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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심상을 색상의 조화로 표현한 경전. 유현경(28세) 작가가 그린 인물 초상화 작품들은 눈,코, 입, 귀의 윤곽이 없지만,감각기관들이 만들어내는 표정 못지 않게 색상들의 조화로 인간의 표정을 드러낸다. 화면의 색깔은 크게 얼굴, 머리카락,상의, 하의, 배경의 색깔로 나뉘어진다. 유 작가의 초상화는 화면 전체가 인물의 얼굴이고,위의 5가지 색상 영역구분이 개별 감각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색상들의 조화가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로 인해 얼굴윤곽이 없는 인물의 내면풍경을 만나는 것이다. 인간의 저 깊이 감추어진, 가려진, 감추고자 하는, 드러내고자 하는 심리를 작가의 예리한 감각으로 포착해 색상을 통해 관객 앞에 펼쳐보인다.하나 하나 독특한 색상 풍경은 눈매나 입매가 되어 초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관객은 유작가의 100여점이 넘는 초상화 한 점, 한 점을 대할 때마다 관객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울했을 때, 기뻤을 때, 슬프지만 기분좋을 때(이 때는 감동적인 영화나 소설을 보고 났을 때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두려울 때, 불안할 때, 평안할 때, 거짓말을 할 때의 불안의 느낌 등 여러 상황에서의 내면 심리를 담고 있다.108 번뇌라고나 할까. 색상의 조화로 온갖 심리 표현을 하고 있지만, 내면을 직시함으로써 얻어지는 평정을 느끼게 된다.
유현경 작가의 초상화는 운주사의 천불에 등장하는 석불과도 같다. 운주사 석불이 생기다 만, 윤곽이 흐릿하게 돌로 쪼아진 부처의 인상에서 정감이 느껴지듯이 유 작가의 인물 초상화의 느낌도 그러하다. 운주사 석불들이 주는 느낌은 잘 다듬어진 앙코르와트의 사면불상이나 정교하게 주조된 반가사유상에서 그 온화한 미소가 주는 인상과는 다르다, 사면불상이나 반가사유상은 또렷한 얼굴 윤곽과 웃는 입매의 선명한 선에 의해 평정에 이른 모습을 드러낸다. 반면 운주사 석불들은 윤곽 또는 윤곽선이 선명하지 않음에도, 그리고 단일한 표정이 아님에도 평안함을 준다. 이상화된 표정이 아니라, 각기 나름의 표정들에서의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들의 마주침 속에서 그것들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읽혀진다. 유 작가의 작업은 인간 내면의 근원을 심층탐구해 가는 과정이다.
유 작가는 모델을 앞에 두고 그리지만, 그건 내면풍경을 보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작가의 관심은 얼굴의 윤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심리의 근원을 포착하는 데 있다. 그래서 처음에 그렸던 얼굴을 지우고,그 위에 다시 그리는 작업을 반복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감각기관들의 윤곽은 흐릿해지고,색상으로서 모델의 인상이 남는 것이다. 작가는 처음 모델이 들어올 때 색상으로 인식한다고 했다.가령 어떤 모델의 첫 인상이 파란색이면,그 다음에도 파란색으로 느낀다고 한다. 여기에 모델이 풍기는 아우라가 느껴질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표현되는 색상과 강도가 달라진다. 따라서 유 작가에게 모델은 작업을 촉발하는 데 필요한,''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제일 뿐이다. 유 작가는 "남성모델과 여행을 함께 하며 해낸 작업,<화가와 모델="">은 그러한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작업은 인간 내면을 회화로 묘사하는 데 있어서, 내면이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것을 감추기 위한 장치로서 ''여성화가-남성모델''을 활용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그 이후 작업에서는 앞의 작업처럼 숨기는 장치를 쓰지 않아도, 인간 심리의 본질을 숨기고 말고 할 것 없이 과감하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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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가의 표현방식은 역설적이다. 뭉개진 듯이 보이는,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한 얼굴형상은 덧입히기를 할 수 있는 유화의 장점을 살린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수차례된 반복된 작업은 모델에게서 직관적으로 느끼는,인간내면의 보편 심리의 한가닥을 추출해낸다. 이러한 방식은 동양화 그리는 방식과 대조를 보인다. 수묵화는 가필을 하면 추레해지기 때문에 용납되지 않고,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특징을 잡아내 간결한 선으로 일필휘지로 그려나가는 게 특징이다. 그래야만 고도의 사의성을 추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유 작가의 작업은 다양한 색채의 조합과 덧입히기로 고도의 사의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됨으로써, 회화의 개성적인 표현 영역을 확장하였다. 그것은 감각기관의 윤곽선을 지울 수록, 색을 덧입힐 수록, 표현하고자 하는 심상이 선명해지는 역설의 가능성이다.
학고재갤러리에서 전시되는 유 작가의 작품 중 <결혼>을 보자.이 작품은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얼굴의 윤곽이 없기 때문에 신부의 표정을 언뜻 봐서는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작가는 드레스와 얼굴, 배경의 색채가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를 통해 그 신부의 마음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전시 제목,<거짓말을 하고="" 있어="">가 암시하듯이 이 작품은 결혼에 대한 신부의 회의적인 심리상태가 느껴진다. 반면 파란 바탕을 배경으로 노란색과 검은 색이 어우러진 옷에, 회색빛 얼굴의 긴머리 여인을 그린 작품,<차분한 사람=""> 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조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힘이 느껴진다. 100여 점이 넘는 인물화는 작품 하나 하나마다 독특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어, 관객들은 자신의 여러 감정 상태는 물론, 어렸을 적, 사춘기 시절, 성인 시절에 한번 쯤 경험했던 자신의 내면과 마주치게 되고, 심지어 앞으로 마주하게 될 낯선 내면풍경과도 조우할 수 있다. 다만 유 작가가 자신이 모델을 쓰는 이유가 작업의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긴장''을 너무 강조했던 탓인지, 이번 출품작에서 ''권태''나, ''무료''는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권태,무료''가 인간 심리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데도 말이다. 정말 그런지 다시 한번 볼 생각이다.
학고재갤러리에 출품된 유현경의 초상화 작품 100여점은 작가가 작년 10월부터 5개월동안 독일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해, 그 곳에서 한 달 이상 지속적으로 만나온 마을 사람들을 알아가며 기록한 작업들이다.
전시제목:<유현경 개인전,="" 거짓말을="" 하고="" 있어="">
전시기간:3.28-4.29
전시장소:학고재 갤러리 전관(02-720-1254~6)
출품작:회화 100여 점유현경>차분한>거짓말을>결혼>화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