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을 만큼 벗은 걸그룹, 이젠 판타지를 입다

무작정 벗는 시대는 지났다. 하의의 길이가 짧아질 대로 짧아지고 나니 이젠 ‘어떻게 벗는지’가 중요해졌다. ‘봉춤’을 추거나 치마를 찢었다 붙였다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랑루즈’ 콘셉트를 앞세운 씨스타, ‘봉춤’의 애프터스쿨, ‘마릴린먼로’를 연상시키는 달샤벳에 ‘구미호 꼬리’를 단 걸스데이가 합류하며 걸그룹 섹시경쟁에 불이 붙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섹시미 완전 무장’이다. 벗을 만큼 벗었다. 차별화라면 예전과 달리 노출과 섹시에 제각각 특정 테마를 더해 판타지를 자극한다는 점.

‘기브 잇 투 미’(Give It To Me)를 발표한 씨스타는 영화 ‘물랑루즈’를 연상시키는 ‘쇼걸’로 변신해 아찔한 터치댄스를 선보였다. 탄탄한 허벅지를 훤히 드러내며 기존의 ‘건강한 섹시미’를 고수했고 한층 더 화려해진 퍼포먼스로 세련미와 웅장함을 더했다.

애프터스쿨은 신곡 제목 ‘첫사랑’과는 상반되는, 섹시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봉춤’으로 남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했다.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의상에 7개월간 연습했다는 고생담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의 완벽한 퍼포먼스로 섹시미를 극대화했다.

달샤벳은 ‘내 다리를 봐’라는 신곡 제목처럼 더 노골적이다. 지하철 통풍구에서 치마가 날리는 마릴린먼로의 모습에서 따왔다는 ‘먼로춤’은 묘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접착식 치마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치마를 펼쳐 다리를 훤히 노출한다.

‘여자대통령’을 발표한 걸스데이는 골반을 튕기고 엉덩이를 흔드는 ‘구미호춤’을 준비했다. 상의부터 이어져 뒷부분만 길게 늘어진 의상으로 꼬리를 형상화했고 이 꼬리를 흔들어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을 표현했다.

걸그룹의 섹시경쟁에 여전히 선정성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일단 벗고 ‘쩍벌춤’ 등 야릇한 동작을 반복하던 것에선 분명 변화한 모양새다.

이들의 소속사 측은 해당 콘셉트를 내세운 이유에 대해 하나 같이 ‘차별화’라고 말했다. 하의길이가 더 이상 짧아질 데가 없고 다리도 찢을 만큼 찢은 상황에서 섹시로 어필하기 위해선 또 다른 자극을 더해야 한다는 걸 충분히 인지한 결과다.

그것이 ‘쇼걸’이고, ‘마릴린 먼로’고, ‘봉춤’이고, ‘구미호’다.

레인보우가 춤을 추면서 상의를 슬쩍 들어 올리고, 씨스타가 옆트임이 있는 치마를 입고 다리를 들었다가 내리며 상상력을 자극했던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

대중음악평론가 강태규 씨는 “노출이 점점 심해지고 많아지다 보니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분산된다. 노출에는 한계가 있고 좀 더 관능적인 걸 찾을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소녀시대나 최근 씨스타를 제외하고 메가히트를 기록하는 걸그룹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결국 시각적 이벤트의 남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긍정적으로 보면 좀 더 다양한 표현방식이 나오게 될 수도 있지만 음악에 퍼포먼스를 맞추는 게 아니라 퍼포먼스에 맞는 음악을 찾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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