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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토 티필라에 얽힌 ''북두칠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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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미국누비기] 타워형 주상절리 데블스타워의 역발산 기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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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멈 할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이웃마을에 품을 팔러 갔던 어머니는 밤이 늦어서야 일을 마치고 오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하는데 고갯길을 넘다 호랑이를 만난다. 어머니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는 호랑이의 위협에 못이겨 떡을 하나씩 주다 보니 금세 동이 나 버린다. 호랑이는 떡이 떨어졌다는 말에 두 팔과 두 다리를 차례로 요구해 먹고는 굴러서 집으로 가던 어머니의 몸통까지 꿀꺽 삼켜버린다.

호랑이는 어머니의 옷과 머릿수건으로 변장한 채 오누이가 기다리는 집에까지 달려가 문을 열어달라고 하지만 오누이는 어머니 목소리가 아니라며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남매는 문구멍으로 내다보고는 호랑이인 줄 알아채고 뒷문으로 달아나 나무위로 피신하는데, 호랑이가 나무 위까지 따라오자 하늘을 향해 "저희를 살리시려거든 쇠줄을, 죽이시려거든 섞은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기도한다. 다행히 쇠줄이 내려와 하늘에 오른 오누이는 해와 달이 된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거의 비슷한 줄거리로 각기 다른 제목의 책으로 출간된 대표적인 한국전래동화로 어린이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나는 어린시절 어머니로부터 ''달순이 해순이''란 옛날 이야기로 처음 들었다. 특별한 놀잇거리도 장난감도 없던 시절 긴밤을 보내기에 옛날이야기 듣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거의 매일 달순이 해순이 얘기를 해달라고 부모님을 조르던 기억이 난다. 장성한 요즘도 이야기의 줄거리가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2

 

미국 서북부 와이오밍주 동쪽 가장자리 부근에 ''데블스타워''(Devils Tower)라고 명명된 멋들어진 주상절리 타워가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로 우뚝 솟아 있다. 와이오밍의 명소 옐로우스톤으로 가던 길, 길가에 데블스타워라고 적힌 푯말이 눈에 띄었다. 사실 데블스타워가 서부여행의 여정으로 잡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름이 워낙 독특하기도 하고 시간적 여유도 있어서 데블스타워에 들르기로 했던 것이다.

평원 위에 우뚝 솟은 데블스타워의 형상이 놀랍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데블스타워란 지명이 뇌리 속에 더욱 선명하게 새겨진 이유는 데블스타워에 얽힌 전설 때문이다.

수 족을 비롯한 미국 대평원을 지배했던 인디언들은 오랜 세월 그곳에 살면서 끝없이 넓은 평원이 자기네 땅이란 흔적을 데블스타워에도 남겨뒀던 것이다. 그 중 카이오와족(kiowa)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즉 전설은 내용과 구성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와 너무 흡사해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인류학적 뿌리가 같기 때문에 비슷한 전설을 공유하게 됐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인디언이 남긴 전설의 내용은 이렇다. 여덟 명의 어린이가 놀고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은 사내아이 나머지는 계집아이로 한 가족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소년이 벙어리가 된 채 떨다가 무작정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의 손가락은 발톱이 됐고 몸은 온통 털로 뒤덮이게 돼 소년은 금세 곰으로 변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소녀들은 별안간 벌어진 일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곰을 피해 달아나던 누이들은 한참을 달려 한 나무의 그루터기에 도착했고 나무가 그들에게 "그루터기 위로 올라타"라고 말했다. 소녀들이 그루터기 위로 올라가자 그루터기는 하늘로 날기 시작했다. 그들을 공격할 기세로 달려 왔던 곰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매들은 하늘로 올라갔고 다시 태어나 북쪽 하늘의 일곱 별 북두칠성이 됐다는 이야기이다.

오누이 또는 형제자매 사이인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위기를 맞아 도망치다 비현실적이면서도 다분히 신화적인 방법으로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는 것, 그리고 하늘의 해와 달 또는 별이 된다는 내용이 매우 흡사하다. 전설은 본래 옛부터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면서 조금은 그 내용이 바뀌고 내용의 첨삭이 이뤄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비슷한 얘기지만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개되는 경우를 왕왕 접할 수 있다. 인디언의 북두칠성 이야기나 해와 별이 된 오누이 이야기 역시 뿌리가 같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데블스타워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팸플릿을 읽으면서 이 얘기를 처음 접한 나는 직감적으로 두 이야기가 비슷한 뿌리에서 시작됐을 것 같다고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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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 인류는 이미 러시아의 극동 축치반도와 알래스카 사이를 가로지른 베링해협을 건넜다. 베링해를 넘어간 이들은 아시아계로 알래스카에서 계속 남하해 북미대륙을 차지하고 남미대륙까지 뻗어나가 마야와 잉카문명을 꽃피웠다. 한민족의 원류가 됐던 북방계통의 한 분파가 중앙아시아에서 방향을 틀어 시베리아로 알래스카로 북미대륙으로 이동해 가면서 그들의 조상과 부모로부터 전해들은 전설이 데블스타워까지 전파된 것은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펴보기도 했다.

