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등에서는 "여성 인권을 위해 당연한 판결"이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지만, 매년 수만 건에 이르는 이혼 소송과 맞물려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파장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부강간죄 인정 여부가 위자료 다툼 등에 중요한 변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6일 부인을 흉기로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특수강간 등)로 기소된 A(45)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6월에 정보공개 7년, 위치추적전자장치 부착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검찰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혜정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라며 "성적 자기결정권은 누구에게나 인정되고 보호받아야할 권리이고 부부관계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폭행과 협박을 통해 성관계까지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도 "상담자 중 절반가량은 배우자의 폭행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고, 폭행피해자의 20-30%는 배우자의 강압적인 성관계 강요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며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하고, 이번 판결로 이같은 피해자들이 구제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1970년 정상적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관계에서 강간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뒤 이 같은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대법원 판례가 43년 만에 바뀌게 됐다.
이런 이유로 대법원은 여성의 인권, 남편과 부인의 지위와 역할 등 우리 사회의 가족 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지난달 공개변론까지 열기도 했다.
대법원이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부부사이에서도 강간죄가 성립된다는 첫 확정 판결을 내리면서 매년 4만여 건에 이르는 이혼 소송과 맞물려 관련 형사고소가 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관계자는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서도 강간죄가 첫 대법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유사한 형사고소가 늘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 역시 "이혼소송에서 이혼사유의 구성과 입증이 중요한데 배우자가 부부강간죄로 형사 처벌을 받게 되면 배우자의 혼인관계 파탄 책임에 대한 입증이 더 쉬워지기 때문에 부부강간죄로 고소하는 사람들은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부부강간죄를 인정할 경우 이혼소송에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법무법인 윈의 장세영 변호사는 "이번 대법 판결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인정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에서 이를 유리하게 이용하거나 감정적인 보복 수단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며 "이런 문제점 들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대법원 공개 변론 때 변호인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윤용규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09년 부산지법에서 부부강간을 인정한 판결을 예로 들며, "당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남편은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가정법법원 관계자는 "지속적인 강압적 성관계 요구는 그 행위가 부부강간죄라는 형사 범죄로 인정되기 전에도 이혼사유 중 하나로 인정돼 왔다"며 "이혼의 귀책사유 역시 재산분할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부부강간죄 피의자인 상대 배우자가 형사합의 등을 감안해 위자료 조정 과정 등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