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지난 24일 대화록 발췌본과 원본을 공개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정상회담의 당사자였던 북한은 대화록 공개 이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오늘(27일) 새벽 조평통 대변인 명의의 긴급성명에서 "일방적으로 '수뇌 상봉 담화록'을 공개한 것은 우리의 최고존엄에 대한 우롱이고 대화상대방에 대한 엄중한 도발"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예상은 했지만 상당히 고강도의 반발이다.
사실 오늘 주제는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북한은 왜 잠잠할까?"였다. 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된 지 사흘이 지나도록 북한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새벽 긴급성명 형태로 비난성명을 발표해 급하게 [Why뉴스] "정상회담 대화록, 북한은 왜 뒤늦게 강력 반발하나?" 로 주제를 바꿔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북한의 성명을 보면 앞으로 남북대화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 그렇다. 상당히 강경한 내용의 성명이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오늘 새벽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긴급성명을 발표했는데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최고존엄에 대한 우롱"이고 "대화 상대방에 대한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의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이름의 성명을 내고, 북측의 승인 없이 남북 담화록을 공개한 것은 "최고 존엄에 대한 우롱이자 대화 상대방에 대한 엄중한 도발"이라고 비난한 뒤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평통 대변인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말끝마다 '신뢰'를 말하지만 가장 신성시해야 할 북남수뇌분들의 담화록까지 서슴없이 당리당략의 정치적 제물로 삼는 무례무도한 자들이 그 무슨 신뢰를 논할 체면이 있는가"라고 꼬집으면서 "도대체 (남측이 말하는) '수뇌상봉', '정상외교'의 진정성을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북남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에 바른 마음을 가지고 나설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이번 담화록 공개가 청와대의 현 당국자의 직접적인 승인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면서 청와대 개입설을 주장했다.
조평통은 이어 대화록 공개의 배경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규탄과 항의의 여론을 딴데로 돌리고 통일민주세력을 '종북'으로 몰아 거세말살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력 비난했다.
북한은 특히 "사실 '종북'을 문제시하려 든다면 역대 괴뢰당국자치고 지금까지 평양을 방문했던 그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언급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지금까지 북한을 방문했던 우리 정부 관계자들이 종북성 발언을 했다는 얘기냐?
= 그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2년 5월 13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던 사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한국미래연합창당준비위원장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배석자 있는 대화와 단독대화를 했다.
북한의 성명으로 미루어 북한이 김정일 박근혜 대화록을 공개할 수 있음을 강력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북한이 '역대 괴뢰당국자'라고 구체적으로 언급을 했는데 2000년 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관계자를 괴뢰당국자라고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새누리당이나 그 전신인 한나라당 관계자들을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총선직후 보수 진영이 통합진보당에 대해 '종북 좌파' 공세를 펼치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의 공개질문장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장군님의 접견을 받고 평양시 여러 곳을 참관하면서 친북 발언을 적지 않게 했다"면서 "필요하다면 박근혜, 정몽준, 김문수 등이 평양에서 한 행적과 발언을 전부 공개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 곧바로 공개할지는 미지수다. 북한으로서는 매우 강력한 대남 압박카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제든 공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 간 신뢰의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간 대화록이 공개된 마당에 무엇이든 공개하지 못할게 있겠나? 다만 북한으로서는 어떤 상황 어느 시점에 공개하느냐를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간 관계가 계속 꼬인다면 북한은 조만간 박근혜-김정일 대화록을 비롯해 그동안 북한을 방문한 남측관계자들의 발언록이 공개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26일 긴급 중진회의에서 "2002년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화록 공개를 촉구"했다.
박 의원은 새누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화 태도를 비판하는 데 대해 "외교적 수사를 갖고 전체를 호도하고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에서 칭찬일색이라면 박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당신은 주적(主敵)이다'며 싸웠냐?"라고 반문했다.
▶북한이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는?
=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최고 존엄'과 관련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화록이다.
그 대화록 전체를 공개했다. 남북간 어떤 대화가 오고 갔고 김정일 위원장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 모두 드러난 것이다. 이른바 최고 존엄을 건드린 것이다.
조평통 대변인이 '최고존엄에 대한 우롱'이라고 언급한 대목이 이를 반증한다.
