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불만을 표현하는 방식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구나 동료에게 불만을 털어놓고 같이 험담을 하는 수준이었다. 지금도 친구나 동료에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함께 불만을 공유한다. 그러나 과거와 지금의 분명한 차이는 ‘기록’의 유무다.
과거 동료와의 험담은 단순히 일회성에 그쳤다. 험담을 하던 자리에 있던 당사자들이 특별히 타인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지 않는 이상 험담의 대상은 그들만의 ‘비밀’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상의 SNS에서 타인에 대한 험담을 할 경우는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확산성을 갖게 된다.
일반인의 경우도 그러한데 많은 국민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축구 국가대표 선수도 마찬가지다. 기성용의 경우는 국가대표팀의 간판선수라는 점에서 그 확산성이나 파장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사실 이번에 문제가 된 기성용의 ‘비밀 SNS 계정’은 시작부터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엄연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온라인 상의 친목수단에서의 비밀은 지켜지기 어렵다.
기성용이 주로 활용했던 트위터는 간단한 클릭 몇 번이면 내가 관심있는 이가 올리는 글을 제한 없이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페이스북은 서로간의 친분을 확인하는 절차가 있지만 친분관계의 범위에 있는 이가 글을 공유할 경우 무섭게 퍼져나갈 수 있다.
더욱이 확실하게 비공개를 목적으로 하는 특정 집단에서 공유하는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구성원 중 누군가에 의해 비밀이 공개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사실상 SNS 자체가 제한 없이 확산될 수 있는 잠재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기성용은 SNS의 이 부분을 고려하지 못한 탓에 결과적으로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누군가에 대한 불만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SNS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접근성이 열려있는 SNS에 공개적으로 특정 대상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은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누구나 실수는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같은 실수를 다시 한다면 지금 국민이 기성용에게 느끼는 아쉬움보다 더 큰 실망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번 일로 분명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기성용이 예전처럼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현재의 논란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고 필요하다면 사과도 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기성용이 최근 인생의 반려자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기성용의 아내인 연기자 한혜진이 기성용보다 8세 연상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회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지금의 기성용에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족이 그 힘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