나는 이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입증은 되지 않았으나 북방계통의 황인종이 베링해를 넘은 이후, 이곳이 한번 더 인류의 이동루트로 사용됐던 점으로 미뤄볼 때 가능성은 다분하다고 보고 있다.

제정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여제 시절 일군의 러시아 프론티어들은 시베리아로 한껏 영토를 넓혀가다 베링해에 가로막힌다. 당시 여 황제는 극동지방을 넘어 미지의 세계로 탐험에 나서도록 탐험대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탐험대는 알래스카를 넘어 북미대륙의 서해안을 따라 캘리포니아까지 남하했던 적이 있다. 아쉽게도 나중에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통째로 미국에 팔아넘기는 바람에 제정 러시아 시절 마련한 아메리카대륙의 교두보를 송두리째 잃게 되지만 어찌됐건 인류가 두 차례에 걸쳐 베링해협을 건너갔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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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스타워란 이름은 그 곳으로 탐험에 나섰던 리차드 다지 대령이 1875년에 지은 이름이다. 하지만 그 전에는 인디언어로 마토 티필라(mato tipila)로 불렸다. 곰의 서식지나 곰의 소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오늘날 주상절리 타워는 공식적으로 데블스타워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주변에는 베어스로지 캠프그라운드 등 과거 전설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데블스타워는 평원 위로 우뚝 솟은 바위산이다. 그냥 산이 아니라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돌산이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산이 아니라 화산이 폭발해 생성된 화산융기지형이다. 제주도 남제주에 가면 바닷가에 지삿개란 이름의 관광지가 있다. 주상절리 해안이라고도 부른다. 바위 단면의 형태가 육각형 내지 삼각형으로 긴 기둥 모양을 이루고 있는 암석의 단면이 죽 이어진 형태를 말한다.

데블스타워는 높다랗게 솟은 원기둥꼴로 원기둥의 표면이 모두 주상절리이다. 평원을 뚫고 주상절리가 솟아 오른데다 주위에 데블스타워에 견줄 만큼 높은 언덕이나 산이 없어 치솟은 폼이 아주 위압적이다. 그래서 데블스타워란 이름이 붙여졌는지도 모르겠다. 평원위에 솟아오른 탓에 수 킬로미터 밖에서부터 데블스타워를 볼 수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는 데블스타워의 모습은 더욱 웅혼하고 장엄하다.

데블스타워의 바닥부분 직경은 304미터, 바닥에서 정상까지의 높이는 264미터, 해발 고도는 무려 1558미터로 한국의 가야산보다 더 높다. 평면을 이루고 있는 타워 꼭대기의 면적은 1836평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산이다. 윌리엄 로저스가 1893년 7월 4일 나무 사다리를 이용해 정상에 첫 등정했지만 바위산의 경사면이 거의 90도에 이를 정도로 가팔라 일반 관광객이 정상에 오르기는 어렵다. 공원관리소에 따르면 1937년 이후 5000여명의 등산객이 돌기둥 등정을 시도한 것으로 돼 있는데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반코스가 무려 220개나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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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주변으로 타워 워크(walk)란 등산로가 닦여 있어서 데블스타워를 크게 한 바퀴 돌면서 주상절리와 주변경관을 구경할 수 있다. 걸어서 타워 주위를 도는데 대략 한 시간 30분가량 걸린다.

2010년 6월 말 사우스다코타 여행을 마치고 주간 90번 고속도로를 이용해 옐로우스톤으로 향했다. 와이오밍주의 동쪽 끝 도시 선덴스(Sundance) 부근에서 14번 고속도로를 타고 북서쪽으로 삼사십분가량 달리자 멀리 데블스타워가 보이기 시작한다.

하늘 위로 짙게 드리운 먹구름 사이로 한 두 줄기 새어 나오는 태양빛을 받은 데블스타워. 짙은 검정색의 타워가 마치 하늘과 맞닿은 마천루처럼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위압적일 뿐아니라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느끼게 한다.

대략 데블스타워의 반경 4킬로미터 이내에서는 우뚝 솟은 바위산의 목격이 가능하다. 타워 워크를 따라 돌며 가까이서 바라보는 데블스타워는 그 기운이 더욱 압도적이다. 직경이 300미터를 넘는 지름 만큼 육중한 느낌에 더해 나무나 잡초 같은 군더더기가 없는 바위의 단순함에서 오는 강렬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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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스타워 주변으로는 자그마한 강이 흐르고 그 양 옆으로 펼쳐진 평지에는 뒷다리로 곧추선 프레리독의 서식지가 널리 퍼져 있다. 이따금씩 텃새 가운데 하나인 파랑새가(the male mountain bluebird) 목격되기도 한다.

데블스타워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미국의 첫번째 국립기념비로 등록됐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기 동안 타워 옆에다 박물관을 지어 상업적으로 개발되는 것을 막는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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