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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조순·문국현… 그리고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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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사라진 제3후보들…조직열세·규합실패 극복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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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선과정을 보면 양자구도의 틈새에서 떠올랐던 수많은 제3후보들이 선거판을 뒤흔들다 사라졌다.

박찬종, 조순, 정운찬, 문국현 후보 등이 그랬다. 이번 대선에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주인공이다. 과연 지나온 대선후보들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기존 정치틀을 깨고 용으로 태어날 것인가?

지난 1992년 대선 과정으로 돌아가보자. 대선을 수 개월 앞둔 시점에서 단기필마로 출마한 무소속 박찬종 후보는 ''바바리 바람''을 일으키며 지지율 1위를 달렸다. 그러나 결국 세규합에 실패, 대선에서 6% 득표로 추락하며 제3후보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박찬종씨는 97년 대선에서도 연초에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며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됐으나, 조직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신한국당 경선 막판 중도하차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스스로를 "우리 정치계에서 왕따당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듯이 권위주의 정치, 패거리 정치에 도전하다 실패한 사람이라는 평가에서부터 ''조직부적응자'', ''독불장군''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2002년 대선때는 한일월드컵 열풍을 타고 정몽준 후보가 제3후보로 등장했다. 그는 ''국민통합21''이라는 독자정당을 만드는 등 대선행보를 이어가다 선거막판 노무현 후보와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에서 밀려 꿈을 이루지 못했다.

2007년 대선에선 고건, 정운찬 전 총리가 제3지대론을 불러일으키며 대선후보로 부상했다. 그러나 기존 정당 합류를 놓고 머뭇거리다 결국 출마를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국현 후보는 대선까지 완주한 제3후보였다. 유한킴벌리 대표였던 문 후보는 제3지대에 머물다 2007년 8월 말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대통합민주신당 합류를 거부한 그는 그해 10월 창조한국당을 창당해 일단 독자출마로 방향을 잡았다. 당시만해도 정동영 후보와의 후보단일화에 대한 일말의 희망은 남아있었다. 당시 신당에서는 김영춘 의원을 사실상 ''파견''해 선거를 도왔다.

그러나 문 후보는 "실정한 사람들과 단일화를 할 수 없다"며 후보단일화를 거부해 결국 진보개혁진영은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와의 대결에서 분열한 채 선거를 치러야 했다. 그는 대선에서 5.8%의 득표율로 4위에 그쳤다.

폴앤폴 조용휴 대표는 17일 "과거 제3후보가 실패한 이유는 모두 독자적인 생존을 위해 움직였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양당구조 등 대선을 관통하는 엄연한 정치현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당과의 질서를 외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3후보가 실패한 또다른 이유는 기존 정치인들의 기득권도 한 몫한다. 호랑이 굴에 뛰어들어서 승부를 하기에는 기득권의 벽이 너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이번 12.19 대선에선 지난해 말부터 바람을 몰고온 안철수 원장이 최대의 변수로 떠올랐다. 정치참여에 대해 알듯 말듯한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게 신비주의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야권에선 안철수 흥행 없이는 박근혜 위원장에 대적할 만한 적수를 만들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져있다.

안 원장의 선택지는 대략 3가지로 요약된다. 당내 경선에 뛰어들거나, 독자세력화한 뒤 야권후보와 단일화하거나 아니면 독자출마하는 방안이다.출마는 점점 기정사실화되는 쪽으로 흐른다. 조만간 포럼 형태의 준정치결사체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제3후보들은 대개 출마시기를 최대한 늦추거나 기존 정당과의 단일화를 거부했다. 민주당에 조기 입당해서 문재인, 손학규 등 기존 대권후보들과 겨루는 승부수를 띄울 지, 아니면 대선 막판까지 지지율 추이를 지켜보며 후보단일화를 노릴 지, 그가 취할 선택의 방향에 따라 대선의 지형은 크게 달라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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