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논란, "공산당 토벌한 것" vs "친일 변명일뿐"

귀감으로 삼아야 할 전쟁영웅인데 흔들고 상처를 줘야만 하나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3년 5월 7일 (화)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허남성 국방대학교 명예교수,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미 제1군단장 밀번과 작전을 협의하는 백선엽 국군 제1사단장(사진=국방부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단 블로그)
◇ 정관용> 올해 94세의 예비역 육군대장 백선엽 장군, 여러분 잘 아시죠? 대한민국 건군에 참여했고요. 한국 전쟁 당시에 낙동강 방어전투 승리로 이끌었고 평양에 선봉으로 입성해서 6.25전쟁의 살아 있는 전설, 이렇게 불리어지는 분입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친일행적 논란이 불거졌죠. 그래서 전쟁영웅인가, 반민족행위자인가 이런 공방이 벌어지기도 한 그 당사자입니다. 한국전쟁 정전 60년을 앞두고 이 백선엽 장군을 우리나라 최초의 명예원수로 추대하자, 이런 시각이 있고요. 그래서는 안 된다라는 또 반대론이 또 맞서고 있네요. 오늘 찬반 이야기 다 듣겠습니다. 먼저 명예원수로의 추대가 필요하다는 입장, 국방대학교 명예교수 허남성 교수부터 연결합니다. 허 교수님, 안녕하세요?

◆ 허남성> 네,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지금까지 우리나라 명예원수 추대된 경우가 한 명도 없다면서요?

◆ 허남성> 네, 한 명도 없습니다.

◇ 정관용> 명예원수로 추대하자, 그 이유는 뭡니까?

◆ 허남성> 우선 명예원수를 추대함으로써 우리가 얻고자하는 그런 것들이 좀 있을 수 있겠죠. 첫째는 우리 후세의 귀감으로 삼을 수 있을만한 분을 좀 더 이렇게 추대한다고 하는 그런 뜻이 있죠.

◇ 정관용> 높이 기린다?

◆ 허남성> 그렇습니다. 그런 것이 있고. 또 지금 이 엄중한 안보위기 상황에서 또 군심을 결집을 한다든가 또 국민의 안보의식을 또 제고한다든가 이런 부수적인 그런 것도 있을 것입니다.

◇ 정관용> 군의 사기도 진작시킬 수 있겠네요?

◆ 허남성>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꼭 좀 시작하면서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 정관용> 말씀하세요.

◆ 허남성> 저는 개인적으로 이 백선엽 장군님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는 움직임에 제가 뭐 이렇게 가담하거나 이렇게 한 적이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또 백선엽 장군님 본인도 지금 이런 것들이 그렇게 썩 탐탁하게 생각하시지를 않습니다. 이 나이에 괜히 사람들이 나무 위에 올려놓고 이렇게 흔들어대고 하는 그런 것. 귀감으로 삼아야 될 만한 그런 전쟁영웅 한 분을 명예를 실추시키고 또 그분께 상처를 드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적극적으로 나서고자 하는 생각입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다른 분보다 특히 백선엽 장군이 더 명예원수로 추대되어야 하는 이유가 따로 있죠?

◆ 허남성> 네, 한마디로 이분은 6.25전쟁의 영웅이시고.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구국의 영웅이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아까 다부동 전투 얘기도 있었지만 다부동 전투가 사실 거기에서 방어에 성공하지 못했으면 대한민국 지금 없습니다. 또 이분이 51년 겨울동안에 백야전 사령관으로서 지리산 지역에 공비토벌을 완수하신 분인데 이때에 그냥 단순히 이게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고 정말 선무활동을 탁월하게 하시고 또 그때 상황이 반드시 좌익이 아니어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참여했던 사람들이 있고.

◇ 정관용> 그런 분들 많죠.

◆ 허남성>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선무활동을 탁월하게 잘 하셨어요. 그래서 관용을 베풀어야 될 사람들 관용을 베풀고 과감하게 선처도 하고 이렇게 해서 아주 단기간에 정말 빨치산 문제를 잘 해결을 하셨고 더군다나 그 후에 육군참모총장을 두 차례나 지내셨습니다. 52년, 57년 이렇게. 그렇게 하면서 우리 육군이 오늘날의 육군이 되도록 그렇게 증강하고 교육을 강화하고 하는 여러 가지 시스템을 반석위에 올려놓는 그런 역할을 하신 분이죠.

◇ 정관용> 그리고 이번에는 한미동맹 강화라는 입장에서 밴플리트 전 8군사령관 월턴 워커 전 8군사령관, 이런 분들도 함께 명예원수 추대하자 이런 움직임도 있다면서요?