조평통은 성명에서 "괴뢰보수패당이 수뇌상봉담화록을 공개한 것은 추악한 정치적야욕을 위해서라면 민족의 존엄도 최고리익도 서슴없이 짓밟는 가장 추악한 반역무리들만이 할 수 있는 반민족적대결망동의 극치이다"면서 "괴뢰보수패당이 우리의 승인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수뇌상봉담화록을 공개한 것은 우리의 최고존엄에 대한 우롱이고 대화상대방에 대한 엄중한 도발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족대결에 미쳐 날뛴 리명박패당도 북남수뇌상봉담화록만은 감히 공개하지 못하였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탈북단체들의 '대북삐라' 살포에 강력히 반발하며 '원점타격'을 주장하는 것도 삐라에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나 김정은 제1비서를 비난하는 사진이나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 것 같나?
= '예측불가', '오리무중' 어떤 어휘로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미 남북 당국간 대화를 추진하다가 '격', '급' 문제로 회담이 무산됐는데 남북 당국간 신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됐으니 당분간 남북간 대화를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북전문가들은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신뢰의 프로세스'가 아닌 '대결의 프로세스'로 가겠다는 걸 선언한 셈이 됐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상회담 대화록'은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 오고간 대화들을 기록한 것으로 북한으로서는 매우 민감한 '존엄'과 관련된 내용이다.
조평통 대변인의 성명이 대화록이 공개된 지 사흘이나 지나서 나온건 북한의 '최고 존엄'과 관련된 문제는 '최고 존엄'이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김일성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탈북한 새누리당 조명철 교수는 "이른바 '최고 존엄(김정일)'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북의 반응이 늦어지는 것"으로 분석을 했다.
조 의원은 "최고 존엄과 관련해 대응할 때는 통전부장의 결심만으로는 안되고 최고 존엄인 김정은 제1비서의 결심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 결심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다는 것은 북한 김정은 제1비서가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조평통 대변인 성명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괴뢰보수패당(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이번 망동을 절대로 용납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만큼 당분간 남북관계를 예측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 오간 100쪽짜리 대화록 전문은 8쪽짜리 발췌본과 큰 차이가 있다.
전문에는 당시 대화 분위기와 배석자들이 대화에 참여했는지 등이 드러나 발언의 전후 맥락을 파악할 수 있지만, 발췌본은 노 전 대통령의 발언 중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부분만을 떼내서 정리한 것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NLL 포기발언을 했는지 여부이다. 당초 새누리당의 서상기 정보위원장, 정문헌 정보위 간사 등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주장했던 명분은 회의록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정원이 공개한 8쪽짜리 발췌본, 105쪽짜리 전문에는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다고 표현한 대목은 없었다.
새누리당이 NLL 포기발언이 있었다고 주장한 발췌본에서도 노 전 대통령은 NLL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 평화·경제 지도를 크게 덮어서 그려보자고 제안한 서해 평화지대 구상을 밝힌 것이다.
NLL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위원장하고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NLL은 바꿔야 합니다"라고 말한 부분을 문제삼고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은 바로 다음 문장에서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경제 지도를 크게 위에다 덮어서 그려보자는 것입니다"라며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이것은 NLL을 평화적 방법으로 평화를 지키는 평화선으로 유지하자는 제안이었다. 분명한 것은 이 문서 어디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정일 위원장의 말 가운데 NLL을 변경한다든가 폐기한다는 말이 없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고하는 형식이었다고 주장한 부분도 차이가 있다. 발췌본에는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표현만 있었지만 전문을 살펴보면 김 위원장이 앞서 김계관 외무부상에게 보고를 지시한 부분이 나오는데 노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보고했다는 내용이 아니라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보고에 대한 발언을 말하는 것이다.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이 “양국 정상간 대화가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보고하는 형식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이는 발췌본을 보고 잘못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핵문제 해법에 대해서도 발췌본에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해법을 거부하는 것처럼 표현돼 있지만 전문에는 핵 문제 해결을 위해 김 위원장에게 확인을 요구하는 대목이 나와 있다.
이처럼 서상기 위원장 등 새누리당 관계자들이 그동안 열람을 통해 확인했다며 주장했던 내용과 회의록 전문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발췌본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왜곡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발췌본은 누가 만든 것일까?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재직당시 발췌본을 만든 일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김 전 원장은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재직 중에는 발췌본을 만들지 않았다"며 "정문헌 의원이 본 것이 발췌본일 가능성이 있고, 정문헌 의원에 대한 검찰수사때 국정원이 발췌본을 제출했을 것"이라며 "이번에 공개된 발췌본이 새로 작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발췌본은 국정원에서 만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만들어진 시기와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나온다.
국정원이 왜 만들었는지 그리고 본문과 달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발언만 따로 모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앞으로 밝혀져야 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