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까지 확산된 '욱일승천기' 논란…왜?

욱일기 사용한 외국인들 "의미 잘 몰랐다"

'욱일기(旭日旗)'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게임에서까지 화제다.


영국 워게이밍사(社)는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쉽'의 내년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항공모함과 잠수함의 전투를 그린 게임이다. 논란은 이 게임의 홍보영상에 '욱일기'가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한국 게이머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워게이밍사는 이후에 공개한 홍보 영상에서는 욱일승천기 대신 일장기로 바꿨다.

(사진=월드 오브 워쉽 홍보 영상 갈무리)
하지만 워게이밍측은 홍보 영상에서만 이를 삭제했을 뿐, 한국과 아시아 지역을 제외한 곳에 출시되는 게임에서는 욱일기를 그대로 사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드 오브 워쉽의 전작인 '월드 오브 탱크'에서 독일 탱크에 하켄크로이츠 대신 독일 국방 군기를 달았던 것과는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이다.

욱일기를 그대로 사용할 것이라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4만명이 가입해 있는 네이버 게임카페 '월드오브탱크wot'의 운영자는 27일 욱일승천기를 삭제해달라는 서명운동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 욱일기 사용한 외국인들, "의미 잘 몰랐다"

지난달 뉴욕시는 최초로 한인사회에 사과했다. 뉴욕시가 곳곳에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광고 이미지를 사용하자, 뉴욕한인학부모협회가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에게 항의서한을 보냈기 때문이다.

뉴욕시는 "욱일기를 의도할 의사는 절대 없었다. 문제의 광고가 여러분과 또 다른 분들께 아픔을 준 것을 사과드린다"며 "광고 디자인을 새로 제작, 문제의 디자인을 다시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에는 UFC 웰터급 조르쥬 생피에르가 욱일승천기가 그려진 도복을 입고 나온데 대해 '코리안좀비' 정찬성이 SNS로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정찬성은 팬들의 도움을 받아 '욱일승천기는 독일 나치와 똑같은 것'이라는 내용을 생피에르에 전달했다. 생피에르는 "몰랐다"며 즉시 사과하고 나섰고, 해당 의류업체도 다시는 욱일승천기 문양을 쓰지 않겠다고 밝혔다.

◈ 독일의 하켄크로이츠는?

일본 욱일기와 자주 비견되는 독일의 '하켄크로이츠'는 어떨까. 현재 독일은 하켄크로이츠의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독일 스스로가 문양의 사용을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정서상으로도 하켄크로이츠의 사용은 강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미국인은 포켓몬스터 카드에 뒷편에 '卍' 문양이 "하켄크로이츠를 연상케 한다"고 항의했다. 실제로 해당 문양이 교체됐다. 스페인 의류 브랜드 자라도 힌두교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卍 문양을 가방에 수놓았다가 영국인의 항의를 받고 모든 재고를 폐기처분한 바 있다.

비단 문양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서양에서는 하켄크로이츠뿐만 아니라 '히틀러', '나치식 경례' 등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상징하는 어떤 형태의 것도 거부하는 사회적 합의가 자리잡고 있다.

(사진=유튜브 영상 갈무리)
미국 대형 체인백화점 JC페니는 주전자의 형태가 히틀러와 닮았다는 이유로 멀쩡히 판매하던 주전자 장사를 접어야 했다. 주전자는 손잡이 부분 히틀러 특유의 가르마를, 몸통은 콧수염을, 주둥이는 나치식 경례를 하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킨다며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JC페니는 이에 대해 의도가 없었다고 부인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켜 온라인 판매를 중단하고 광고판도 내리겠다"고 밝혔다.

그리스 프로축구선수인 기오르고스 카티디스는 골을 넣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 세레모니를 펼치다 대표팀에서 쫓겨나는 등 중징계를 받았다. 그리스 축구협회는 성명을 통해 "카티디스의 행동은 나치의 잔혹함에 희생된 모든 영령에 대한 모욕"이라고 전했다.

◈ 계속되는 욱일기 논란… 전범기? vs 디자인?

우리나라에서도 욱일기에 대한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다. 군국주의의 상징이기 때문에 '전범기'로 불러야 된다고 강력하게 말하는 사람부터, 단지 햇빛이 뻗어나가는 형태의 디자인에 불과하다고 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축구대표팀 박종우의 징계여부가 논란이 됐을 때도 어김없이 욱일기는 화제의 중심이 됐다. 일본 올림픽 체조 국가대표들의 유니폼에는 대놓고 욱일승천기가 형상화되어 있는데, 왜 박종우에게만 '정치적인 이유'를 문제삼느냐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지난 4월에는 대학생들이 욱일승천기와 흡사한 배경 앞에서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는 사진이 논란이 됐다. 디자인학과로 밝혀진 이 학생들은 "중앙을 향한 집중을 나타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거세지자 공식사과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욱일기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맥락을 먼저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디자인일지도 모르지만, 그 깃발 아래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또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독일처럼)우리나라 상황에서 욱일기 사용 여부를 법적으로 정하는 것은 하책(下策)"이라며 "욱일기라는 상징 뒤에 담긴 역사적 맥락을 먼저 읽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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