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캠퍼스 속 지뢰, 팀플은 미친 짓이다? ②캠퍼스의 프리라이더…"팀플은 참여 안해도 OK!" ③ 팀플로 무너지는 상아탑…대학당국은 ''수수방관'' ④"우린 팀플이 좋아요!"…캠퍼스에 부는 새바람 |
경기대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 A씨(25)는 팀플 내 ''무임승차 조원'' 때문에 취업 기회를 놓쳤다. 면접을 보러 가는 도중 느닷없이 전공 교수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 교수는 조장인 A씨에게 ''''이미 두 번이나 발표를 미룬 걸 봐줬는데 왜 발표자가 나오지 않았냐''''며 화를 냈다. 결국 A씨는 면접을 포기하고 학교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알바몬이 대학생 1,1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생들은 ''''캠퍼스 생활 중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 최악의 꼴불견''''으로 ''''조별 과제에서 준비나 수고 없이 묻어가려고만 하는 무임승차족(19.9%)''''을 1위로 꼽았다.
그렇다면 팀플(대학수업 중 진행되는 조별과제로 ''팀 프로젝트'' 혹은 ''팀 플레이''의 줄임말)에서는 왜 프리라이더가 발생하는 것일까?
◈누구나 잠재적인 프리라이더…뭘 해도 ''''내 탓'''' 아닌 팀플
1964년 미국 뉴욕의 한 주택가에서 캐서린 제노비스는 괴한에게 난도질을 당해 숨졌다. 당시 살해 현장에는 38명이나 목격자들이 있었지만 그가 세 차례나 난도질을 당하는 동안 도와주거나 신고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미국 심리학자 존 달리와 빕 라타네 박사는 ''''캐서린 살인사건''''처럼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의 책임이 작아지는 현상을 ''''방관자 효과''''라고 정의했다.
이런 심리현상은 팀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상습적 프리라이더인 중앙대학교 학생 C씨(26)는 대학생활 내내 팀플의 ''''골칫덩이''''였다.
''''왜 프리라이더를 자처하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솔직히 팀플에서는 ''''내''''가 안해도 결국 다른 사람이 대신하게 돼있다''''며 ''''잘 되든, 잘못되든 어차피 ''''팀'''' 탓이기 때문에 ''''꼭 해야 된다''''는 책임감이 들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이런 일은 학생 개인의 노력이 팀 전체에 가려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경우에도 발생한다.
상명대학교에 재학 중인 B씨(23)는 ''팀플 안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자신의 점수가 무임승차한 다른 학생의 점수와 차이가 없자 담당 교수에게 팀플 평가 기준에 대한 항의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공정하게 평가했다''''라는 답변만 받았다.
그는 ''''어차피 팀플 안에서는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면서 ''''팀플 수행시 당연히 쉽고 편한 일을 맡고 싶다''''고 털어놨다.
이화여대 심리학과 양윤 교수는 ''''팀플의 프리라이더는 개인의 역할은 드러나지 않고 단지 팀 자체의 수행결과만 주목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며 ''''이런 조건에서는 누구나 잠재적인 프리라이더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펙 키우고 학점 쌓고…취업경쟁 속 빛바랜 ''''팀플''''
하지만 파행을 겪고 있는 대학 팀플의 원인을 학생들 개인의 이기심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취업만을 지상과제로 내세우는 기형적인 대학문화와 사회풍토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3월 동아대 신입생 43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0%에 이르는 학생들은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취업을 위한 학점관리 및 스펙 쌓기''''로 꼽았다. ''''대학에 진학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도 49%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비슷한 시기 연세대 국문학과 마광수 교수는 강의교재 구매영수증을 부착하지 않은 중간 대체 리포트에 대해 무효 처리를 선언해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마 교수의 이같은 결정에는 지난 학기 수강생 600여 명 중 교재를 구입한 학생이 50여 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작용했다.
당시 그는 ''''2000년대 후반부터 학생들이 소위 스펙 쌓기다 뭐다 해서 승자독식, 다 죽고 나 살자 주의, 공부보다는 취직이 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라고 말하며 대학 현실을 꼬집었다.
이처럼 대학이 교육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취업학원으로 전락하면서 ''''팀플''''이라는 수업방식도 ''스펙''과 ''학점''의 위세에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대학 졸업반인 E씨(25)는 ''''세상에서 팀플처럼 비효율적인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영어, 자격증, 대외 활동, 공모전 이 중에서 하나 하기도 힘든데 팀플에 투자하는 시간이 무의미하고 아까운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국 대학에 들어와서 취업전선에 내몰리게 되면 모든 판단의 기초가 ''''내 취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에 쏠릴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보니 팀플처럼 타인과 협력하는 과제에 불성실하게 참여하는 것을 스스로 정당화시키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교육당국은 대학평가를 취업률보다 연구와 교육성과에 맞춰야 하고 대학은 무엇보다 협력과 공존의 가치를 아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