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3년 4월 5일 (금) 오후 7시 3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동춘 ''''대한민국 잔혹사'''' 저자 성공회대 교수
◇ 정관용> 오늘은 아주 의미 있는 책을 펴낸 사회학자 한 분을 초대했습니다. 성공회대 사회학과 김동춘 교수가 대한민국 잔혹사라는 책을 이번에 펴내셨어요. 국가폭력, 사회적 폭력, 우리 사회의 폭력에 관한 정면의 문제제기입니다. 어떤 책인지 김동춘 교수 함께 만나봅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동춘> 반갑습니다.
◇ 정관용> 이 책 제목을 보니까 옛날 유행했던 말죽거리 잔혹사.
◆ 김동춘>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게 떠오르는데요. 그것도 완전 정말 폭력으로 일관된 그런 영화였는데요. 이 책을 처음에 기획하신 의도는 뭡니까?
◆ 김동춘> 제가 2005부터 2009년까지 정부의 진실화해위원회라고 하는 곳에서 상임위원으로 일했습니다. 거기에서 일하면서 한국전쟁기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했는데요. 그걸 하면서 그동안 한국의 국가폭력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이런 문제를 그동안 쭉 일을 해 왔는데. 제가 그 일하는 동안에 2009년도 1월 달에 용산참사가 일어났어요.
◇ 정관용> 그렇죠.
◆ 김동춘> 그래서 제가 그거를 보면서 우리가 이런 국가폭력을 없애자고 이런 일을 지금 정부에서 하는데. 이것이 또 지금 현재 진행형으로 재발되고 있구나. 거기에 대한 약간의 걱정과 우려와 안타까움. 그런 것 때문에 과거의 폭력이 오늘의 폭력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런 거를 제가 정리를 해 보고 싶어서 적어봤습니다.
◇ 정관용> 한국전쟁 때는 전쟁시기였기 때문인데. 그게 아니라 개명한 21세기에서도 여전하구나, 이걸...
◆ 김동춘> 그렇죠. 민주화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권력이 법에 의거하지 않고 민간인들에게 여러 가지 피해를 주는 이런 일들을 제가 경험하면서 이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요. 역사적으로 쭉 변화의 어떤 추이를 분석해 보신 것 아니겠습니까?
◆ 김동춘> 네.
◇ 정관용> 민주화되면서 분명히 달라지기는 달라졌죠? 폭력의 양상이라는 게.
◆ 김동춘> 그렇습니다.
◇ 정관용> 제일 큰 차이가 뭡니까?
◆ 김동춘> 87년 이전에는 대체로 노골적인 국가폭력. 즉, 학살, 고문 그다음에 강제동원. 뭐 여러 가지 삼청교육대 같은 이런 방식의 물리적인 폭력이 주였다고 한다면 87년 이후에는 물리적 폭력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폭력이라고 할까요? 예를 들면 사회적으로 어떤 세력들을 차별한다든지 그다음에 사찰, 감시 또 도청. 이런 방식으로 개인의 어떤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이런 부분들이 아마 80년 이후에 더 빈번해진 것 같습니다.
◇ 정관용> 87년 이전의 폭력은 예를 들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아요. 그냥 잡아다 고문하고 심지어는 고문하다가 사람을 죽게 만들기도 하고 이런 거요. 그런데 방금 말씀하신 구조적, 문화적 폭력? 대표적 사례를 들어본다면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도 여전했다 이것 아닙니까?
◆ 김동춘> 네, 물론 지금 이명박 정부보다는 조금 부드럽기는 했습니다마는 그 당시에도 당시 국정원이 불법 도청을 했었죠.
◇ 정관용> 그렇죠.
◆ 김동춘> 그런 사건이 있었고요.
◇ 정관용> 미림팀. 뭐, 이런 것?
◆ 김동춘> 그런 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용역. 그러니까 파업 현장이나 그다음에 철거 현장에서 경찰이 여러 가지 폭력을 행사하는 이런 것도 여전히 있었습니다. 물론 이명박 정부 용산참사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그와 유사한 형태의 공권력이 한 폭력은 여전히 있었죠.
◇ 정관용> 그리고 도청, 사찰. 그건 이명박 정부 때도 또 계속 됐고.
◆ 김동춘> 그렇습니다.
◇ 정관용> 글쎄요. 이게 사회적 척도라고 그럴까. 선진국이 되고 이러면 폭력이 줄어들고. 그런 뭐가 있습니까?
