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쏠림 풍토 바꿔야 출판계 산다"

Interview 출판사 ''오월의봄'' - 박재영 대표·강곤 편집부장

빈곤층의 밑바닥 삶을 들여다본 ''벼랑에 선 사람들'', 우리 시대 기업의 맨얼굴을 비춘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다문화 사회 속 공존의 의미를 되짚은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 출판사 오월의봄이 낸 책들 중 일부다.

이 책들은 우리가 몰랐거나 애써 외면하려 했던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쳤다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계속되는 불황 탓인지 출판계는 대중의 원초적 호기심에 기대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는 데 치중하는 모양새다.

2년이 채 안되는 기간 16권의 색깔 뚜렷한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낸 이 소규모 출판사의 행보가 눈길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아직 그럴 위치도, 때도 아니라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는 박재영(41) 오월의봄 대표를 반강제로 설득한 즈음, 공교롭게도 출판계가 발칵 뒤집혔다.

책 사재기로 베스트셀러 순위가 조작되고 있다는 의혹이 일면서다.

이 사건은 기성 출판계가 비판 없이 자본의 논리를 좇아 온 태도와도 맞닿아 있었다.

대안은 없는 것일까. 9일 경기 파주시 헤이리마을 근처에 있는 오월의봄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와 강곤(42) 편집부장에게 물었다.

-출판사 이름이 의미심장하다.

박재영(이하 박)= 5월에는 5·18광주민주화항쟁 기념일이 있고 1일 메이데이(노동절)도 있다. 프라하의 봄(1968년 체코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담아 정했다. 처음에 나이 드신 분들이 "출판사 이름으로는 너무 무겁지 않냐" "거기에 짓눌려 어떻게 책을 내냐"고 걱정했다. 그런데 20, 30대는 "산뜻하다" "싱그럽다"고들 말한다. 젊은 세대에게 편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출판 일은 어떻게 시작했나.

박= 출판계에 첫 발을 들였을 때 소위 메이저 출판사에서 일했다. 배우는 단계였다. 당시 깊이 있는 인문학, 사회과학 서적을 내고 싶었는데 기획단계에서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여러 번 제외됐다. 그렇게 10여 년 일한 뒤 독립해 2011년 출판사를 차렸다. 혼자 책을 내던 중 인권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학교 선배이자 인권운동을 해 온 강곤 부장을 영입했다.

강곤(이하 강)= 인권잡지 만드는 일(그는 격월간 인권잡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서 6년을 일하며 편집장을 지냈다)을 했는데, 출판사를 차린 박 대표에게 작가를 소개시켜 주는 등 꾸준히 관계를 맺어 오다 지난해 9월 합류했다. 잡지를 계속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아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책을 내는 기준이 뚜렷해 보인다.

박= 한국 사회에는 여러 문제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핵심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본다. 그 목록을 뽑아 적합한 지은이를 찾고 질문을 던지는 책이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시리즈다. 논의를 확장할 수 있는 다양한 질문을 던지려면 철학과 사상은 필수다. 진보 철학 단체인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작업하는 ''철학이 있는 삶'' 시리즈가 그것인데 앞으로 동양철학사, 한국철학사도 내게 된다. 우리가 꼭 필요하다 싶은 책들은 주저없이 내고 싶다.

강= 르포, 인터뷰 작업을 통한 기록이 내 관심사인데 둘 다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라는 선입견이 있기도 해서 출판 쪽에서는 시장성이 없다고들 본다. 박 대표도 그렇고 경영 부담을 많이 느끼지만 편집부장 입장에서 진보적인 담론으로 한국 사회에 의미를 남길 수 있는 기록의 가치에 무게를 두고 있다. 책의 수명이 갈수록 짧아지는 시대에서 우리는 오래 읽힐 수 있는 책들을 내고 싶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지난해 대선 주자로 떠오르던 중 오월의봄의 ''벼랑에 선 사람들''을 언급해 화제가 됐었는데. 박= 책이 처음 나왔을 때보다 훨씬 큰 반응이었다. 책들이 항상 유명한 사람을 통해 재조명 받는다는 것은 썩 기분 좋지만은 않지만 우리야 나쁠 것 없었다. 좋은 기회였다. 안 의원이 당시 벼랑에 선 사람들을 읽고 지은이인 제정임 교수를 섭외해 ''안철수의 생각''을 썼으니 나름 보람도 느낀다. 안 의원이 책 속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정치로도 옮길 수 있기를 바란다.

-인문학의 부활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출판계도 그 바람을 타는 듯하다.

