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재발방지를 위한 개성공단 국제화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사태의 책임소재를 문제삼을 수밖에 없는데, 북한은 이 과정에서 '최고존엄'의 훼손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8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앞으로 개성공단은 상식과 국제적 규범에 맞는 합의를 만들어야 신뢰가 쌓이고 발전적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공단 폐쇄와 같은 사태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공단 국제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청와대와 통일부는 국가간 경제교류에서 통용되는 통상원칙을 개성공단을 통한 남북 교류에 적용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나아가 외국 기업들의 투자 유치도 가능하게 함으로써 재발방지 제도를 공고히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개념은 박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기간 남북경제협력 발전 구상을 통해 밝혔던 내용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같은 정부의 접근이 북한의 강한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재발방지의 제도화는 당초 이번 사태가 일어나게 된 원인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태의 책임을 인정하라는 우리 측 요구는 북한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최고존엄'과 직결돼 있다. 북한은 앞서 체제비난과 한미 군사훈련을 이유로 북한 인원을 공단에서 철수시켰었다.
재발방지와 함께 '공식적인 사과'를 우리 정부가 요구할 경우 북한은 아예 회담장을 박차고 나갈 가능성도 있다.
통일부의 한 전직 관리는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공식 사과가 필요하다든지 하면서 '격을 맞춘 사과' 얘기를 하는데, 지난 정부에서 그런 입장 때문에 남북관계가 단절됐다는 것을 아는 새 정부에서 무리수를 둘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남과 북이 원칙과 원칙으로 충돌하는 이번 회담에서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재발방지의 제도화를 목표로, 관용적인 태도를 가져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식적 사과요구는 감성적인 정서를 충족시키는 대신 회담 자체를 망가뜨릴 수 있는 만큼, 북한 나름의 방식으로 유감을 표명하도록 해주고 '개성공단 국제화'라는 과실을 챙기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전략상 '배수의 진'이 될 수도 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에게 완승을 하려들지 말고, 8대 2 정도로 이익을 나눠야 회담에 진전을 낼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이 체제유지를 위해 자존심을 중시하는 집단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우리가 실리를 가져갈 때 북한에게는 명분을 주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