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가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한국에서 뜨거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세계 각국 정·재계 인사들이 검은 돈을 숨겨놓는데 자주 이용하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한국인 70여명이 계좌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조세피난처인 버진 아일랜드 은닉계좌를 폭로했던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버진 아일랜드 계좌를 갖고 있으며 유명한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계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ICIJ가 가진 자료가 일부에 불과하고 실제 명단에 포함된 인사가 탈세나 범법행위를 했는지 여부를 아직 검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진 아일랜드에 계좌를 갖고 있는 70여명의 명단이 공개될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일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이거나 재벌가 소속으로 드러날 경우 어떻게 비자금을조성했고 어떻게 해외로 빼돌렸는지 등을 두고 논란이 일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왜 한국인들은 조세피난처인 버진 아일랜드로 갔을까?" 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아직 공개되거나 구체적인 실명이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한국인 70여명이 버진 아일랜드 계좌 명단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만 확인된 것이다.
지난 4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를 거친 검은돈과 그 돈의 주인 수천 명을 공개해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켰던 호주 출신의 제러드 라일 기자가 한국 특파원들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주소로 인물을 뽑아내면 70명 정도의 관련자가 나온다. 일부는 동일 인물이 중복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70명 정도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버진 아일랜드 계좌를 갖고 있는 한국인이 70명''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한국인들의 명단이 공개되기 까지는 제법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제러드 라일 기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보도하지 않는 이야기가 2건 있다. 각각 세르비아와 스웨덴이 관련돼 있다. 이들을 처리하고 나서 아직 깊게 들여다보지 않은 나라들을 검토할 예정이다. 그중에는 한국도 포함돼 있다. 오스트리아와 폴란드 터키 등도 검토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올해 안에 명단이 공개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하반기 공개''라고 보도하기도 하지만 정해진 건 없다.
= 일단 정부기관에는 제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세청이 라일 기자에게 명단 제공을 요청했지만 이를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라일 기자는 왜 한국 국세청의 자료 요청을 거절했냐는 질문에 "우리는 정부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며 "한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터키, 미국 등 각국 정부에서 접촉해왔지만 그 어느 쪽에도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김덕중 국세청장도 지난 16일 국회 기획재정위 업무보고에서 "ICIJ에 한국인 명단 제공을 요청했지만, 정부 당국에는 주지 않겠다는 답을 들었다"며 "다른 채널을 통해 계속 접촉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정부기관에는 제공하지 않지만 언론에는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라일 기자를 만난 한 특파원은 "자신이 분석을 함께 할 수 없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하니까 자신에게 메일이나 연락이 온 리스트를 보여줬는데 국내 주요언론사 대부분이 포함돼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함께 일할 언론사를 골라서 작업을 할 것"이라는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ICIJ가 주소와 이름을 근거로 70명의 명단을 파악했지만 이 70명이 어떤 신분을 가진 사람인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한국 언론의 협조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일 기자는 처음에는 북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가 리스트를 확인한 뒤 없다고 말해 혼선을 빚기도 했다.또 ''grate man''이 있다고 해서 전직 대통령이나 이런 유력 정치인이 있는 것 아니냐는추측을 낳기도 했지만 grate man은 유력 정치인이나 이런 사람이 아니라 ''여론이 관심을 가질만한 사람'' 유명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한국인의 명단과 주소를 보고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과 연계된 사람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국 언론과 공동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한국 언론사나 개인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에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언론사가 분석 작업에 합류하게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 그렇게 보인다. 라일 기자가 처음 한국 언론과 인터뷰 할 때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얘기를 하다가 인터뷰를 요청하는 언론사가 많아지면서 조금씩 구체적인 답변을 했다.
처음에는 "북한사람의 명단이 있다"고 했다가 "없다"고 확인했고, "한국 사람의 명단이 꽤 있다"고 했다가 "70명의 명단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라일 기자를 인터뷰한 한 특파원은 "처음에는 추정해서 언급을 하다가 한국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많아지니까 리스트를 확인한 뒤 사실을 말 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이 얘기는 ICIJ가 파악한 한국인의 명단이 70명 분량이니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다만 이미 알려진 유명한 사람이 아니고 그의 가족이나 차명 또는 가명을 사용했을 경우 전체 명단을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또 계좌를 갖고 있다고 해서그 자체가 불법이나 탈세를 의미하는 건 아니므로 이후 국세청이나 수사기관의 조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
◈ 명단을 먼저 공개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 그럴 수도 있겠지만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명단을 공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버진 아일랜드에 계좌를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탈세나 범법행위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단을 확인해서 공인의 신분이라고 하더라도 범법이나 탈세 등의 사실이 드러날 경우에 명단을 공개하겠다는 것이 ICIJ의 방침으로 보인다.
