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세대, 그들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일까?

[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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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낀세대''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낀세대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미국에서는 ''낀세대''를 트윅스터(Twixter)라고 부른다. ''비트윅스트 앤드 비트윈''(betwixt & between)에서 나온 단어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세대라는 뜻인데 우리가 쓰던 ''캥거루세대''와 비슷하다.

대학교를 졸업해서 독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직업을 갖지 않거나, 직장을 다녀도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않고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20~30대의 젊은이들을 일컫는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독립시키는 서구에서는 비꼬는 의미가 강하다. 트윅스터스(twixters)는 결혼과 출산도 꺼린다. 결혼은 독립해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니 그렇다. 결혼 이후를 위해 돈을 저축하는 것 보다는 자꾸 줄어드는 젊음을 조금 더 즐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사는 것이 특징이다.

영국에서는 ''키퍼스''(kippers)-부모의 퇴직연금을 축낸다는 뜻이다. 프랑스에서는 ''탕기''(Tanguy)-자유로워지고 싶은 부모에게 달라붙어 죽어도 독립 않는 아들을 묘사한 프랑스 코미디 영화 ''탕기''에서 유행시킨 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맘모네''(mammone)-어머니가 해주는 음식만 먹으려 한다는 의미. 캐나다에서는 ''부메랑키즈''(boomerang kids)-일도 없이 나가 쏘다니다 밥 먹을 때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 호주에서는 가정을 먹고 자는 곳으로 쓴다는 의미에서 ''마마호텔''(mama hotel)이라는 비유가 있다.

◇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우리 사회의 ''낀세대''는 젊은 세대가 아니라 나이 든 세대를 가리킨다. 이야기를 ''묻지마라 갑자생''(1923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해 보자.

갑자생은 태어나보니 일제 치하였다. 학교에서 일본말 배우고 사회로 나가려 하니 태평양 전쟁에 징용.징병이 들이닥쳤다. 죽을 고비를 넘겨 해방조국을 맞았는데 일제 때 배운 건 별 소용없고 사회혼란만 거듭되다 6.25 전쟁이 터졌다. 다들 결혼은 생각도 못하다 전쟁 끝나고 허겁지겁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남에게 내세울 거라곤 고생한 것과 훌쩍 장년이 되어버린 나이 밖에 없는 서러운 갑자생. 이 갑자생을 비롯해 일제 말기에 유년시절을 보낸 세대들의 아들딸이 늘 거론되는 베이비 붐 세대(1955~1963년생)이다. 갑자생 언저리 부모들과 그들의 베이비붐 자녀세대 사이에 낀 세대가 최근 흔히 거론되는 한국의 ''낀 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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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잊혀진 세대''라고도 부르는 예비노인 세대이다. 1948~1954년생(59세부터 65세까지이다). 베이비 붐 세대는 엄청난 지각변동을 가져올 거라며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초점이 그들에게 맞춰졌다. 덕분에 ''낀 세대''는 아직 노인이라고 인정하는 65세가 안 돼 혜택 못 받는 게 많고 새로운 혜택은 베이비 붐 세대에 맞춰 몇 년 뒤에 시작된다고 하고 영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억울하다. 베이비붐 세대에게 할 말이 있다. "그래도 당신네는 6.25 전쟁은 피해 갔잖냐, 우리는 전쟁 통에 태어나 죽을 고생도 했다."

노령 사회 다가온다면서 노후 대비 잘 해놓아야 한다는 충고가 유행할 때 이미 낀세대는 은퇴가 다가온 뒤여서 별 준비도 못했다. 은퇴하고 나와 보니 노인 일자리 정책은 전혀 자리 잡지 못한 채로다.

베이비 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나올 때쯤이나 모양새를 갖출 것으로 보이니 몇 년 참고 기다려야 한다. 자산은 주로 부동산에 초점을 맞춰 챙겨 놨다. 그러니 융통할 수 있는 현금이 없는데 부동산 경기도 내리막길이다. 늙긴 했으니 이제는 자신을 위해 돈을 써야 하는데 아직도 자녀 양육과 교육비 대느라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 대학원에 유학까지 보내다 보니 자식 부양에서 졸업을 못한 것이다.

◇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미국도 그런 고민이 있는 모양이다. 미국의 50대와 60대 초반이 샌드위치 세대이다. 대부분 은퇴가 임박했지만 메디 케어(노령자 건강보험)와 사회보장(소셜 시큐리티) 수혜 대상도 아닌 어정쩡한 세대. 그런데 연로한 부모도 아직 살아 있고 취업 못한 자식도 남아 있는 세대. 이 세대를 ''스퀴즈 세대''(Generation Squeeze)이라고 부르는데 번역하면 ''낀세대''가 될까? 이런 악조건 때문에 이들 세대가 더 일찍 죽을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악조건 속에서 건강 악화와 소득 및 심리적 불안까지 겹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이비붐 세대도 자신들이 ''낀세대''라고 주장한다. 자신들은 부모님 모시는 걸 자식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 반면 자식들은 부모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모셔야 하는 부모세대와 자신들을 안 모시려 하는 자녀세대 사이에 끼었다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4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에 이르는 이른바 중년세대도 자기들도 끼었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은 신세대, X세대, N세대 등등 사회의 주목을 받았지만 자신들은 잠깐 386세대로 주목을 받았을 뿐 지금은 사회의 주도권을 쥔 베이비붐 세대와 후배 세대 사이에 낀 ''샌드위치 세대''라고 여긴다.

아직 자식 교육과 가족부양의 짐이 무겁기만 하고 요즘은 조용필 님 노래에 기대어 위안을 얻는다. 3040세대도 힘들다. 집장만에 자녀양육으로 맞벌이가 불가피하다. 20대는 스펙 쌓기와 취업난에 좌절하고 10대 청소년도 입시준비가 여전히 고달프다.

이렇게 따지면 모두가 낀세대고 너 나 할 것 없이 다 아프다. 외국의 예들에서 보듯이 이것은 세계가 함께 치른 전쟁과 제국주의, 냉전 대결에 이어진 인구 구조의 변화와 기술문명의 발달에 따른 디지털 구조조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노인의 고용시장 진입이 청년 것을 잠식하고 젊은 세대에 치여 우리가 고생한다는 식의 생각은 문제를 제대로 짚지 못한 것이다. 넓게 멀리 보며 서로를 격려하고 어깨를 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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