◆ 김동춘> 글쎄요. 그런 지표가 있는지는 제가 잘 알 수는 없는데 가장 심각한 폭력은 전쟁이죠. 뭐니 뭐니 해도.
◇ 정관용> 물론이죠.
◆ 김동춘> 그러니까 전쟁이 없는 상태는 가장 소극적인 의미에서 평화이지만 그 평화 상태에서도 여러 가지 테러 같은 경우가 선진국에서도 발생하니까요. 그런 것도 있고 그다음에 총기사고 같은 것도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일률적인 지표로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공권력에 의한 폭력의 정도는 선진화될 수 록 줄어든다고 봐야 하고. 그리고 공권력이 어떤 폭력을 행사할 경우에는 거기에 대한 응분의 처벌을 받게 되는 그런 정도는 좀 더 선진화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가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 정관용> 하지만 이 구조적, 문화적 폭력이라는 것은 어느 사회에든 있다?
◆ 김동춘> 어느 정도는 있죠. 예를 들면 가장 심각한 경우는 인종차별 같은 것이고요. 한국 같은 경우에는 주로 빨갱이 시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완전히 배제해서 그 사람들의 어떤 요구나 항변을 들어주지 않고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이것이 일종의 구조적, 문화적 폭력이라고 볼 수 있겠죠.
◇ 정관용> 이 책을 훑어보니까 일종의 폭력의 사회학이랄까. 이런 식의 개념으로 아주 흥미로운 표현들을 몇 개 사용하고 계신데. 우선 국가와 정권이 혼동되는 순간 국가폭력이 발생한다. 이것 무슨 말입니까?
◆ 김동춘> 국가폭력의 행사자는 국가 공무원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 정관용> 네.
◆ 김동춘> 공무원이죠. 그러니까 검찰, 경찰 혹은 예를 들면 국정원 요원 이런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공무원인데 이 사람들의 존립의 목적은 결국은 국민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에 있는 것이죠.
◇ 정관용> 그렇죠.
◆ 김동춘> 그러니까 이 사람들의 활동은 법에 의거해서 모든 활동을 하게 되어 있죠. 그런데 이 공무원들이 어떤 국민의 편에 서지 않고 특정 정치세력의 편에 설 경우에는 곧바로 국민에 대해서 아주 무서운 흉기를 휘두르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죠. 그게 바로 MB정부에서 불법 사찰 당시에 장진수 씨가 얘기했듯이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일종의 말하자면 정권충성과 국가충성을 혼동하는 전형적인 예가 바로 그런 것이죠.
◇ 정관용> 또 폭력의 경제성이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그건 뭡니까? 또?
◆ 김동춘> 글쎄요. 폭력을 왜 사용하는가라고 하는 문제인데요. 그러니까 공권력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꼭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어떤 사회적인 저항세력이라든지 반대세력이라든지 혹은 잠재적인 반대세력을 제압해서 이 사람들이 감히 대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그런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 정관용> 선제타격적 효과. 뭐 이런 것?
◆ 김동춘> 그런 것 일수도 있겠고. 아니면 일종의 일벌백계식 방식으로 어떤 특정세력에 아주 무자비한 탄압을 함으로써 다른 세력들 혹은 다른 사람들을 복종하게 만드는 효과죠.
◇ 정관용> 공포정치. 이런 식으로?
◆ 김동춘> 그렇죠. 그걸 저는 폭력의 경제성이라고 불렀고요. 학살이나 고문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고. 사찰도 일종의 보면 그런 게 비밀리에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게 어느 정도 공공연하게 사람들에게 알려짐으로써 두려움을 갖게 되고. 그 두려움 때문에 복종을 하게 되죠. 이런 것이 일종의 저는 폭력의 경제성이라고 봅니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면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본때를 보여야 된다. 예를 들면 발본색원하자.
◇ 정관용> 항상 이런 얘기가 나오죠.
◆ 김동춘> 바로 그겁니다.
◇ 정관용> 이명박 정부 때 미네르바 구속 같은 경우. 그렇게 했더니 네티즌들이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들더라. 뭐,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 김동춘> 얼어붙는 효과가 있죠. 목격자들이 얼어붙죠.
◇ 정관용> 그게 경제성?
