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가 뭐예요?"…추억 속 ''학교 앞 문방구''

''준비물 없는 학교'' 정책으로 문방구 설 곳 잃어…상품권 도입도 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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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시장 옆에 있는 영중초등학교. 정문 맞은편으로 2차선 도로를 건너면 바로 문방구가 하나 보인다. 학교 앞에 유일하게 하나 남은 문방구다.

문을 열고 들어간 문방구 안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매대 위에는 학용품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고, 그나마도 상자에는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오랫동안 손을 타지 못해 빛이 바랜 완구 상자들 아래로 주인장이 정물처럼 앉아있었다.

20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문방구를 해왔다는 업주 김모(70)씨에게 어린 손님들로 시끌시끌하던 가게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지금은 다른 가게가 다 들어섰지만, 옛날엔 그게 다 문방구였어요. 학교 앞에 문방구가 한 일곱갠가 여덟갠가...도로 따라서 일자로 주욱 문방구들 뿐이었거든... 그래도 다 먹고 살았어요. 학생수도 많고 그때는 애들이 문방구 앞에서 놀다가 학교 들어가고 그랬죠.''''

김 씨는 ''''그래봤자 바뀌는 것도 없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미 체념한 모습 속의 그는 습관처럼 그저 문방구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뿐이었다.

''''우리도 진작에 접었어야 했는데, 지금 내 나이가 칠십이에요. 어디가서 노동일도 할 수 없고, 이렇게 이거를 계속하다보니까 바닥이 나버린 거지...''''

◇ 사라지는 학교 앞 문방구들

학교 앞 어린 학생들의 정겨운 만남의 장소였던 문방구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 ''''학습 준비물 없는 학교''''를 표방하면서, 더 이상 학교 앞 문방구에서 준비물을 사 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35년째 문구도소매업을 해온 A사 이경오 대표는 ''''요즘 아이들은 문방구 앞을 지나가면서 저기가 뭐하는 곳이냐고 오히려 부모들에게 묻는다고 한다''''며 변화된 세태를 전했다.

현재 학교들은 조달청의 나라장터(G2B)나 교직원공제회가 운영하는 학교장터(S2B)에서 학습 교보재를 일괄 구매하고 있다. 최저가로 대량 입찰을 붙이다보니 동네 문방구는 입찰에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다.


그러다보니 갈 곳을 잃은 문방구는 도태되는 길을 걷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문방구 숫자는 1999년 2만6천986개에서 2009년 1만7천893개로 10년동안 34%(9천093개)가 줄었다.

준비물 없는 학교가 본격화된 2011년부터는 학교 앞 문방구의 폐업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대로 갈 경우 몇몇 대형 업체들을 제외한 소규모 영세 문구점은 결국 사라지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

◇ 문구상품권 도입 제안.. 교육당국은 난색

문구업계에서는 전통시장 상품권처럼 상품권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관련 컨설팅과 상품권 도안까지 마친 상태다.

이경오 대표는 ''''학생들에게 문구전용 상품권을 나눠주고, 학생들이 직접 학교 앞 문방구에서 준비물을 사도록 하자는 취지''''라며 ''''용역을 의뢰한 결과 상품권 제도가 시행되면 학교와 문구점이 상생하면서 문방구가 연 20%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나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없는 예산을 억지로 만들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이미 있는 준비물 예산의 일부만이라도 상품권 형태로 돌려서 상생을 해보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상품권 제도는 도입이 힘들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상품권 제도를 도입할 경우 누가 상품권을 발행하고 또 어떻게 나눠줄 것인지 등을 놓고 논란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아이들에게 상품권을 나눠주면 학부모들이 또 신경을 써줘야 한다''''며, ''''준비물 준비에 대한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뿐 아니라 심리적 부담까지 덜어주겠다는 제도의 취지를 퇴색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교육당국은 다만, 어려운 문구업계의 사정을 감안해 소규모 구매물량에 대해서는 일선 학교들이 굳이 S2B를 이용하지 않고 학교 앞 문방구를 이용할 수 있도록 권고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제한적인 대책만으로는 문방구의 도태를 막기는 힘들어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소상공인들이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벼랑 끝으로 몰린 학교 앞 문방구를 살려내기 위한 대책도 제시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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