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단기적 처방으로서의 효력은 인정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반응이다.
◈ 냉각된 회사채 시장…정부 대책 고심
기업의 자금 조달 역할을 하는 회사채 시장은 심각한 양극화가 진행 중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 들어 회사채 순발행액은 신용등급 A 이상이 8조 9천억원이었지만, 신용등급 BBB 이하는 1조 3천억원 줄었다. 4월 말 현재까지 회사채 발행액은 18조원에 불과해 지난해 대비 32% 수준으로 집계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설, 조선, 해운 등 3대 취약업종의 내년 만기 도래액이 약 8조 3천 7백억원에 달하고, 이 가운데 6조 300억원이 내년 상반기 만기다.
최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계획 발언은 채권 금리 상승으로 인한 가격 하락을 부추겼다.
결국 정부가 나서 자금난에 빠진 업체들에 대한 구제에 나선 가운데 '회사채 신속인수제'와 '채권시장안정펀드' 도입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채권 은행들끼리 지원 자금난을 겪고 있는 비우량 대상 기업을 정한 뒤, 이 기업이 사채를 발행하면 산업은행이 인수해 주는 제도다.
산은이 인수한 회사채를 담보로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채권(P-CBO)를 발행하고 기관투자자들에게 판다. 이때 신용보증기금이 보증을 서는 식이다.
정부와 한은은 각각 5천억원씩 신보에 자금을 내고 최대 10~20조원까지 보증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지난 2001년 시행했다가 미국에서 '보조금 성격'이라며 무려 40% 이상의 보복 관세를 물렸던 뼈아픈 기억이 있을 정도로 '통상 마찰'의 우려가 있다.
채권시장안정펀드는 금융사들의 자금으로 펀드를 만들어 회사채를 사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통상마찰 우려가 큰 회사채 신속인수제나, 민간 금융기관의 자발성을 이끌어내야 하는 채권시장안정펀드 도입 모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이밖에 담보부사채 활성화, 적격기관투자가(QIB) 제도 개선 등에 대해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신속인수제, 채권시장안정펀드 모두 '양면성'
금융계는 당장 수혜를 받게 될 업계들의 '기대감'을 제외하고는 '신중론'이 지배적이다. 현재까지 검토되는 대책들이 경험적으로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특히 회사채 신속인수제의 경우 통상 마찰에 대한 정부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향후 1년까지로 한정한다'는 등의 단서 조항을 달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국에 공격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다.
채권시장안정펀드의 경우도 채권 시장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는 있겠지만 민간 금융기관의 협조를 위해서는 일정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이 난제로 작용한다.
따라서 정부가 내놓을 자본시장 안정화 대책은 시장의 기대감을 불어넣는 활력소, 일시적으로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는 정도에 그칠 뿐, 근본적 문제 해결책은 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 외국에서 활용하고 있는 회사채 펀드의 도입 ▲ 회사채 유통시장의 활성화 등 도입을 통해 회사채 시장의 체질을 개선하고 수요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연구원 황세운 연구위원은 "단기적 처방은 회사채 시장의 체질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며 "장기적 차원에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회사채 펀드의 도입을 통해 시장의 체력을 기르고 유통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이달 초로 예정됐던 회사채 시장 안정화 방안 발표를 앞두고 관계기관과 세부 내용에 대해 조율 중이다. 당장 2,3일 내에는 발표가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까지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도 "(회사채 신속인수제와 같은) 과거의 회사채 관련 대책들을 토대로 검토하고 있지만 똑같은 방안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계기관 출연 여부를 협의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