박= 제목에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 대다수가 인문자기계발서라는 점이다. 또 다른 얼굴의 자기계발서인 것이다. 실용적인 인문학 서적이 부흥하는 것은 안 좋다고 본다. 세상을 보는 창구가 되는 인문학 서적들이 필요하다.

-며칠전 터진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 의혹의 후폭풍이 거세다. 한국문단의 대표 작가 황석영 은 해당 책에 대한 절판까지 선언했는데.

박= 문제의 출판사는 이미 같은 일로 벌금을 낸 이력이 있다.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서 출판인들은 "저 책 어떻게 저만큼 팔리지? 암암리에 사재기한 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그렇게 종합순위를 높인다. 고질적인 병이다.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 큰 출판사들이 그런 유혹에 더 많이 빠진다. 그래야 운영이 가능하니까. 우리 사회 독서 문화가 베스트셀러로 쏠리는 현상이 계속되니 출판사들이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노출되지 않으면 금세 잊힌다. 그러면서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더 설 자리가 좁아진다.

강= 문화 전반적으로 쏠림 현상이 너무 심하다. 철학 책도 그 책을 쓴 철학자가 유명세를 타야 베스트셀러가 된다. 영화사들도 천만 관객 동원을 위해 반값, 공짜 티켓을 남발하지 않나. 책,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문화적인 취향, 안목이 돼야 하는데 이를 길러 주는 교육이 부족하다 보니 책과 영화를 베스트셀러, 박스오피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출판사의 사재기도 이런 현상에 기댄 것이다.

박= 80, 90년대 신념을 갖고 출판사를 꾸려가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50, 60대가 된 뒤 운영하는 것을 보면 보수적이 됐다. 도덕적인 의지를 가졌던 분들이 변했다. 이렇듯 조직 문화가 깨진 뒤 수익을 높이기 위한 책 위주로 내놓으니 사재기 현상이 나오는 것이다. 편집자들끼리 "이젠 가고 싶은 출판사가 없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10년 넘게 봐 왔다.

-대안은 없나.

강= 풀뿌리 운동가인 하승우 선생이 70년대 유신시절 검열을 피해 지역에서 책을 내던 양서협동조합 운동을 모티브로 한 책협동조합을 제안하고 나섰다. 기존 편집자가 저자를 섭외해 서점에 내놓고 독자들이 소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소규모 단위로 출판사, 동네 작은 서점, 독자가 모여 협동조합을 구성하자는 것이다. 조합원으로서 편집자와 독자, 저자가 토론을 하면서 생산 과정에서부터 주체적으로 책을 만드는 것이다. 뜻 있는 편집자,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우리도 이름을 걸어 놨다.

박= 이 경우 익명의 독자에게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독자층이 생긴다. 독자가 필요로 하는 책을 얻을 수 있다는 쌍방향 소통의 의미도 있다. 논의가 잘 돼 새로운 운동이 됐으면 한다.

강= 우리나라 도서관 수가 말도 안되게 적다는 이야기는 꾸준히 나오는데 정부에서는 별 움직임이 없다. 정부 차원에서 지역·학교·대학 도서관에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꾸준히 보급하는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호황기에 돈 많이 번 대형 출판사들도 승자독식 분위기에서 벗어나 문화계의 자산인 출판계 발전을 위한 기금 조성 등 사회 환원을 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해 본다.

박= 1인 출판사 등 소규모 출판사가 많이 생기고 있다는 점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출판의 장점은 큰 자본이 안 든다는 것이다. 문제의식을 느끼는 편집자들이 기존 출판사에서 독립할 수 있는 여지가 큰 것이다. 어떤 책을 만드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기 철학이 있고 평생 할 자신이 있다면 시도해 볼 만하다. 이런 움직임이 출판 문화를 바꿀 것이다.

-어떤 출판인으로 남고 싶나.

박= 우리 사회 구석 구석에 똥침을 날릴 각오다.(웃음) 올해에만 책 15권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 당시 지역별, 계급별 투표 결과를 보면서 ''한국인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파고들다 보니 문제점이 나오더라. 오래 남을 수 있는 좋은 인문·사회과학 책을 펴내 이에 대한 논쟁거리를 만들고 싶다.

강= 큰 애가 일곱 살인데 집에 있는 책들을 보면서 ''내가 읽은 책들을 나중에 이 아이가 보게 될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아이가 ''아빠는 어떤 책을 읽었을까''라고 고민하는 모습도 기대한다. 내 아이가 컸을 때 지금 우리가 느끼는 사회 문제들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한국 사회가 어떤 모습이 돼 있을지를 고민하며 책을 내겠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