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 금리 대출상품의 비중 확대와 행복기금 지원, 하우스푸어(내집빈곤층) 채무 재조정, 대부업과 불법 사금융 감독 강화가 핵심이다.
그러나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해진 근본 원인이 경기 불황 장기화와 부동산 침체여서 정부 처방이 약효를 발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정부는 가계 부채의 증가세가 둔화하는 등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 아래 모니터링 강화를 통해 연착륙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 가계부채 1천조 육박…8년새 배증
3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 당국이 가계부채 청문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현재 가계부채 규모는 961조6천억원이다.
2004년 말 가계부채가 494조2천억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8년여만에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외환위기 이후 빠르게 증가해 온 가계부채는 2000년대 후반부터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됐다.
특히 최근 수년간은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경제성장이나 소득증가세를 앞질렀다.
1999∼2012년 연평균 가계부채 증가율은 11.7%였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은 7.3%,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5.7%씩 늘었다.
결국, 2011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89.2%까지 올라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 74.5%를 15%포인트가량 웃도는 수치다.
이처럼 증가세를 이어온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963조8천억원으로 정점을 찍고서 올해 들어서는 다소 주춤하는 양상이다.
증가율은 2011년 2분기(전년 동기 대비) 9.6%에서 같은 해 4분기 8.7%, 2012년 2분기 5.9%, 같은 해 4분기 5.2%로 한풀 꺾였다.
정부가 2011년에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을 추진하고 부동산 경기도 장기간 침체국면을 보인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양적 증가세는 어느 정도 제어되고 있는 셈이다.
◇비은행·저소득층·고령자 대출 위험 수위
그러나 '질적 구조'는 여전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가계부채의 구조적 측면을 뜯어보면 일시상환 대출 비중이 높고 고정금리보다 변동금리 비중이 높다.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일시상환 비중은 지난해 말 현재 33.7%다. 비거치식 분할상환 비중은 13.9%, 고정금리 비중은 14.2%에 머물고 있다.
단기·일시상환, 거치식 분할상환 비중이 높다 보니 주택담보대출 중 72%(은행권 기준)는 원금상환 없이 이자만 내고 있어 가계대출의 지속적 증가를 이끌고 있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비은행권 대출이 많이 늘어난 것도 취약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가계대출 중 비은행대출 비중은 2008년 43.2%에서 올해 3월 말 49.1%로 늘었다.
저소득·고령층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높아 상환 부담이 큰 점도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3월 현재 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1분위가 184%로 2분위(122%), 3분위(130%), 4분위(157%)를 앞지른다.
연령별로는 20대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88%인데 비해 30대는 152%, 40대는 178%, 50대는 207%, 60대 이상은 253%로 나이가 들수록 높아졌다.
특히 고령층은 소득이 없고 금융자산이 적으면서 부동산 자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금융기관에 빚을 진 다중채무자가 322만명으로 추산되는 점, 주택시장의 부진으로 주택담보대출 상환능력이 하락한 하우스푸어(내집빈곤층)가 9만8천명(금융연구원 추산)에 달하는 점도 가계부채 구조의 취약점으로 꼽힌다.
◇정부 "관리 가능하나 경기회복 저해 요인"
정부는 현재 가계부채 규모가 관리 가능하다고 보면서도 과도한 부채 부담이 경기 회복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과거 외환위기 및 카드사태,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등과 비교해볼 때 현재의 가계부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전년 대비 가계신용 증가율은 22.1%, 신용카드 사태 직전인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27.1%에 달했지만 올해 1분기 기준으로 보면 4.9%에 불과했다.
이런 차원에서 정부는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부문까지 흔들만한 리스크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환능력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소득 4∼5분위의 고소득 차주가 전체 가계부채의 71.0%를 갖고 있는데다 금융권 담보인정비율(LTV)도 50% 수준이어서 집값이 더 내려가더라도 금융회사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가계부채 상환 부담이 소비를 제약해 경기 회복을 지연시킬 우려가 있다며 심각성을 공식 경고했다.
