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압부대원들 트라우마, 국가차원 치료 필요

80년 5.18 당시 광주에 진압부대원으로 참여했던 3공수여단 정 모 하사. 그는 광주교도소 방어를 하던 중 시민 2명을 사살한 뒤 악몽과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5.18단체 관계자가 간접 증언했다.

송선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의 증언을 들어보자 "정하사는 같은 3공수 요원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가 두사람을 사살했다고 했다. 밤마다 그 시신의 얼굴이 떠오르고 나타나서 악몽에 시달리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 결국 이혼을 하고 직장까지 그만뒀다고 했다. 그사람은 그렇게 괴로워 했다. 직장이고 가정이고 파탄이 된 거다"고 전했다.

정 하사와 송 이사가 만나게 된 건 1988년 말 5.18 청문회 이후부터 1990년 초반 시점이다. 정하사는 자신이 사살한 뒤 야산에 유기하고 미나리밭에 암매장한 시신을 찾기 위해 5.18단체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지 33년이 지난 지금,5.18 진압부대원들의 트라우마, 즉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STD)에 대한 국가 차원의 치료 대책이 마련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18 당시 진압작전에 투입됐다가 사망한 23명의 유해가 묻혀 있는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매년 현충일이 되면 그 유가족들이 참배를 하지만 누가 알까 두려워 속앓이만 하고 있다. 송선태 이사는 "신군부의 부당한 명령에 의해 작전을 수행하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진압요원 유가족의 상처를 이제는 어뤄만져 줘야 한다"고 말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는다. 26년의 세월이 지난 2006년에 5.18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그 상처가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5.18기념재단이 5.18 부상자와 구속자, 그 가족 등 28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24.9%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 평가됐다.


5.18 피해자에 대해서는 작년 말 문을 연 5.18 트라우마센터에서 치유를 돕고 있다. 따라서 5.18 진압부대원들의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국가차원의 체계적인 치유대책이 마련되어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용주 5.18 트라우마센터 소장은 "80년 당시 진압군인들의 정신적 외상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1980년에 질병편람에 처음 등재될 정도로 생소한 질병이다 보니, 보훈처에서도 5.18 가해자들에 대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을 것이다"며 "33년이 지났지만 5.18 진압에 참가했던 군인에 대한 전수조사와 구체적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5.18 진압부대원 규모는 1만여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7공수여단 600명, 11공수 전체, 3공수, 20사단 5,000 명 등 1만여 명에다 31사단, 공군, 정보사, 중앙정보부, 보안사 요원 등을 합한 규모다.

진압부대원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관련 법령이 제정되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제대군인에 대해서는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어야만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진압부대원들은 가해자라는 사실을 드러내기를 꺼려해 국가유공자로 등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33년 전 사건이기 때문에 국방부로부터 진압부대원 명단을 전체적으로 받아 조사계획을 세워 진행해야 할 것"이라며 "이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관련 법령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안전행정부에서 ''5.18진압부대원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위원회''를 구성해 해당자의 신청과 등록을 통해 체계적인 진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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