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거지와 인터뷰를 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1년 ''''제22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지난해 입상자들과 유재하 25주기 헌정앨범을 발표한 일로 한 번 봤고 이후 1년여의 행보가 평범하지 않아 궁금증에 한 번 더 만났다.
그냥 그대로가 자연스러워서였을까 사실 그동안 ''''이름이 왜 김거지일까'''' 궁금하지 않았다. 인터뷰 말미에 ''''안 궁금하냐?''''고 그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진 그랬다.
''''왜 이름이 김거지냐고 물어올 땐 제한을 많이 받아요. 그냥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가 그려져야 하는 건데 말로 설명을 하려니까 힘들더라고요''''
김거지의 본명은 김정균이다. 그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그의 어머니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자선연주회가 열렸다. 김정균은 피아노가 눈에 띄어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싶었고 관계자들에게 부탁해 사람들 앞에서 즉흥공연을 했다. 어머니 담당 주치의는 잘 들었다며 힘내라고 했다. 그게 김정균이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다.
기타를 살 돈도 없었고 공사판에서 돈을 벌며 거지처럼 살았다. 장발에 수염은 덥수룩했고 ''''개파카''''를 입고 다니던 그에게 ''''김거지''''란 별명이 생겼다. 뒤늦게 음악과 공연을 시작했던 그에게 어쩌면 김거지란 이름이 본명보다 편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김정균은 김거지가 됐다.
이후 김거지는 산타뮤직에 둥지를 틀고 브라운아이드소울 등과 한솥밥을 먹고 있다. 이쯤 되면 하루 빨리 앨범을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의 생활은 겉보기엔 ''''한량'''' 같다. 발길 닿는 곳에서 노래를 불렀고 찾아주는 곳이 있으면 강연도 했다.
브라운아이드소울 콘서트에 게스트로 무대에 오른 적도 있고 홍대 클럽 공연도 했다. 그래도 대부분은 길거리가 그의 무대였다. 인천 터미널에서 처음 버스킹을 시작했고 때론 벚꽃이 좋아서 가로등 밑이 좋아서 옮겨 다녔다. 그 중 한강다리 밑은 특별하다.
''''주로 한강에서 해요. 왜 시작했냐 하면 제가 촌놈이라 서울에 오면서 한강에 가는 게 특별한 일이었어요. ''''밥줄'''' 앨범 재킷도 마포대교 옆에서 찍었고요. 그래서 그 옆에서 버스킹을 자주 해요. ''''여긴 내 자리다'''' 하는 일종의 영역표시죠. 언제고 저녁 시간에 이곳에 오면 날 볼 수 있다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절 칭찬을 할 땐 ''''목소리가 좋아요'''', ''''가사가 공감돼요'''' 정도의 말이에요. 사실 그것밖에 못 하는 가수인지도 모르겠고 그게 다일수도 있어요. 노래를 잘 못 부른다는 생각 때문에 밴드를 하면서도 성악, 재즈 등 노래를 계속 배웠어요. 배웠다는 게 어떤 순간에도 쉬지 않고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김거지에게 공연은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수다''''이기도 하다.
''''제가 곡을 쓰는 건 함께 수다를 떨 듯이 누군가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에요. 때론 술 마시고 주정부리듯이, 때론 진지하게 설명하듯이 말이죠. 공연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좋아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할 때도 있지만요. 제 공연을 한 번만 보시면 ''''쟤 왜 저러나'''' 하실 수도 있어요(웃음)''''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고 싶다''''거나 ''''더 유명한 가수가 되고 싶다''''는 욕심도 있지만 아직까지 딜레마다.
''''한편으론 지금처럼 평범하게 느끼고 살아가야 서로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수다를 떨 때도 조금씩 엇나가면 그건 굉장히 싫거든요. 그래서 그냥 평범함의 비슷한 선상에서 살고 싶어요''''
김거지의 노래가 화려하지 않아도 마음을 움직이는 건 스스로의 마음에 귀 기울여 만든 음악이고 그것이 우리의 삶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거지는 곧 미니앨범을 발표한다고 했다. 한 번쯤 그의 음악과 수다를 떨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