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뛰어넘는 강도에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이 장기판을 엎는 것", "입법부를 시녀화하려는 시도"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충격을 받은 것은 야당 만이 아니다.
"협상은 당에서 하는데 대통령이 저렇게 나오면 어떡하란 말인가" ''분노''라고까지 할 수 있을 만큼 격한 어조와 상기된 표정에 새누리당 의원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조해진 의원은 곧바로 열린 의원총회에서 "앞으로 벌어질 모든 쟁점을 매사에 이런 식으로 풀어 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이제는 통치가 가능한 시대는 갔고 정치만 가능한 시대"라고 지적했다.
특히, "박 대통령의 담화에 100% 공감하지만 정책 실현을 위한 과정을 제대로 밟지 않아 정치 환경이 더욱 악화됐다"면서 "정부조직법 개정안 작성 과정에서도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으로부터의 의견 수렴 과정도 없지 않았느냐"고 비판했다.
의원들의 공감하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부조직개편 과정의 여당 소외에 대한 불만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7선의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27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그동안 여당이 무기력하게 끌려간 것인데, 이는 행정이 정치를 주도하는 것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침을 가했다.
대부분의 여당 의원들은 정 의원처럼 대놓고 비판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지만 대국민 담화 이후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다. 당 곳곳에서 반발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한 재선 의원은 "2월 국회 종료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여당과의 조율도 없이 청와대 대변인이 일방적으로 원안고수 브리핑을 한 데 이어 다음날에는 대통령이 선전포고성 담화를 했다"면서 "야당은 물론 여당도 무시하는데 협상이 될 리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3선 의원도 "대통령 담화로 청와대와 야당이 서로 문을 걸어 잠그면서 정치적 기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다"면서 "일단 정부부터 출범시키고 봐야 하는데 무슨 생각인지 정말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재선 의원은 "양보는 정부와 여당이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어머니 리더십''을 발휘해 야당 안을 수용한다면 국민의 박수를 받지 야당에 끌려다닌다는 비난을 받겠느냐"고 반문했다.
친박계의 한 의원마저 "요즘 보면 박 대통령이 15년간 정치를 한게 맞나 싶다"면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다수의 여당 의원들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적인 출범을 위해 비판을 참아왔는데 이제는 한계에 이른 듯하다"면서 "당 지도부가 나서서 대통령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친이계 좌장이었던 5선의 이재오 의원은 5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청와대와 야당이 맞설 경우 여당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며 "교착상태에 빠진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 과정에서 집권 여당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4선의 정병국 의원도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결국 당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면서 "당 지도부는 사퇴까지 각오하는 자세로 협상에 나서야할 것"이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