제러드 라일 기자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가진 명단에는 할리우드 감독이나 배우 등 유명인의 이름이 수두룩하다"면서 "얘기되는 이름이 있다 해도 보도에 앞서 그들이 실제 어떤 잘못을 했는지 또 공익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명단에 있다고 해서 탈세나 범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라일 기자는 보도를 하면서 "정부관계자와 그 가족, 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기업인 등 ''공인'' 위주로 검토했다"고 밝혔다. 물론 "실제 누가 명단에 있는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기는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단 명단에 포함된 인사가 탈세나 범법행위를 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고 제대로 세금을 낸 합법적인 계좌나 기업인지 여부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이런 검증과정을 거쳐서 명단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 북한 사람의 명단은 없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냐?
= 그렇다. 처음에는 북한 사람의 명단이 있다고 했다가 리스트를 확인한 뒤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제러드 라일 기자가 처음 인터뷰할 때는 있다고 언급을 했는데 다시 다른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히면서 혼선이 빚어졌던 것 같다.
연합뉴스가 인터뷰한 기사에는 "분명히 남한(South Korea)과 북한(North Korea) 사람이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돼 있다.
그런데 다시 YTN 보도에 라일 기자의 육성으로 "관련 질문을 받고 확인을 했기 때문에 북한 사람은 없다는 점을 확실히 말할 수 있다"고 확인했다.
그래서 북한 사람의 명단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다가 이 보도 이후에 북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정정이 된 것이다.
◈ 버진 아일랜드에 계좌를 갖고 있으면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가?
= 그렇지는 않다. 버진 아일랜드에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이 갖고 있는 계좌도 있고 합법적인 계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심을 받기는 쉽다. 국세청이 지난 2년 동안 10억 원이 넘는 해외금융계좌에 대해 신고를 받았지만 버진 아일랜드 계좌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런데 조세피난처 또는 조세회피처라고 불리는 버진 아일랜드에 계좌를 갖고 있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재산 도피나 은닉의 의심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 버진 아일랜드를 통해 역외탈세나 편법상속에 이용한 사례가 과거 여러 차례 적발된 적이 있다.
국세청에서도 명단이 드러난 70여 명 중에는 역외탈세에 연루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 국세청에서는 버진 아일랜드 계좌를 갖고 있는 사람 중 10억원이 넘는데도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 계좌의 성격을 조사해서 추징금과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 너무나 당연한 답변이지만 조세피난처에 금융계좌를 개설한 이유는 세금을 회피하거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기 위한 것이 주요 목적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절세를 위해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기업이나 개인이나 세금을 줄이거나 내지 않기 위해서 조세피난처로 갔을 것이다.
버진 아일랜드에 계좌를 갖고 있는 사람이 70명이나 된다고 했는데 이 70명이 전부 밝혀진 건 아니다. ICIJ가 밝힌 대로라면 버진 아일랜드에 있는 자료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60기가바이트에 이르는 방대한 양인데도 ICIJ가 가진 자료는 2개 기관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스위스 금융그룹인 UBS가 최소 800개의 기관을 이용하는데 ICIJ가 확보한 자료는 2개 기관에 불과하다고 하니까 정말 미미한 것인데도 이 정도의 파장을 일으키는걸 보면 정말 판도라의 상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버진 아일랜드로 간 이유는 기업이나 부유층인 개인이 탈세나 재산을 도피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탈세를 하는 것을 ''역외탈세''라고 하는데 그 규모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래서 국세청이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 중역외탈세 근절을 목표로 제시할 정도다.
