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의 고향맛…추억을 곱씹다

드라마 속 메지콩식당 ''목향원''

드라마 속 메지콩식당 ''목향원'' 드라마 ''내 사랑 나비부인''에서 메지콩식당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주인공 남나비와 시댁 식구들이 새롭게 일어서기 위한 재기의 공간이고, 가족애를 확인해가는 공간이다.

메지콩식당으로 나오는 곳은 남양주시 별내면에 자리한 목향원이다.

목향원은 드라마 촬영지일 뿐 아니라 오래된 전원 카페이자 식당이다.

목향원 인근에는 천년고찰 흥국사가 있어 하루 넉넉하게 여유를 즐기기에 좋다.

■ 초가지붕·장독대… 그리운 고향 정취

''내 사랑 나비부인''은 잘나가던 톱스타 출신의 여배우 남나비가 결혼과 함께 닥친 우여곡절 속에 사랑과 가족애를 찾아가는 드라마다.

지난해 9월부터 촬영을 시작했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극중 메지콩식당은 주인공 남나비와 그녀의 시댁 식구들이 우여곡절을 겪고 어쩔 수 없이 내려와 있는 마지막 안식처이자 가족이 서로 화합하고 사랑을 일궈나가는 보금자리다.

목향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은 매우 인상적이다.

가는 길이 적당히 굽어 있고, 장독대와 초가지붕을 인 목향원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겨울이라 스산한 느낌은 들지만, 굴뚝으로 피어오르는 연기만으로도 왠지 차분해지고 정겹다.

장독대에는 메지콩식당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드라마 ''내 사랑 나비부인''의 촬영지임을 금세 알 수 있다.

목향원은 주인장 한성우 씨가 16년 전에 지었다.

나무 목(木), 시골 향(鄕), 동산 원(園). 즉, 나무 향 가득한 동산이란 뜻이다.

향기 향(香) 자를 쓸 법도 한데, 시골 향(鄕) 자를 쓰는 연유를 물어보니 문득 고향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장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어렸을 적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집안이 큰일을 겪게 되어 어렸을 적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올라와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방학 때마다 고향인 남원으로 내려갔는데 가난한 서울생활이 싫어 그렇게 올라오기 싫었단다.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고 올라올 때마다 "기차야 멈춰다오, 기차야 멈춰다오"라고 했을 정도란다.

그후 자수성가한 한성우 씨는 현재의 자리에 목향원을 지었다.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고향, 어려웠던 서울생활 속에서도 그나마 편안한 보금자리였던 고향을 지울 수가 없어서였다.

고향을 떠올리며 토속적인 초가집을 지었고, 목가적인 느낌이 나는 목향원이라 이름 붙였다.

초가지붕은 해마다 올린다.

한 번 올릴 때마다 700만∼800만 원 정도의 거금이 들어간단다.

그래도 고향생각을 하며 벌써 16년째 이어오고 있다.

연못과 목교뿐 아니라 돌담 역시 강원도 영월에서 가져온 돌로 직접 쌓았다고 한다.

목향원의 예스러운 멋은 주인장 한성우 씨의 손끝에서 오랫동안 다듬어진 셈이다.

■ 목향원에서 맛보는 석쇠불고기 쌈밥정식

목향원은 전원 카페이자 식당이다.

드라마에서 주로 많이 나오는 입구의 초가집은 차나 음료를 마시는 카페,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초가가 식당이다.

이 식당에서 내는 석쇠불고기 쌈밥정식은 목향원만큼이나 인기가 많다.

평일인데도 낮 12시가 조금 넘어서자 벌써 좌석이 거의 찰 정도다.

주인장 한성우 씨는 목향원을 운영하면서 전원 카페를 시작으로 갯벌장어, 오리요리 등 다양한 메뉴를 시도했지만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석쇠불고기 쌈밥정식으로 메뉴가 바뀐 것도 근래의 일이고,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진 것도 최근의 일이다.

20여 년 가까운 시간 중에서 지금이 가장 바쁘다고 한다.

목향원의 대표 메뉴는 석쇠불고기 쌈밥정식이다.

석쇠돼지불고기와 7가지 유기농 쌈채, 우렁된장과 5∼6가지의 밑반찬이 딸려 나온다.

석쇠불고기는 참숯에 석쇠로 구운 뒤 잘게 썬 양파 위에 소복이 담아낸다.

유기농쌈채는 직거래를 통해 매일 아침 팔당에서 직접 가져온다.

상추, 적근대, 청로메인, 적로메인, 청겨자, 적겨자, 쌈케일, 쌈추 등 계절에 따라 7가지가 나온다.

특이한 것은 쌀밥이 아닌 백미, 흑미, 조를 넣고 지은 삼색밥. 주먹밥처럼 둥글게 뭉쳐내는 삼색밥은 차지고 맛도 좋지만 시각적인 효과도 제법 크다.

주인장 한성우 씨는 "먹는 것은 생명이다"라고 말한다.


화학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고, 비싸더라도 유기농 쌈채를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손님 식사에 정성을 다하는 것도 조미료에 길들여진 입맛이나 편식을 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입구에 있는 초가집 두 채는 전원 카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손님이 많으면 식당으로 대체되기도 하지만, 여유롭게 차 한잔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벽난로와 연탄난로가 제법 분위기를 내고, 넓은 창 너머로는 우뚝 솟은 불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득 목향원의 봄 풍경이 스치듯 지나간다.

목향원 뒤편 산자락에 연둣빛이 수채화 물감처럼 번지고,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는 큼직한 벚나무, 돌담 사이로 분홍빛 진달래와 붉은빛 영산홍이 일렁이는 풍경, 아마도 주인장 한성우 씨가 그리던 ''고향의 봄''이 아닐까 싶다.

  ■ 덕절로 불렸던 사찰, 흥국사

목향원에서 작은 일주문을 지나 길을 오르면 흥국사에 이른다.

흥국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광법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창건 당시는 수락사였고, 조선 선조 때 덕흥대원군 묘의 원찰이 되면서 흥덕사로 바뀌었다가 인조 때 이르러 흥국사라 불렸다.

흥국사는 대방이라는 H형의 독특한 건물 뒤로 영산전·대웅보전·왕전이 전면에 자리했고, 독성전·만월보전·단하각이 뒤편에 나란히 앉아 있는 가람 배치를 보이고 있다.흥국사 대방은 정토염불사상이 크게 유행하던 19세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대웅보전을 불단으로 삼고 염불수행 공간과 누, 승방, 부엌 등 부수 공간을 함께 갖춘 복합 법당으로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흥국사는 덕절로 잘 알려진 사찰이다.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묘 인근에 흥국사가 있어서 조선 왕실은 이 절을 원찰로 삼았다.

덕흥대원군은 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무덤을 능이라 부를 수 없었는데, 선조는 백성들 사이에서라도 능이라 불리게 하고 싶어서 꾀를 냈다.

궁에서 쓸 땔감을 동대문 밖에서 해오게 한 뒤, 땔감을 가져오는 사람이 덕흥대원군 묘를 지나왔다고 하면 되돌려 보내고, 덕릉을 지나왔다고 하면 술과 음식을 주고 땔감을 비싼 값에 사들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무덤이 정식으로 능이라는 이름을 얻진 못했지만 백성들 사이에서만이라도 능이라 불렸으면 하는 선조의 애틋한 효심이 느껴진다.

현재 대웅보전이 수리 중이어서 다소 번잡한 면이 있지만, 목향원에서 가까워 산책 삼아 다녀오기 좋다.

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남양주시, 목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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