◆ 김동춘> 말조심을 하게 되죠. 그리고 옆 사람이나 혹은 무슨 인터넷에 글 올릴 때도 조심하게 되고. 자기검열을 하게 되죠. 언론인들도 자기검열하게 되죠. 이런 것을 저는 폭력의 경제성. 즉, 이게 일반 사람들이 봐서는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싶어도 그렇게 함으로써...
◇ 정관용> 얻는 효과를 기대하면서.
◆ 김동춘> 네. 체제 유지에 아주 안정적인,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죠.
◇ 정관용> 또 소통을 하지 않는 것도 폭력이다? 답변을 회피하는 것도 폭력이 될 수 있다?◆ 김동춘> 저는 이걸 일종의 강자와 약자의 관계에서 특히 국가권력은 강자 아닙니까? 그러니까 막강한 조직과 일사분란한 지휘명령 체계를 가지고 있는 조직인데. 여기에서 어떤 피해자, 국민들이 일정한 정도 불만이나 또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했을 때 그것을 묵살하는 즉 거기에 대한 정당한 응답을 하지 않는 것, 그것을 저는 소통의 부재라고 봤고요. 그것은 일종의 폭력이라고 봅니다. 그건 왜냐하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되고 정당의 요구에는 정당한 응답이 와야 하는데. 응답이라는 게 영어로 말하면 response이고 이게 책임하고 어원이 같이 않습니까? 응답한다는 말은 책임진다는 말이거든요.
◇ 정관용> responsibility?
◆ 김동춘> 그렇죠. 책임 가능성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매우 매우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거죠.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억울한 일을 가한 사람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고 감옥가지 않고 보상하지 않고 또 공개적으로 사과하지 않는다. 이것은 폭력이죠. 그러면 피해자는 엄청난 고통과 어떤 억울함 속에서 나중에는 자살하기도 하고 이렇게 되죠. 그런 일들이 발생하죠.
◇ 정관용> 국가권력을 이용해서 정권이 정권수호 차원의 노골적 폭력들을 하다가 그다음에 사회의 분위기를 얼어붙게 하기 위해서 폭력의 경제성을 생각한 폭력을 또 하고 그렇죠? 그리고 억울한 사람이 있어도 응답하지 않는 그런 유형의 폭력도 하고. 이런 다양한 측면을 보신 거군요.
◆ 김동춘> 그런 측면도 있고 또 하나는 사적 폭력을 묵인, 방관하는 것도 저는 일종의 폭력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노동현장에서 용역직원들이 정당한 절차에 의거하지 않고 투입이 되어서 정당한 목적이 아닌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하는데 이것을 그냥 방관하거나 묵인하는 것.
◇ 정관용> 경찰이 밖에서 보고만 있다, 이런 사회.
◆ 김동춘> 네, 그것도 저는 폭력의 일종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 정관용> 지금까지 쭉 말씀해 주신 대목들은 거의가 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폭력입니다. 그것이 과거의 노골적인 형태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되고 문화화되는가, 그걸 쭉 말씀하셨는데. 사실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폭력 말고 요즘은 학교폭력, 사회폭력 이런 등등의 가정폭력. 이 사회적 폭력이 훨씬 더 큰 문제 아닐까요?
◆ 김동춘> 그렇습니다. 이건 90년대 이후에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종의 폭력의 외주화라고 할까요. 국가권력이 직접 담당하지 않고 특히 러시아 같은 데서 가장 성장산업이 경호산업 아닙니까? 예를 들면 그런 거. 그다음에 미국이 이라크전쟁에 투입을 했는데 전투부대원 제외하고는 다 민간인들입니다. 그러니까 전쟁도 일종의 산업화가 되고 경호도 산업화되고 기업이 자기들이 필요한, 예를 들면 노동조합을 제압하고 싶을 때 용역을 동원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의 민영화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결국 사회적 폭력, 사회적인 힘의 관계에서 강자와 약자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폭력이 과거에 국가가 직접 행사하는 폭력보다는 90년대 이후에 훨씬 더 보편적이 되었습니다. 한국도 그런 사회로 이미 들어왔고요. 그래서 사적 폭력이라고 할까. 이런 부분은 물론 옛날부터 있었습니다만 90년대 들어와서 그것이 훨씬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고 최근에는 학교폭력이나 이런 것처럼 특정 가해자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가해자이고 어느 정도는 피해자인. 이런 사회로 우리 사회가 접어든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건 불가피한 추세입니까? 어떻게 봐야 됩니까? 왜 그렇게 넘어가나요, 이른바 폭력의 외주화라고 하는 것은.