지난 1월 영국에 본부를 둔 ''조세정의 네트워크''에 따르면 1970년부터 40년간 한국에서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자산이 7790억달러(약 830조원)로 추정된다. 이는 중국 1조 1890억 달러, 러시아 7980억 달러에 이어 세계 세 번째 규모지만 인구나 경제력 규모를 감안하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조세피난처에 계좌를 갖고 있는 기업들의 얘길 들어보면 사업상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해명을 한다. CJ 제일제당과 CJ 계열사가 버진 아일랜드에 계좌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딸려 온 것이고, 특히 리비아 대수로 공사 시행사로서 공사 확인서를 받아야 하는데 리비아의 내전으로 이를 받지 못해 청산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세피난처에 해운회사들의 명단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편의취적''이라고 해서전 세계 해운회사 대부분이 파나마나 라이베리아 이런 곳에 선박의 주소지나 등록지를 두고 있다.
선박을 건조할 때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데 금융기관들이 채권회수를 위해 담보권 행사가 유리한 파나마나 이런 곳에 선박을 등록하도록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뉴스타파에서 코스피에 상장된 기업의 공시와 해외사이트를 중심으로 조세피난처에 계좌를 둔 회사를 조사한 결과 128개 회사의 명단이 확인됐는데 상당수 회사가 해운이거나 선박임대업 등 선박관련 업종이었다.
조세피난처로 갔다고 반드시 조세를 회피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지만 그렇다고 개인이나 대기업들이 관련계좌를 가지고 있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조세회피의 의심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 그렇다.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스(Robert Louis Stevenson)이 1883년 ''보물섬(Treasure Island)''을 발표했을 때, 소설 속의 섬이 실존하는 곳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카리브 해 외딴 곳에 위치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VI : British Virgin Island)는 바로 이 소설 ''보물섬''의 배경 중 하나로 널리 거론된 장소다. 실제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2편의 부제 ''망자의 함(Dead Man''s Chest)은 버진 아일랜드에 속한 작은 섬의 이름이다.
위키 백과에 따르면 ''버진 제도(Virgin Islands)''는 카리브해 서인도 제도의 리워드 제도에 속해 있는 160여개의 화산섬과 암초 로 이루어진 제도이다. 푸에르토리코의 동쪽, 소앤틸리스 제도의 가장 서쪽에 위치하며, 영국령과 미국령으로 나뉜다.
버진 아일랜드라는 이름은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했을 때, 인간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당시 서구에서 널리 숭배하고 있던, 성녀 우르술라와 1만 1천명의 소녀의 순교 전설과 결부하여 명명한 것이다.
버진 아일랜드의 서쪽 절반은 5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미국령이고, 동쪽 절반은 6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영국령이 되었다. 미국령과 영국령에 각각 사람이 거주하는 3개의 유인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인도이다. 또한 푸에르토리코에 속하는 인근 비에케스와 쿨레브라 섬 등의 섬은 지리적으로도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가까이 있는 것들을 스페니쉬 버진아일랜드라고도 한다.
몇 백 년 전 해적과 약탈자들의 은신처였던 곳인데 지금은 다시 ''현대판 보물섬''으로 이름을 날리고있는 것이다. 세계 각지의 부자들이 영국 자치령의 작은 섬 버진 아일랜드로 몰려와서 돈을 숨겨 놓고 있기 때문이다.
버진 아일랜드가 이렇게 조세 회피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본국인 영국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는 자치령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금이 낮고 규제가 매우 느슨한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세계 각지의 부호들은 이런 장점을 악용해 재산을 은닉하고 조세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버진 아일랜드를 택한 것이다.
물론 버진 아일랜드 외에도 카리브해 연안에 있는 영국령 케이맨제도도 인구 5만6000명 규모의 작은 섬이지만 이곳에 등록된 기업은 10만개에 이른다. 등록된 기업의 면면도 화려하다. 은행 230여 개, 보험사 730여 개, 펀드 1만개 등 다국적 금융사들이 중미 카리브해 한가운데 둥지를 틀고 있다.
인구보다 많은 기업의 실체는 직원 한 명도 없는 서류상의 회사들이다. 케이맨제도는 소득세와 법인세 등 직접세가 사실상 없어 이곳에 현지법인을 내놓고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다. 회계상으로는 이곳에서 실제 영업이나 투자를 한 것처럼 처리해서 본사에서 부담해야 하는 세금을 피하는 기법을 쓰고 있다.
케이맨제도뿐 아니라 버진아일랜드, 모리셔스, 모나코 등 세계 50여 곳이 기업, 자산가에게 조세피난처(Tax haven)로 악용되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역외 자금이 들어올 경우 세제혜택을 주면서 해외 자금을 끌어들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