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원의 He스토리]신세대 해외파의 놀이터가 된 SNS

축구대표팀 내 갈등설, 수면 위로 본격 등장

최강희 감독과 기성용은 축구대표팀 내 곪아있던 갈등설을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윤성호기자
아무리 즐거운 대화라고 할지라도 그 내용을 글로 옮기고 나면 뜻이 온전히 전해지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전달하는 글을 쓰는 것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축구가 이 ‘글’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대표팀 선수들이 활발하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팬들과도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글이 널리 퍼지면서 도마에 올랐습니다.

한국 축구의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합작한 최강희 전 축구대표팀 감독과 국가대표선수 기성용(스완지시티), 그리고 윤석영(QPR)이 한국 축구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태풍의 눈이 됐습니다.

◈기성용-윤석영, 너무 경솔했던 그들의 SNS

논란의 시발점은 우리 축구대표팀의 간판 선수인 기성용입니다. 그는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의 마지막 3연전을 앞두고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에 소집하지 않자 지난달 2일 자신의 트위터에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 그리고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건 리더의 자격이 없다”고 적어 논란을 자초했습니다.

뒤늦게 기성용은 예배중에 나온 설교의 일부였다고 해명했지만 SNS에 올린 글로 인한 논란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는 축구대표팀의 감독과 대표팀에 선발된 선수들을 흔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기성용의 SNS는 활발하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특히 최강희 감독의 후임을 논하는 시점에 그의 SNS에 특정 영어 이니셜이 적힌 모자가 등장해 다시 한번 논란이 됐습니다.

기성용은 자신이 SNS에 올린 글이나 사진이 화제가 될 때 마다 게시자인 본인이 아닌 독자인 일반 대중을 탓했습니다. 자신의 의도가 왜곡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2007년에도 경기력 부족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당시 유행하던 개인 홈페이지에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지”라고 적었던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 그의 해명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최근에는 윤석영도 경솔한 행동으로 스스로 도마에 올랐습니다.

최강희 감독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O형은 성격이 좋지만 덜렁거리고 종종 집중력을 잃는다"라고 말하자 윤석영은 트위터에 "2002 월드컵 4강 -이영표, 김태영, 최진철, 송종국. 2012 올림픽 동메달-윤석영, 김영권, 김창수 그리고 아쉽게 빠진 홍정호. 이상 모두 혈액형 O형"이라고 적었습니다.

윤석영의 글 역시 기성용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고, 결국 그는 하루도 안돼 자신의 뜻이 잘못 전달됐다는 변명을 늘어놨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누가 봐도 최강희 감독의 발언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윤석영 역시 최종예선 3연전에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최강희 감독은 전임 조광래 감독에 비해 국내파를 중용했습니다. 해외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라고 할지라도 주전이 아니라면 차라리 국내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는 선수가 더 낫다는 감독 개인의 축구철학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해외파 선수들은 국가대표팀에서 예전만 못한 대우를 받았고, 결국 갈등이 수면 아래서 곪아오다 이번에 제대로 터진 것입니다.

◈대중에 공개된 SNS, 놀이터가 아니다

SNS는 분명 누군가 보라고 글을 적거나 사진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마치 과거에 게시판에 글을 적거나 그림을 걸어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 상식입니다. 요즘은 일반인들도 SNS를 통해 과거의 잘못된 행동이나 발언이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는 세상입니다.

대중의 큰 인기와 관심을 받는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누군가에 대한 불만을 혼자만 보고 감상할 것이었다면 애초부터 대중에 공개된 공간에 내놓지도 않았을 겁니다. 차라리 일기장에 더한 글을 써놓고 혼자 실컷 욕을 했다면 남들 모르게 자기 스스로는 만족스러웠을지 모를 일입니다.

이제와 축구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의 진흙탕 싸움을 지켜보고 있자니 왜 우리 대표팀의 경기력이 그토록 실망스러웠나 이해가 됩니다. 단순히 감독과 선수가 아닌 한국 축구사의 한 페이지에 영광된 이름을 새긴 선후배간의 존경과 배려가 없는 상황에서 좋은 경기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축구대표팀이 어렵사리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위업을 이루고, 또 국민의 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갓 잡은 시점에 한국 축구는 스스로 벼랑 끝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기성용과 윤석영이 국내는 물론, 유럽무대에서도 인정받은 경기력까지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축구선수는 그라운드 위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 한국 축구 전체의 큰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대중을 향해 굳게 입을 닫은 것과 동시에 뛰어났던 경기력까지 잃은 듯한 박주영(아스널)의 안타까운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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