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 후 취업이 현실로 다가오자 전 씨는 업계의 연봉을 검색해봤다. 그의 눈에 띈 것은 고연봉 리스트에 올라와있는 '자산관리사'였다. 한창 주식과 펀드 붐이 일던 때 적립식 펀드에 가입해 돈을 벌게 되면서 '이 길이 내 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전 씨는 곧바로 경제학과로 전공을 옮겼고 그의 직업관은 확고했다.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든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똑같이 힘든 일 하는 거면 이왕이면 돈 많이 받는데 가라고 선배들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전 씨와는 반대로 서울의 유명 사립대 미대를 졸업한 김모(29·여)씨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모 기업의 제품 디자이너로 취업했다. 그녀의 첫 연봉은 1800만원. 지금은 4년이 지나 대리로 승진하면서 연봉이 2000만원을 넘어섰다. 야근에 주6일 근무도 잦은 김 씨. 단순업무도 아닌 창조성과 전문성을 가진 자신의 업무에 비해 너무 얇은 월급봉투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디자인은 창의적이고 전문업종인데도 연봉이 너무 낮고 처우도 안 좋아요. 대학 다닐 때는 비싼 등록금 내서 다니고 사회 나와서는 대우도 못 받고…. 워낙 급여가 낮다 보니까 일을 그만 두는 사람이 많죠. 주변엔 그냥 학원강사로 진로를 바꿔서 돈을 더 많이 버는 경우도 꽤 있어요."
대한민국의 산업간 임금 격차가 심각하다. 최근 서울연구원 경제분석센터에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업종별 월평균 임금은 금융·보험업이 349만원으로 제일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숙박·음식점업은 141만원으로 최저를 기록했다. 금융보험업과 비교할 때 200만원 넘게 차이가 난다.
각 산업이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가 다르고, 노동집약이냐 자본집약이냐에 따라 부가가치도 차이가 난다. 때문에 산업 간의 임금격차는 어느 나라나 존재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좀 더 심각하다.
한림대 조동훈 교수가 지난 2010년 12월 발표한 '패널자료를 이용한 산업간 임금격차 분석' 논문에 따르면, 모든 조건이 같은 근로자라도 금융·보험·임대업에 종사할 경우 임금이 전체 산업 평균보다 10.6% 더 높았다.
조건을 통제하면 이론적으로는 격차가 발생하면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외부적인 변수에 의해 격차가 발생하게 된다. 조 교수는 "근로자의 학벌이 더 높아서 개개인의 생산성이 더 높을 수 있고, 또는 해당 산업이 독점구조이거나 정부의 보호를 받는 등의 특성 때문에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09년 금융업계 대졸 초임을 낮추자는 논의가 제기될 정도로 우리나라의 금융업종은 지나치게 고임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금융소비자원 조남희 대표는 "은행의 경우 정부의 지원과 특혜 속에서 독과점 기반을 갖추면서, 그 수익이 자신들의 성과인양 자연스럽게 급여와 연결됐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한국의 금융경쟁력은 세계 71위에 불과하고 업무의 난이도도 높지 않은데 일하는 것에 비해 너무 많이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적정규모 이상의 임금격차는 사회 불안을 가중시킨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사회적 박탈감 등으로 인한 불만이 커진다.
고려대 노동대학원 김동원 교수는 "양극화가 심해지면 길게 보면 교육 등에서 불평등이 생기고, 남미처럼 똑똑한 사람이 나올 수가 없게 된다"며 "기업이 사람을 뽑아도 능력이 없고 대학은 피폐해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 5.30 노사정 협약에서도 노사 양측은 공기업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고임금 부문의 임금인상 자제를 통해 일정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비정규직과 협력기업 근로자의 처우개선에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번 협약은 민주노총이 빠지는 등 그 실천력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사정 협약의 실천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