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장 국장은 언어 장벽과 활발하지 못한 대외 교류를 원인으로 꼽았다.
중국 영화하면 높낮이가 큰 중국어의 성조 때문에 시끄럽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을 터다. 괴성이 난무하는 쿵후 영화나 우스꽝스러운 발성의 코미디 위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까닭이리라.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중국 영화계에서는 세대별로 뚜렷한 색깔을 지닌 감독들이 제도권 안팎으로 다양한 영화적 실험을 진행해 왔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붉은 수수밭'의 장이머우, '패왕별희'의 천카이거는 중국 5세대 감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최근 6세대 감독들은 경제 발전과 더불어 성장한 자국의 상업 영화 안에 다양한 사회 문화적 메시지를 담아내려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중 합작 영화 '이별계약'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중국 영화의 현재를 보여 줌으로써 우리가 가진 편견을 깨는 데 보탬을 주는 덕이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의 CJ E&M과 중국 제작사가 5대 5로 투자해 만든 영화로, 감독을 비롯한 주요 연출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지 영화인들이 참여했으며 중국에서는 자국 영화로 개봉됐다.
첫 고백, 첫 키스…. '첫'이라는 말이 붙는 많은 것들을 함께 해 온 연인 리싱(펑위옌)과 차오차오(바이바이허).
둘은 차오차오의 갑작스러운 이별통보로 5년 동안 서로 떨어져 있자는 이별계약을 하게 되고, 5년 뒤에도 둘 다 혼자라면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채 헤어진다.
계약 기간이 끝나갈 무렵 차오차오는 리싱으로부터 결혼 소식을 듣고 혼란스러워한다.
카메라는 베이징과 상하이를 오가며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고 비싼 자동차를 타며, 세련된 옷차림으로 치장한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비추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특이한 점은 비슷한 류의 기존 중국 영화에서 봐 왔던 과장된 말과 몸짓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남녀 주인공의 대화는 성조를 의식적으로 억누르는 듯 차분하고 표정과 몸짓은 절제돼 있다.
오히려 한국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한국 연출진이 배우들에게 의도적으로 주문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로 흐르던 이 영화는 관객들이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감정을 이입하게 될 즈음 이야기 구조를 비극으로 확 튼다.
그렇다. 이별계약은 1990년대 한국 영화 시장을 주름잡던 최루성 멜로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의 오기환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그는 이미 이정재 이영애 주연의 '선물'(2001년)을 통해 최루성 멜로 분야에서 탁월한 감각을 인정받았다.
오 감독에게 최루성 멜로의 불모지인 중국 시장을 겨냥해 선물을 리메이크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고, 현지 실정에 맞춰 각색한 결과물이 바로 이별계약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4월12일 개봉 뒤 이틀 만에 제작비 54억 원을 회수하고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지금까지 350억 원을 벌어들였다.
한중 합작 영화 사상 최고, 역대 중국 로맨스 영화 가운데 8위의 기록이라고 한다.
이별계약의 개봉을 앞두고 열린 언론 시사회 날, 극이 끝나갈 무렵 여기저기서 눈물을 찍어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치하다" "식상하다"는 이유로 사라진 최루성 멜로다. 여기에는 100억 원대 대작 영화들에 투자가 집중되면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만들어질 수 없게 된 우리 영화 시장의 현실도 한몫했다.
한국형 최루성 멜로가 역수입돼 관객을 울리는 장면은 아이러니했다.
"이번 영화 안 되면 중국으로 넘어가겠다"라고 말하는 감독들도 있다. 혹시 우리나라와 달리,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지금 중국 시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