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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는데다 지난 4년 동안 억눌렸던 소비재 가격인상 요인이 한꺼번에 현실화하면서 집권말 소비자물가가 요동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최근 햇반 9.4%, 다시다 8% 가격인상을 단행했다. 햇반은 10년만에, 다시다 가격은 3년만에 올린 것이다. 삼양식품은 라면 한 개당 가격을 760원으로 6%가량 인상했다. 역시 4년 4개월만의 가격인상이다.
농심의 새우깡이나 롯데칠성음료의 음료수, 오리온의 과자, 동원F&B의 참치, 하이트진로의 맥주 등 올 하반기 들어 식음료 가격 인상이 줄을 잇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정부의 가격억제 정책 때문에 원부재료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한 업체가 가격을 올리자 너나 할 것 없이 가격인상 대열에 동참하는 형국이다.
하나같이 짧게는 3~4년, 길게는 10여년 만의 가격인상이다. 심지어 지난해 말에는 OB맥주와 풀무원 등 일부 식음료 가공업체들은 인상했던 가격을 다시 환원하는 사례까지 있었을 정도로 정부의 소비재 물가안정 의지는 유례없이 강력했다.
그러나 올 하반기 들어서면서 부터 식음료 가격인상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일부 품목은 정부의 용인 하에 가격을 올렸고 다른 업체들의 가격인상에 대해서도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업계는 정부의 가격억제 재갈이 풀리자 내심 반기고 있지만 소비자에게는 국제곡물 가격 급등과 맞물려 부담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재 가격은 시장의 자율적 기능에 맡겨야 한다"며 "(물건을)사고 말고는 소비자가 선택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식품 제조업체 한 직원은 "집권초 가격 억제 정책이 시작됐을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라며 "올 것이 왔을 뿐이다"고 말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초기에는 가격인상을 억제하더니 최근들어 갑자기 물가관리의 고삐를 늦추는 것 같다"며 "인위적 가격관리를 지속적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장메커니즘에 맡기는 것도 아니어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 지 난감하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억제정책은 애초부터 여러 부작용을 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요과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도록 유도하되 수급불안정 등 불요불급한 경우 정부가 개입하는 정책이 일반적이지만 빠른 성과에만 집착한 전시행정의 여파가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가고 있다.
최근의 가격인상 도미노와 높은 가격인상률, 여러 가격인상요인의 혼재 등은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업계에서는 집권말 가격인상의 물꼬가 터진 상황에서 가격을 올리지 못하면 차기 정권에서는 인상 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더 많은 품목의 가격을 더 많이 올리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보여주기 위한 가격관리에 나설 것이 아니라 시장기능에 맡기되 과도한 가격인상을 방지하는 등 가격인상의 비합리적인 요소를 찝어내 시정하는데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