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과 진주의료원 등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는 사안에 대해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고 개성공단 잠정 폐쇄 이후 입주 기업들의 어려움 등 국정현안에 대해서도 총리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3년 전국을 마비시켰던 화물연대 파업 당시, 밤샘 협상을 벌였던 고건 총리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총리로 2년 5개월 동안 총리를 지낸 김황식 전 총리가 제주해군기지 건설·기업형수퍼마켓(SSM) 규제·과학벨트 입지 선정·택시지원법 같은 대형 현안 때마다 원만한 국정 조정 능력을 보여준 것과도 대조를 보인다.
반면 정 총리는 국무회의나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도 책임총리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총리실 4대강 검증위원회 구성이 넉달 가까이 미뤄지고 있는게 대표적이다.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경남지역에서 진주의료원 사태와 밀양 송전탑 갈등이 발생했지만 갈등을 조정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새정부가 출범한 지 석달이 됐는데도 새정부가 출범해 정책이 달라졌다고 느낄만한 정책이 거의 없고 총리와 장관이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그 대신 정 총리는 전국각지에서 열리는 행사에 꼬박꼬박 참여하며 얼굴마담 역할을 충실히(?)하고 있어 ''행사총리'', ''의전총리''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고 있다. 정 총리는 지난 86일 동안 휴일을 제외한 73일간의 공식업무일 가운데 22일은 복지시설이나 학교, 지역 행사장을 방문했다.
실제로도 정 총리는 취임 이후 이렇다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의 발언이 단 한번 화제가 된 것은 박 대통령이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바로 다음날 "대화제의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며 반대의사를 밝혔을 때다.
그러나 이같은 발언은 국무총리의 소신발언이 아닌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읽지 못한 ''실수''로 드러나면서 ''엇박자 총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정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에 대해 "말한 내용이 일부만 전해졌다. 오해다"라고 해명했다.
◈ 총리가 제 역할 못하면서 국정운영 부담이 대통령에게 몰려?
이처럼 국정 2인자인 총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더 모든 일이 집중되고 청와대 수석들은 물론 장관들까지 대통령만 바라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사안에 대해 정부차원의 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면서 모든 국정운영의 책임이 대통령으로 향하고 있고 이에 따라 대통령은 사소한 일까지 지시하며 엄청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일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장장 1시간 30분동안 각 부처 업무와 관련된 ''깨알지시''를 내렸다. 그 내용은 주로 유치원 방과후 과정 운영 개선, 화학사고 예방대책, 기업맞춤형 인재양성, 교원평가제 개선 등으로 대통령이 직접 챙길 사안인가 하는 지적들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한 관계자는 "총리가 정부조직을 휘어잡고 국정과제들을 챙겨가야하는데 현재로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며 "그러다보니 대통령이 사소한 업무까지 하나하나 챙기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행정부에 유정복, 진영 장관 등 실세 장관들이 많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굴러온 돌인 정 총리가 이들 장관들을 아우르고 정부조직을 장악하는 것은 처음부터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정 총리는 특히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한국의 물관리 기술을 홍보하고자 태국을 방문했으나 했으나 태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별로 없다.
그 대신 "현지 가이드 역할을 맡은 인턴을 남자로만 뽑았다", "술대신 오렌지주스로 건배사를 했다"는 등 정 총리가 ''윤창중 사건'' 여파로 몸을 사렸다는 내용의 기사를 통해 비로소 태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이 국민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