의 교육현실이 얼마나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이런 교육이 지속되면 얼마나 비극적 미래가 펼쳐질지 모른다고 경종을 울린다.

강남의 사립명문고로 전학 온 강북의 성적우수생 준(이다윗)은 70위권 밖으로 튕겨나간 자신의 등수에 충격을 받는다.

성적을 올릴 방법을 찾다 친구에게 명문대 진학반 소속으로 전교1등 유진(성준)이 이끄는 비밀그룹이 오답노트를 만들어 공유한다는 소문을 듣는다.

성적뿐만 아니라 집안도 좋은 이들은 그룹에 들어오길 원하는 준에게 별의별 짓을 다 시킨다. 준은 비밀그룹 아이들이 지목한 어른들을 골탕 먹이는가 하면 자신들에게 반기를 드는 동급생을 벌주고 급기야 경쟁자 제거에도 동원된다.


신감독은 최근 노컷뉴스와 만나 "성적을 잣대로 아이들을 서열화시키고 우열을 가리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은 크게 잘못된 것 같다"며 "어른들 잘못이 크다. 특히 성적만 우수하면 모든 것을 눈감아주는 어른들이 죄의식 없는 아이들을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2007년 즈음 명문고에서 대학 진학률을 올리기 위해 특별반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적 우수생을 모아놓고 등수별로 앉히고 순위가 밀리면 그 반에서 쫓아내는데 학생들이 그 책상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고 하더라. 그때 특별반에 소속돼있는 아이들의 치열한 경쟁, 특별반에 속하지 않은 아이들이 느끼는 위화감에 대해 생각해봤다."

- 교사출신이라 제대로 만들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 같다.

"그보다 어떻게 영화로 잘 풀어낼지가 고민이었다. 10대 영화는 주로 공포물 아니면 성장영화인 경우가 많다. 성장영화도 투자가 쉽지 않다. 그래서 스릴러로 풀어냈다. 순제작비가 4억 정도 들었는데, 영화진흥위원회와 인천영상위원회, 대전영상위원회에서 총 1억4000만원을 지원받았다."

- 전교1등 유진이 살해된 채 발견되는 시작뿐만 아니라 비극적 결말의 인질극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

"입시경쟁의 단면을 극단적으로 끌고 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언젠가 이런 상황들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극단적 결말로 호불호가 갈리는데 그런 반응은 이미 각오했다. 시나리오 쓸 때 고민이 많았고, 촬영하면서도 다른 결말을 고민했다. 결국 원래대로 갔다. 내가 19살의 준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걸 집중적으로 고민했다."

- 한 고등학생이 1등을 강요하며 자신을 학대한 엄마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유진의 부모를 만들면서 그 사건을 참조했나?

촬영 끝난 뒤 접한 사건이었다. 섬뜩했다. 유진 아버지는 과거 대학시절 들었던 이야기를 참조해 만들었다. 아들이 대학입시를 못 보자 아버지가 아들 머리 깎고 벨트로 때린 뒤 유학을 보냈다더라."

명왕성 포스터
-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 같다. 비밀그룹 아이들의 행동이 어른들 빰친다. 특히 유진과 라이벌 관계인 명호패거리는 죄의식조차 없다. 근데 그 아이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예비 상위1%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이 아이들의 모습이 나중에 사회의 모습이 될 것이다. 경쟁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도 겪고 있고, 엘리트폭력도 존재한다. 그런 것을 의도했다. 사실 명호패거리도 크게 보면 피해자다. 시스템에 길들여진 아이들이다. 다만 자신들이 그런 존재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러니까 그런 (나쁜) 행위가 가능하다."

- 그럼 누구의 잘못인가.

"모든 것은 어른들 잘못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그대로 모방한다."

- 영화 속에 그려진 어른들 모두가 문제가 많다. 학생이 죽어도, 학생이 선생 차를 폭파해도 조용히 처리해달라는 교장선생이 대표적이다.

"사건을 축소하려는 속성이 있다. 시나리오 쓸 때도 수능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집단 성폭행사건을 축소한 사례가 있었다. 가장 크게 자극된 사건은 고대의대생 성폭행사건이다. 죄의식 없는 아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느꼈다."

- 앞서 엘리트폭력을 언급했는데 과거와 달리 요즘은 공부 잘하는 애들도 문제를 일으킨다.

"실제로 교사생활 할 때 수업시간에 얌전히 앉아있던 애가 일진회장이라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사실 그런 애들은 엄밀히 따져 모범생이 아니고 성적 우수생일 뿐이다. 극중 유진도 마찬가지다. 억압돼있는데 그걸 폭력으로 해소한다. 그게 쉬우니까."

- 본인의 자녀교육관은 어떤가

"공부는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 역시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랐고, 제 자식들에게도 그 입장을 관철했다. 교사로 일할 때도 방과 후 남겨서 공부시키지 않았다. 수업은 충실히 하되 그걸 수용하는 것은 학생들의 몫이라고 봤다. 어릴 때는 놀아야 한다. 놀면서 공부하는 거다. 근데 요즘은 놀이터가면 애들이 없다. 다 학원 간다. 학원 컨설팅하는 분이 '네 아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학부모를 겁주면 돈을 벌 수 있다더라."

-관객들에게 바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영화가 현실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한번쯤 돌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나 아이들이 병들어있다는 것을 좀 봐줬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어른들이 많이 봐야 하는 영화가 아닌가." 15세관람가, 1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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