특히 저소득층은 평균소비성향이 높고 원리금 상환부담이 커서 경기 부진 지속 때 소비 여력이 많이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은 작으나 취약계층이나 제2금융권 등으로 전이될 위험은 일부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분할상환·고정금리 전환 유도…계층별 맞춤 지원 강화
금융 당국은 가계 부채 문제의 해소를 위해 일시 상환, 변동 금리, 거치식 중심의 대출 구조가 분할 상환, 고정 금리, 비거치식으로 전환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현재 전체의 14% 수준인 고정금리, 비거치식 분할상환대출 비중을 2016년 말 30%까지 늘린다는 것이다.
주택금융공사를 통해 고정금리 대출채권 유동화를 지원하고 은행의 장기·고정금리 자금조달 여건 조성을 위해 커버드 본드 도입을 위한 특별법 제정도 추진 중이다.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금융사에 대해서는 영업 행위의 적절성 등을 수시로 점검할 계획이다. 경상 국내총생산(GDP)이나 가처분소득 증가에 비춰 가계 부채가 너무 가파르게 늘지 않도록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나 실물 경기의 악화 가능성에 대비해 지나치게 높은 담보인정비율(LTV)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는 대손충당금 적립도 강화할 방침이다.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도 정기적인 LTV 평가시스템을 구축하고 개인신용평가시스템을 개선하도록 할 계획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에 따라 대출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도 강화한다. 대출 금리, 중도상환수수료 등의 비교 공시도 강화된다.
행복기금과 금융권 자체 채무조정 활성화를 통한 맞춤형 지원도 이뤄진다.
이달부터 일괄매입 연체채무에 대해 채무조정 신청을 적극적으로 유도해 행복기금 수혜자를 늘릴 방침이다.
하우스푸어 구제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금융권과 신용회복위원회의 자율적인 채무조정 활성화도 유도한다. 주택금융공사의 주택연금 사전가입제, 주택담보대출채권 매각 제도, 캠코의 부실채권 매입 제도도 활성화한다.
국민주택기금으로 이뤄지는 주거 안정 주택 구입자금 및 전세자금대출 등도 은행 성과평가지표(KPI)에 포함하기로 했다.
서민금융 기관 및 상품 간 연계성을 강화하고 신용 회복을 통한 자활 능력 제고, 취업지원 강화 등 질적 개선에도 초점을 둬 서민금융 정책을 운용할 예정이다.
은행권 중심의 저신용·다중 채무자에 대한 프리워크아웃(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제2금융권으로 확대하고 자영업자에 대한 프리워크아웃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저신용자의 특성을 반영한 신용평가모형도 구축된다.
저신용자들이 몰리는 대부업 관리도 강화된다.
등록 대부업자에 대한 자본금 요건을 도입하는 등 영세 대부업체의 난립을 막고 대형 대부업체에 대한 금감원 직권 검사를 강화할 방침이다. '불법 사금융 대책 태스크포스'를 지속적으로 운영해 불법 고금리·채권 추심을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광역 자치단체에 설치한 서민금융종합지원센터도 활성화하기로 했다.
◇ 일자리 창출…부동산도 정상화
기재부는 이에 따라 총량관리 등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을 지속하는 가운데, 창조경제 실현, 일자리 창출 등 채무상환능력을 제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근본적으로 민생부담을 완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가계소득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맞춤형 기초생활보장체계 시행방안을 마련해 생계비 부담도 줄이기로 했다.
부동산시장 정상화 노력을 지속해 주택담보가치 하락이 가계부채 리스크로 전이되지 않도록 관리하기로 했다.
주택 공급물량을 신축적으로 조정하고 생애 최초 주택구입 자금 지원요건을 완화하는 등 수급 여건을 개선함과 동시에 다주택자 등에 대한 양도세 중과폐지, 단기보유 양도세 중과완화, 분양가 상한제 신축적 운영 등 규제도 합리화하기로 했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가 대규모로 부실화될 경우를 대비해 컨틴전시 플랜도 마련했다. 최악의 경우 배드뱅크를 설립해 부실채권을 인수하고 채무조정도 광범위하게 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