◆ 허남성> 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외국군까지 우리가 명예원수로 추대하는 문제는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저도 달갑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백선엽 장군님이라든가 또는 또 한 분의 6.25 전쟁영웅인 김종호 장군님이라든가 이런 분들 거론한다고 그러면 그것은 저는 타당성이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김종호 장군은 어떤 분이십니까?

◆ 허남성> 이분은 6.25전쟁 초기에 춘천에서 아주 정말 혁혁한 전공을 세웠죠. 춘천전선은 이분이 3일 이상을 거기서 지켜냈습니다. 이때 여기를 지켜내지 못했으면 그쪽으로 들어온 북한군들이 이 수원 쪽으로 들어오도록 돼 있었어요. 그렇게 되면 서부전선에 있는 주력부대들을 전부 후방에서 차단하고 포위 섬멸할 수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 낙동강 전선까지 가는 지연전이 전부 흐트러졌을 것이고 낙동강 전선을 굳건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전투고요. 또 한 가지는 그 초산이라고 그러나요? 압록강까지 제일 먼저 올라간 부대이기도 하고 또 52년도에는 백마고지, 그 유명한 백마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끈 분이기도 합니다.

◇ 정관용> 그렇군요. 이분도 아직 살아계십니까?

◆ 허남성> 아닙니다. 이분은 작고하셨습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지금 이제 우리 군으로는 백선엽 장군, 김종호 장군 이 두 분 정도가 명예원수로 거론이 되는군요.

◆ 허남성> 물론 다른 분들은 다른 분들을 추대할 수도 있겠죠.

◇ 정관용> 그런데 아무래도 논란이 되는 것은 일제시대 때 독립군 토벌부대 근무했던 사실 이거 아니겠습니까? 그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허남성> 제가 지금 그것 때문에 사실은 이 인터뷰에 응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 역사를 똑바로 봐야 되는데, 여기서 독립군 토벌부대 그러면 독립군이라고 하는 그 막연한 그런 걸 생각하시지 말고 이 독립군 토벌부대라고 하는 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독립군의 정체가 뭔가 하는 걸 우리가 봐야 돼요. 사실상, 1930년대 초가 되면 만주 일대에서 우파민족주의 독립군들, 다시 말해서 우파민족주의 항일세력이 급격하게 쇠퇴가 됩니다. 1930년 1월달에 그 좌파들이 김좌진 장군을 암살을 했고. 또 32년 연말, 33년 연말이 되면 세력을 얻은 공산당 부대로 전부 편입을 해라 하고 압박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전부 산해관 남쪽이나 산해관 서쪽, 그러니까 중국 본토 쪽으로 다 이동을 해갑니다. 만주에는 실제로 1933년 말 이후에는 우파 항일세력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좌파 항일세력이었다?

◆ 허남성> 그렇습니다. 좌파 항일세력이었는데 특히 그분들은 대부분 다 중국 공산당 부대에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북 항일연군이라고 그렇게 일컬어지고 또 팔로군이라고 하는 것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 백선엽 장군께서 만군 소위로 임관한 해가 43년 봄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아까 말씀드린 1933년으로부터 말하자면 10년이 지난 뒤입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좌파 항일세력 중국 공산당 소속이었기 때문에.

◆ 허남성> 중국 공산당으로 주로 돼 있고 그리고 이분이 소위 말하는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했던 시기가 44년에서 45년 그 어간인데요. 그때는 주로 이 팔로군을 상대로 해서 싸웠고 이분들이 전투를 늘 했던 건 아니고.

◇ 정관용> 어쨌든 좌파 항일세력이므로 토벌해도 큰 잘못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건가요?

◆ 허남성> 아니요. 저는 잘못이다 잘못이 아니다, 그걸 애기하는 게 아니고 그러니까 그 독립군이라고 하는 것의 정체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6.25전쟁 때에 북한군으로 들어가서 북한군의 주력부대에 일부가 돼서 남침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거를 우리가 똑바로 보지 않고서 마치 항일만 하면 다 독립군인 것처럼 얘기하는 그것이 잘못됐다고 지금 얘기하는 것입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 허남성> 네.

◇ 정관용> 국방대학교 허남성 명예교수의 들어봤고요. 곧 이어서 반대의견 들어보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 안녕하세요?

◆ 박한용>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백선엽 장군 명예원수 추대, 왜 안 됩니까?

