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SUV의 차체 높이는 1700㎜ 안팎인데 벤자의 경우 1610㎜로 10㎝ 정도 낮다. 바닥 높이도 함께 낮췄는데, 차체가 네 바퀴를 절반 이상 감싼 모습은 영락없는 세단이다. 차체의 바닥이 낮은데다 높이가 있으니 키 큰 어른은 물론 아이도 타고 내리기 편하다.
단, 바닥이 낮은 탓에 차문을 열 때 도로와 인도를 나누는 턱에 부딪힐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차량 내부 센터페시아 부근에 높이 달린 변속기, 복잡하지 않은 조작 버튼들, 넓은 공간·시야는 할리우드 영화에 나올 법한 픽업 트럭을 연상시킨다.
벤자는 사실 토요타가 북미 전용으로 개발한 모델이다.
전량 미국 켄터키 공장에서 생산되는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 인하 덕을 보게 되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산 일본차다.
''아메리칸 스타일''이라는 태생적 특징이 깊게 밴 이유다.
272마력, 35.1㎏·m의 성능을 내는 3.5ℓ V6 가솔린 엔진을 단 벤자 리미티드로 서울 강남의 도심을 달려봤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길어지기 시작한 차량 행렬 탓에 가다 서다를 반복했는데 낮은 소음 진동, 부드러운 가속·브레이크 페달 감은 정숙성을 자랑하는 토요타답다.
올림픽대로로 나와 경기 하남시 미사리까지 20여 ㎞ 거리를 달리면서 한두 차례 120~130㎞까지 속도를 높였는데도 소음 진동이 안정적이다.
양쪽 사이드 미러 바깥쪽 상단에는 볼록거울이 달렸는데 운전자가 알아채기 힘든 사각지대에 들어온 차량을 보여 준다. 같은 기능의 전자 장치가 유행처럼 번진 때, 아날로그적인 따뜻한 감성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후진할 때는 사이드 미러가 자동으로 아래를 비추는 등 곳곳에 탑승자의 안전을 위한 세심한 배려도 묻어난다.
아메리칸 스타일이라는 벤자의 태생적 한계는 아쉽게도 연비다.
석유 에너지 확보를 위해 전쟁도 마다않던 정부 덕에 미국은 세계 어느 곳보다 기름값이 싸다. 그래서일까. 5000만 원이 넘는 벤자 리미티드의 복합연비는 ℓ당 8.5㎞에 머문다.
차량 뒷문 유리창에 붙은 ''연료효율 5등급''이라는 스티커가 부담스러운 이유다. 실제로 서울 도심을 누비다 하남까지 40여 ㎞를 달렸을 뿐인데 연료 게이지의 4분의 1가량이 줄었다.
웬만해서는 연료 게이지로 향하는 운전자의 걱정스러운 눈길을 막을 수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