◆ 김동춘> 국가가 혹은 공권력이 적절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포기하거나.
◇ 정관용> 방치하거나?
◆ 김동춘> 그렇죠.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의 세계화라고 할까요? 자본이 우위에 서는 문화가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은 공권력이 정당하게 법을 집행하고 다수의 국민의 편에 서야 하는데 공권력이 그 역할을 포기하거나 뒤로 후퇴하면서 결국은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 정관용> 국가공권력에 의한 폭력과 이런 사회적 폭력 사이의 상관관계랄까? 예를 들면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많이 당한 아이들이 성장해서 보면 학교폭력을 많이 저지르고 그렇게 되더라. 이런 연구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국가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노골적으로 지배하던 그런 시대가 이 사회에 미치는 어떤 영향이랄까, 흔적이랄까? 그런 게 이런 사적 폭력 영역으로도 또 영향을 미치나요?
◆ 김동춘> 많습니다. 그거야 한국에도 그런 연구가 일부는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주로 가정폭력의 가해자들이 대체로 보면 한국의 권위주의 문화와 또 바깥에서 즉, 군대라든지 일반 조직에서 당한 억압이라든지 이런 것이 가정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죠. 그러니까 과거의 국가폭력이 오늘날 사회적 폭력으로 전이되는 그런 모습들을 볼 수가 있죠. 어느 경우든지 공통점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강압적인 문화라든지 권위주의적인 문화에서 이런 현상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죠.
◇ 정관용> 조직폭력배라고 하는 현상은 또 어떻게 연결될까요?
◆ 김동춘> 글쎄요. 이것 역시 어쨌든 우리나라에도 보면 50년대, 40년대에 조직폭력배나 혹은 우익폭력배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60, 70년대로 넘어오면 이게 결국은 군부 지배체제가 되면서 이런 식의 조직폭력배들이 사라지게 되죠. 국가권력으로 그걸 다 흡수하게 되죠. 정상적인 국가가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조직폭력배가 활개를 칠 수가 없죠. 그러나 다시 국가권력이 이완되면서 이제 50년대와 같은 이런 식의 비슷한 양상들이 나타나기도 하죠. 어떤 경우든지 공권력의 역할 부재에서부터 이런 현상들이 나타난다고 생각돼요. 왜냐 하면 공권력이 폭력을 독점하는 기구이고 공권력이 정당하게 집행될 경우에는 이런 식의 사설폭력이 일어날 수 없게 되죠.
◇ 정관용> 그렇죠. 사설폭력이 조금만 있어도 가서 엄단해 버리면 되는데. 어떻게 보면 또 조직폭력과 정치권력과 경제권력들의 미묘한 결탁관계라고 할까? 상호의존성 이런 것도 있는 것 아닙니까?
◆ 김동춘> 그렇죠. 결국은 폭력이라고 하는 것이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또 그걸 통해서 움직이는 사회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는데. 그게 안 될 경우에 결국은 이탈리아의 마피아처럼 어쨌든 그런 형태의 조직들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죠.
◇ 정관용> 아까 외국에 어떤 기준이나 척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했죠. 예를 들면 사회의 폭력지수라고 그럴까요? 폭력이 만연화된 정도라고 할까요. 이런 걸 좀 국가 간 비교, 이렇게 해 볼 수 있는 연구기법 같은 건 없을까요?
◆ 김동춘> 미국에서는 그걸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매년 예를 들면 총기사고나 폭력으로 사망한 사람 숫자를 집계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제가 본 것으로는 전쟁에서 죽은 사람보다 총기난사라든지 이런 폭력으로 죽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통계를 매년 집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또 예를 들면 전쟁 연구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전쟁 시에 사망하는 전투군인 사망자와 민간인 사망자의 비율. 이런 걸 통해서 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국제적으로 이런 사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제가 의미한 바에 있어서 오늘 현재 상태로, 그 사회의 어떤 폭력의 정도. 폭력에 대한 둔감성의 정도라고 할까. 이런 것을 우리 김동춘 교수께서 한번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흔히 OECD 국가 가운데 이런 식으로 평가하잖아요. 대략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심각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 김동춘> OECD 국가 중에서는 매우 심각한 나라에 속한다고 저는 생각이 돼요. 그러니까 이게 겉으로 드러난 폭력도 있지만 사실상 폭발 직전에 있는 지금 젊은이들, 학생들. 이것이 계속 억눌려진 상태에서 고스트레스 사회 아닙니까? 고스트레스가 곧바로 폭력으로 표출이 되는데. 단지 우리가 총기를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국 같은 그런 식의 사고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폭력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해결을 대화로 풀지 않고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사회에서 지금 각종 고소고발, 소송 남발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고소고발 소송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대화나 소통 불능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것은 곧바로 폭력으로 전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정관용> 방금 말씀하신 데서 어떤 단초가 발견됩니다만 이런 폭력지수를 낮추고 이런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 하기 위해서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을 좀 주신다면?
