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으로 ''헌 나라'' 만들려는가?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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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우리 사회에 복고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새마을운동에 재점화이다. 새마을 운동이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독창적 작품이 아님을 이미 설명한 바 있지만 오늘은 범위를 더 넓혀 살펴보자.


새마을운동의 태동을 알린 것이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 연설이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자조''하는 마을은 빨리 발전하지만 그렇지 못한 마을은 5천년이 지나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힘이 모자라는 것을 정부에 요청하면 도와주겠다. 이걸 새마을 가꾸기 운동이라고 말해도 좋고, 알뜰한 마을 만들기 운동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 새마을운동을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이 있다?

전국 각 지역마다 마을주민들이 힘을 모아 새마을을 가꾸면 정부가 우수한 마을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자주자립의 우수마을에 정부가 차별적으로 지원한다는 ''우수마을 개발사업''은 이승만 정부에서 먼저 만들었다. 이승만 정부 후반기의 ''지역사회개발사업''이 그것이다. 부패·비리로 비틀거리던 이승만 정권이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해냈을까?

이승만 정부의 지역사회개발사업은 1955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제 10차 대회>에서 가져 왔다. 유엔이 규정하고 있는 지역사회개발사업은 이런 것이다.

"지역 사회의 경제·사회·문화적 여러 가지 조건을 개선하고 향상시키기 위하여 주민들의 노력이 정부 기관의 노력과 결합되고, 지역사회를 국가에 결합시켜 그들로 하여금 국가 발전에 충분히 공헌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다면 유엔은 이런 생각을 어디서 가져왔을까? 당시 유엔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 후 제3 세계를 미국의 영향권 아래 두고 세계 제패의 기반을 다져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미국이 숱한 개발도상국들을 무상으로 지원해 근대화를 이끌고 거기서 미국이 원하는 이득을 얻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재원도 부족하고 언제까지 퍼줄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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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가 빤히 보이자 미국은 개발도상국 지역주민 스스로 근대화에 노력하고 그 나라 정부가 지원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지역개발을 지원하는 이른바 ''매칭펀드'' 방식을 추진했다. 그래서 이를 유엔 경제사회이사회를 통해 국제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1950년대 말 한국을 비롯한 세계 25개 개발도상국에서 일제히 미국의 지원 아래 지역사회 개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1958년 한미합동경제위원회에서 이 지역사회개발운동이 제시돼 추진에 들어갔다.

여기에 더해지는 하나의 흐름을 놓칠 수 없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에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시작한 농촌계몽운동이다. 농촌계몽운동을 통해 민족의식이 높아지자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통해 자주적인 민족운동을 중단시키고 총독부가 주관하는 ''농촌진흥운동''이란 관제운동으로 대체(기자수첩 2012.8.24일자)시킨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6.25전쟁이 터졌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1958년 미국의 지원을 받는 정부 주도의 지역사회개발사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부패한 이승만 정부에서 이 사업은 지지부진 끝나버렸고 4.19 혁명으로 들어 선 장면 정권에서 리모델링된다. 그것이 바로 ''국토개발기획단'' 사업이다.

장준하 선생이 이끈 ''국토개발기획단'' 사업은 민족의 일제 강점기 때 농촌진흥운동의 전통을 계승하고 정부의 지원과 미국의 원조를 합쳐 민족과 국토를 업그레이드 시키려던 것이었다.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것은 6.25전쟁 직후 일부 농촌에서는 자발적인 농민계몽운동과 마을 개선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들 개별적인 농촌개선운동도 국토개발기획사업에 흡수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역시 5.16 쿠데타로 사업이 시작되자마자 막을 내리고 말았다.

박정희 정부는 그후 몇 년이 지나 1966년 ''부락민 자조개발 6개년 사업''을 내놓는다. 이것 역시 지지부진하자 박정희 정부는 주민 스스로 실적을 올리는 우수한 마을을 골라 차별적으로 집중지원하는 사업으로 전환을 시도했다. 이스라엘 키부츠 등의 성공사례 등을 벤치마킹하며 정부 부담도 줄이고 효과는 높일 수 있는 <새마을 운동>이 여기에서 태동되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새마을의 기수''로 훈장을 받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 성격이 드러난다.

△제주 서귀포 김성보 - 1955년부터 마을건설청년단을 조직해 부락개발운동 펼침 △충북 청주 하상돈 - 1961년부터 청년상조회 조직과 문맹퇴치운동 △상부상조운동 전개 △전북 김제 강남성 - 1950년대 후반 마을진흥회 조직 환경개선사업 음주도박퇴치운동 벌임 △경북 영일군 홍선표 - 1967년부터 마을전답 수리운동과 환경개선사업 벌임.

◇ 새마을운동으로 헌 나라 만들지 말라

훈장을 받은 8명 모두 1950년대와 60년대에 농촌개발사업을 자치적으로 시작해 결실을 거둔 사람들이다. 결국 새마을운동은 일제강점기로부터 미군정, 이승만 정부와 장면 정권을 거치며 엎치락 뒤치락 이어져 온 농촌계몽운동 및 지역개발사업을 뭉뚱그려 이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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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마다 근대화 운동을 주민 스스로 추진하되 제각각이기보다는 국가가 그 방향을 제시하고 필요한 재원과 행정지원을 떠맡는 형식이다. 새마을운동은 주민자조가 국가동원으로 바뀌고, 국가지원이 국가이데올로기와 권력화로 변질되며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이것이 민족계몽운동으로부터 이어지는 주민 자주자조의 새마을의 흐름이 있고, 조선총독부 - 미군정과 한미협의회 - 정부 주도로 이어지는 새마을의 흐름이 뒤엉킨 우리의 새마을 운동 역사이다.

그렇다면 21세기 디지털민주주의 시대에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새마을운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큰 틀에서의 논의 없이 번져가는 섣부른 새마을운동의 부활은 옳지 않다. 누구를 주체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새 정부가 밑그림을 그린 뒤에 시작해야 옳다. 그 그림은 지금으로서는 미래창조과학부가 그려야 한다. 그림 맞추기 퍼즐에서 밑그림이 있어야 하듯이 선진과학기술을 토대로 국가발전의 밑그림을 그려야 하는 정책기획 담당이 바로 미래창조과학부이다.

유신정권의 향수에 젖은 관 주도의 새마을운동이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지 국가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성장동력인지 ''미래창조''의 관점에서 따져보라고 하자. 충성경쟁의 눈치 속에 튀어나오는 무책임한 새마을 복고 움직임은 나라를 헌 나라로 만들 뿐 별다른 실익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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