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했어요" 치매남편 괴롭힘 못이긴 할머니의 눈물

배심원들, 살인미수 무죄 평결 …재판부, 상해 혐의만 인정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벌을 주신다며 달게 받겠습니다…."

14일 서울 남부지법 406호 대법정.

치매를 앓던 80대 남편의 괴롭힘을 견디다못해 남편을 살해하려 한 혐의로 기소된 A(71)씨는 최후 변론에서 울먹이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강서구의 자택에서 "바람을 피운다"며 의심하고 막말을 늘어놓는 등 평소 자신을 힘들게 한 남편 B(81)씨를 가정용 변압기로 수차례 때려 살해하려 한 혐의(살인미수)로 기소됐다.


배심원 9명이 참여한 이날 국민참여재판은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진행됐다.

작고 마른 체구에 흰 옷을 입고 법정에 나온 A씨는 재판 내내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채 무언가를 끊임없이 읊조렸다.

변호인이 재생한 동영상 속에서 남편 B씨는 불편한 몸에도 "판사님, 제 처가 저를 죽이려 했다는데 그런 말에 개의치 마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라며 부인 걱정을 했다. A씨는 흐느꼈고 법정은 숙연해졌다.

A씨는 검사 신문에서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머리가 이상해졌던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변호인의 신문 도중에 정신 질환이 있는 막내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큰 울음을 쏟아내기도 했다. A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의 사정이 정말 딱하다"며 재판 중간 중간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A씨가 B씨를 때릴 때 살해하겠다는 고의성이 있었는지가 쟁점이었다.

변호인은 "평소 남편에게 맞고 바람을 피운다는 의심을 받아 힘들었던 A씨가 잠든 남편을 보고 홧김에 혼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때린 것일 뿐"이라며 살해 고의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살상력이 큰 도구를 이용해 저항능력이 없는 피해자를 공격했고 피해자가 전치 6주의 상처를 입었는데도 그대로 방치했다"며 고의성이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A씨에 대해 징역 3년 및 집행유예 5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2시간여에 걸친 평의 끝에 다수결로 A씨의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무죄로 평결했다. B씨를 살해하려는 고의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상해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50여 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에게 상해를 가한 점은 쉽게 합리화할 수 없는 반사회적 행위로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가족들이 선처를 바라는 점, 고령에다 건강이 좋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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