◆ 김동춘> 일종의 과도한 목표지상주의, 과도한 경쟁 그다음에 국가가 자신의 어떤 이념이나 목표를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득해 내기보다는 강요하는 이런 분위기. 특히 남북한의 군사적인 대결상태.
◇ 정관용> 아, 그것도 또 영향을 미치겠죠.
◆ 김동춘> 안보지상주의 이런 것이 우리 사회에서의 어떤 밑으로부터의 정당한 문제제기나 어떤 의견개진을 어렵게 만들고 일방적으로 침묵시키게 만들고 예를 들면 학교에서는 성적지상주의가 학생들을 침묵시키게 만들고 이런 식의, 어쨌든 성장주의와 안보지상주의의 유산이라고 저는 생각이 돼요. 그것이 우리 사회 폭력성의 원인인 것 같아요.
◇ 정관용> 이렇게 진단하는 말씀을 들어보면 너무도 구조화된 우리의 문화입니다. 그렇죠? 고치기 어렵겠는데요. 실천방안을 찾는다면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까요?
◆ 김동춘> 그래서 저는 남북한의, 지금 우리가 굉장히 전쟁위기에 있습니다만 이 전쟁위기가 좀 더 심화되면 곧바로 북한은 북한주민들에 대한 폭력 그다음에 남한은 남한정부의 남한주민들에 대한 폭력으로 곧바로 나타나죠, 과거의 예로 비추어 봤을 때. 그래서 결국은 남북한의 대화와 평화체제가 일단 이것으로부터 우리가 좀 벗어날 수 있는 출구가 될 것 같고 그다음에는 어쨌든 우리 경제위기가 많은 사람들을 불안한 상태로 많이 몰아가고 있으니까 경제적인 문제가 대단히 심각한 국력의 잠재적 요인인 것 같아요.
◇ 정관용> 남북관계도 풀려야 되고, 경제도 잘 되어야 되고. 당장은 그런데 일단 국가공권력의 정의로운, 엄정한 집행. 이런 것도 요구해야 되지 않을까요?
◆ 김동춘>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과거에 불법적인 폭력을 행사했던 공권력의 집행자들이 우선 거기에 대한 처벌이나 거기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그게 되지 않음으로써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 공권력이 국민들에 대한 인권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을 별로 중시하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무슨 발본색원이라든지 엄단을 한다든지 이런 식의 표현이 나오는 거예요. 이건 전혀 민주사회에서는 맞지 않는 표현인데요.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거죠. 저항세력을 적으로 돌리고 정당한 생존권적인 문제제기를 적으로 돌리는 행동이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쨌든 그런 부분들이 좀 바뀌어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고요. 그래서 법의 지배가 가장 중요한 공정인데요. 결국은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되고 공정하다는 말은 특히 검찰이 과도하게 정권의 눈치를 봐서 정치검찰 형태로 하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고소고발의 고통을 겪게 되죠. 이런 부분들이 가장 심각한 우리 사회의 요인인 것 같아요. 이런 부분들에 좀 법의 지배가 관철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 정관용> 법의 지배가 관철되는 사회. 그리고 과도한 성장, 경쟁 여기로부터도 좀 벗어나고 남북 간의 긴장도 좀 풀리고. 와, 정말 지난한 과제입니다.
◆ 김동춘> 그렇습니다.
◇ 정관용> 책의 부제가 폭력공화국에서 정의를 묻다라고 되어 있는데 오늘 이 이야기 같이 좀 고민하면서 아, 우리 사회의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 벌거벗은 폭력이 아닌 정말 공정한 정의란 무엇인가 같이 좀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드리고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동춘> 감사합니다.
◇ 정관용> 대한민국 잔혹사라는 책 들고 오신 김동춘 교수 함께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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