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을 내밀어도 통 관심을 보이지 않던 유기견들은 기자가 낯설었는지 10여년간 할머니가 과일을 팔던 노점 안쪽으로 급히 몸을 숨겼다.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옆에서 지켜본 유일한 가족이었지만 여전히 할머니를 기다리는 듯했다.
28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와 인근 주민 등에 따르면 서울시 중구 중림동 사거리에 있는 이 과일 노점의 주인은 60대 후반의 김모씨다.
찻길에 인접한 인도 끝 낡은 파라솔 밑에 자리 잡은 이 과일 노점은 할머니가 지난 10여년간 생활했던 일터이자 쉼터였다.
할머니는 낮에는 여기서 과일과 채소를 팔았고 해가 지면 동네를 돌며 폐지와 고물을 수집했다.
사별한 남편과 출가한 자식들의 빈자리는 길에서 데려온 유기견들이 채워줬다.
주민들의 기억에 할머니 곁에는 항상 유기견 두 마리가 함께했다. 그 중 황구 한 마리는 동네 상인들이 '똑똑'하다고 할 정도로 할머니를 잘 따랐다.
행인들이 큰 소리를 내도 짖지 않을 만큼 온순했지만 술 취한 노숙인들이 할머니를 위협하면 동네가 떠나갈 만큼 크게 짖으며 할머니를 지켰다고 한다.
노점에서 동네 상인들과 얘기를 나누며 폐지를 정리하면 금세 해가 졌다.
하나 둘 상인들이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도 집에 가지 않고 노점 바닥에 누워 눈을 붙이고 새벽 다시 폐지를 주우러 나가곤 했다.
걸어서 1분 거리에 세들어 살던 지하방이 있었지만 방에는 지난 수년간 모아두고 정리하지 못한 폐물들이 쌓여 있었고 요즘엔 찌는 듯 더웠기 때문이다.
불행이 닥친 지난 26일 밤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폐지를 정리하고 노점 옆에 은색 돗자리를 덮은 채 잠이 들었다.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 노점 앞 신문사 지국 앞에서 신문을 실은 1톤짜리 화물차는 잠이 든 할머니를 못 본 채 내달렸고 머리를 치인 김씨는 그 자리에 숨졌다.
한 동네 상인은 "작년에도 교통사고를 당해 한동안 장사를 안 하시다 일주일 전쯤 다시 나오신 건데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