◆ 박한용> 사실은 원수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있는 관례도 아니고요. 특수한 경우에 맥아더 원수같이 어떤 세계적인 질서 속에 다국적 군대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일반적으로. 물론 북한은 예외적으로 하고 있지만요. 무엇보다도 이 원수 추대자체가 뜬금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특별하게 원수로 추대해야 될 긴급한 상황이 있고. 여러 가지 상황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것이 없이 갑자기 6.25전쟁 영웅으로, 여기서부터 얘기하기는 좀 당황스럽습니다.

◇ 정관용>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이런 걸 맞아서 한국전쟁의 영웅인 백선엽 장군 명예원수로 추대하자, 이런 논리인데요.

◆ 박한용> 이 부분에서 우리가 한국전쟁만 봐서는 안 되고 원수라면 사실 전무후무한 직급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보자면 백선엽이란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국가의 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이 경우에 우리가 백선엽 장군의 경우에는 일제 강점기에 본인이 직접 자발적으로 만주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고 그 이후에 만주에서 조선인 독립운동세력을 전문적으로 토벌하는 간도특설대의 일선지휘관으로 복무했던 사람입니다.

◇ 정관용> 알고 있습니다.

◆ 박한용> 더구나 이런 것 때문에 친일 반민족행위자로까지 국가에서 규정이 된 인물입니다. 흠결이라기보다 상당히 심각한 과오가 있죠.

◇ 정관용> 그런 과오가 있지만 한국전쟁 당시에 큰 공을 세웠다, 이건 또 인정되는 거죠?

◆ 박한용> 한국전쟁에서 공로를 세웠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원수라는 직급은 내오려면 그 여러 가지 역사적인, 공적인 것을 기념하기 위한 전체에 대한 상황을 같이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런데 조금 아까 허남성 국방대 명예교수의 말씀을 들어보면 백선엽 장군이 만주군에서 활동한 게 44년 봄부터인데 그 당시 만주지역에 있었던 이른바 독립군은 전부 좌파 항일세력, 팔로군들이었고 이들은 결국 나중에 북한군의 주력이 돼서 남침의 주범이었다, 이런 걸 알아야 된다라고 주장하시는데 그건 맞나요?

◆ 박한용> 그 부분은 좀 사실과 다릅니다. 다시 말하자면 44년부터 45년 사이에 이 사람들이 일제시기에는 좌익이냐 우익이냐 하는 부분이 본질적인 역사적 개념이 아니고요. 이 시기는 항일이냐 아니냐가 기본적입니다. 그 당시에 만주지역은 동북항일연군이지만 이들은 그 지역자체가 중국 공산당이 관할한 지역이지만 민족주의자들도 당시에 여기에 포함돼서 할 수 있는 전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이 두번째로 이들은 뭐냐 하면 방공문제를 6. 25 때만이 아니라 항일독립운동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친일행위조차 방공투쟁으로 치환시키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고를 하고 있죠. 더욱이나 이런 부분은 백선엽 장군의 친일혐의를 방공이라는 부분을 통해서 면죄부를 받으려는 그러한 적절치 못한 그러한 동기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 정관용> 그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세력은 좌파, 그리고 민족주의자가 함께 있었다?

◆ 박한용> 네, 그렇기 때문에 동북항일연군이라는 말 자체가 과거에 좌익, 그러니까 민족주의 공산주의의 분열을 벗어던지고 공동으로 했던 것입니다. 연변 학자들도 계속 이걸 얘기하고 있지요.

◇ 정관용> 결국은 이걸 친일, 항일 그 문제 하나로 봐야지, 반공문제를 이걸 엮어서는 곤란하다? 논리적으로...

◆ 박한용> 그렇죠. 지금 상당수의 친일했던 분들이 자기 자신의 정당성을 반공투쟁에서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대한민국이 빨갱이 국가였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면서 갑자기 일제시대의 친일문제마저도 면죄를 받으려는 이런 것들이 최근에 친일인명사전이 만들어지고 친일문제에 대한 역사적인 문제제기가 있는 것에 대한 대응논리가 더 강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도 들고 있습니다.

◇ 정관용> 친일했다라고 하는 공격에 방어하기 위해 나는 반공했을 뿐이다, 이렇게 나온다는 얘기군요.

◆ 박한용> 그렇죠. 대한민국이 일제로부터 독립한 날이라고 하는 광복절보다도 해방 위에 좌익과 이른바 빨갱이와 싸워서 만든 반공국가라고 할 때 애국자하고 반공투사로 대접받을 수가 있죠. 그래서 건국절 같은 것들도 이런 것이 내세워지고, 원수로 칭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여집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박한용> 네, 감사합니다.

◇ 정관용>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까지 말씀까지 들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신 것, 이것은 모두가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의 행적,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과연 명예원수 부분과 일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판단의 차이가 나는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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