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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편지, 이제 감옥의 비둘기는 날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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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의 기자수첩]

ㄴㄴ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혀 형을 치르고 있는 수형자들이 감옥에서 편지를 써보낼 때 봉합하지 않고 제출하게 되어 있다. 왜 개인적인 서신인데 봉투를 봉하지 못하게 하는가? 당국이 검열하겠다는 것이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 시행령 65조 1항''의 내용이다.

◇ 이제 감옥의 비둘기는 날지 않는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것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편지봉투 내에 금지물품이 들어가 있는지만 수형자 앞에서 확인하고 봉투를 봉하거나 봉함된 편지를 엑스레이 검색기 등으로 살펴 의심되는 경우만 열어보는 등의 방법을 채택하라고 밝혔다. 이제 편지의 봉합을 규제하면 법으로도 교도소가 통신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지금보다 더욱 엄격히 통제해 집필도구 소지나 집필이 금지되어 있었다. 일주일에 1번만 집필시간이 주어졌고, 우체국 규격봉함엽서(우권)만 사용 가능한 적도 있었다. 편지는 집필실에 들어가 작성해 검열을 거친 뒤 밖으로 내보내졌다(출소자나 친한 교도관을 통해 몰래 내보내는 경우 속어로 ''비둘기를 띄운다''고 한다).

이런 편지이니 교도소 내 사정, 정부 정책과 정치에 관한 언급, 죄나 혐의와 관련된 내용은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은유, 비유, 추상적인 표현들이 많고, 내용 역시 역사나 사회에 대한 단상, 철학적 사색, 시, 문학, 일상에서 느끼는 감상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래도 큰 감동을 준 옥중 편지들의 역사를 살펴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히틀러 암살 모의로 체포돼 옥에서 숨진 독일의 행동하는 신학자,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의 옥중서신>이다.

"미친 운전자가 인도로 차를 몰아 사람들이 죽어갈 때는 그 미친 운전자를 먼저 끌어내려야 한다"며 전쟁방지와 평화를 위한 세계교회회의를 주창하고 이어 히틀러 암살 모의에 뛰어들었다가 1945년 4월 처형되었다. 본 회퍼는 독일 개신교회가 물질과 세속권력 앞에 무릎을 꿇고 비굴하게 연명하는 것을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값싼 은혜는 교회의 원수다. 떨이로 팔아버린 싸구려상품이다 ...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와 함께 이웃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 십자가를 지고 이웃을 봐야 진정 값진 은혜를 누릴 수 있다."

ㅈㅈ

 

인도 최초의 수상 네루가 딸에게 보낸 옥중편지 역시 유명하다. 네루는 독립운동을 하다 9번 감옥에 갇힌다. 그러다 아내마저 감옥에 갇히고 집에 13살 난 딸만 남게 되자 딸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으로 2년 동안 매일 편지를 썼다.

이 편지들은 후에 <세계사 편력>이라는 이름의 책이 되어 나왔다. 그 세계사 편력 속에 일제의 식민지배에 저항한 우리의 3.1운동이 소개돼 있기도 하다. 아버지의 편지가 인도하는 대로 자라난 딸은 인도 최초의 여성총리가 된다. 인도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인디라 간디가 그 주인공이다.

11년 간 감옥에 갇혀 있다 병으로 숨진 이탈리아 좌파 지도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서신>(1947년)도 한때 사회과학도들에게는 필독의 서적이기도 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종차별 철폐운동 ''반(反)아파르헤이트''를 이끌다 감옥에 갇히고 훗날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의 옥중 편지도 세계적으로 이름을 높인 작품. 1970년 무렵 아내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을 읽어보자.

"가장 큰 문제는 당신이 내 곁에 없는 채로 잠들고, 당신이 없는 채로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이오. 당신을 보지 못한 채 하루하루가 지나는 것이오. 감옥에서 걱정거리 중 하나는 밖에서 나를 너무 과대평가해 성인처럼 잘못된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오..."

그런데 아내마저 감옥에 갇히자 9살, 10살 자녀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이제 엄마 아빠 모두 감옥에 갇혔다. 너희는 이제 애정과 보살핌 없이 고아처럼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함께 할 수 없고 옷도 신발도 장난감도 사줄 수 없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편지도 훗날 <김대중의 옥중서신>이란 책으로 출판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1980년 내란음모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 사형수로 지내며 이희호 여사 등 가족들에게 보낸 29통의 봉합엽서 편지를 묶은 책이다. 미국, 일본, 스웨덴 등 여러 나라에서 출간되었다.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만들었다. 경복궁은 대원군이 건축했다. 역사는 그렇게 기록한다. 잘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허구이다. 진실한 건설자는 그들이 아니라 이름도 없는 석수, 목수, 화공 등 백성의 무리들이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정확히 깨달을 때 이름 없는 백성들에 대한 외경심과 역사의 참된 주인에 대한 자각을 새로이 하게 된다."

양심수로 오랜 세월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신영복 교수와 서준식 씨의 옥중편지>도 역시 책으로 엮어져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 주었다.

◇ 딴 맘 먹지 말고 죽어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안중근 의사의 옥중서신을 빼놓을 수 없다.

"아내에게

우리는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천주의 안배로 배필이 되고
다시 주님의 명으로 헤어지게 되었소

........

많고 많은 말을 천당에서
기쁘고 즐겁게 만나서
상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을 믿고
또 바랄 뿐이오."

- 장부 안 도마 백 -


특히 감옥의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대에서 입을 수의를 보내며 안 의사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가 보낸 편지도 함께 읽어야 한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어머니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어라"

마지막으로 시인이자 소설가인 송기원 씨의 ''편지'' 라는 제목의 어머니께 보내는 옥중편지이자 시를 읽어보자. 송기원 시인은 가난한 시골 장태에서 불우하게 태어나 홀어머니의 사랑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과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잇달아 감옥 생활을 했다.

사람들은 빨갱이 간첩이라 손가락질하고 시골의 어머니는 사상이 뭔지 이념이 뭔지도 모르지만 수모를 당하다 고향집 문고리에 목을 매 목숨을 끊는다. 옥중에서 무덤에 묻힌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다.

- 편지 -

어머니.
긴 밤이 끝나고 새벽이 오려 하고 있습니다.
쇠창살 너머 새벽별이 스러지고
이제 막 동이 트는 능선마다 달려오는 사람들을 보세요.
내일을 살기 위하여 오늘을 죽는
새벽의 사람들을 보세요.
이슬에 젖은 발자욱 소리가 지금 산야를 울립니다.

어머니.
이름 없는 산야의 이름 없는
무덤들 사이에서 아직은
잠들지 마세요.
시들은 잡초들 무성한 무덤 너머로 새벽별이 스러지고
이제 막 동이 트는 능선마다 달려오는 눈부신
새벽의 사람들을 위하여
아직은 잠들지 마세요.
그토록 긴 밤을 떠돌던 많은 넋들과 함께
아직은 잠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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